통계적 성장수치 연연치말고
장기적 관점서 정책 유지해야

문재인정부가 출범하면서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을 통해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를 열겠다고 했다. 이른바 사람중심 경제의 성과가 얼마나 구체화될지가 관건이다. 문재인 정부가 일자리 정부를 표방한지 8개월이 지났으나 여전히 청년실업률은 고공행진 중이고, 소득불평등, 양극화는 심화됐다.

소득과 일자리를 늘려 경제를 성장시키겠다는 소득주도성장의 성과는 아직 보이지 않고 있다. 가계 소득을 늘리기 위한 최저임금 인상은 오히려 고용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일반적으로 임금을 올려서 성장을 이뤄내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 특히 기업부문에서 고용을 줄이거나 투자를 축소시키는 경우에 오히려 원하는 정책목표를 이뤄내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기업 지배구조 개선, 갑을관계 개선 등 공정거래도 아직은 기대에 못미치고 있다. 재벌개혁은 미룬 채 프랜차이즈 부분 등 만만한(?) 분야에 손을 대면서 개혁의 우선순위가 뒤바뀌었다고 보는 재벌개혁론자의 견해도 있다.

한편 구체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아온 혁신성장을 위해 정부는 빅데이터, 핀테크, 드론 등 핵심 선도사업을 선정해 연구개발자금 지원과 규제혁신 등 정책 역량을 집중한다고 한다. 중소기업을 중견기업, 혁신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에 적절히 재원이 쓰여지는 것을 정부가 잘 관리하고, 민간이 할 수 없는 원천기술에 R&D 자금이 잘 쓰여지도록 조율하는 작업 또한 필요할 것이다.

일자리-분배-성장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 위한 제이노믹스가 성공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본격적인 시험대에 오른 이 시점에서 그 성공을 위한 사회 및 시장환경의 조성은 매우 중요하다. 시대의 고금과 양의 동서를 막론하고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의 본질과 근본적 구조 그 자체를 벗어나는 경제정책을 밀어 붙이는 것은 안 된다. 규제는 최소화하고 자율은 극대화하되 그 근본 틀은 정부가 관장하고 나머지는 전부 시장에 맡기는 구조가 바람직하다. 국가경제발전의 방향성을 정립하기 위한 사회시스템 및 시장환경조성을 위해 다음과 같은 점을 명심해 둘 필요가 있다고 본다.

■자본주의 본질 벗어난 개혁은 안돼

첫째, 우리나라 현대경제사를 보면 국가주도의 경제성장모델을 채택해 빠른 기간 내에 압축성장을 이루었다. 이러한 경험은 늘 새 정부가 들어 설 때마다 국가주도의 경제성장을 도모하려는 유혹에 빠지게 한다. 그 효과의 면에서 보면 상당히 합리성이나 효율성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고 사람의 생각이 바뀌고 경제환경이 바뀐 현 시점에서의 과도한 국가주의는 반듯한 제대로 된 경제성장을 가져오지 못할 개연성이 크다. 그러므로 정부는 공정경제의 틀을 만들어 하드웨어의 심판관이 되고 소프트웨어 부분에 대해서는 가능한 한 시장자율에 맡기고, 그들 스스로 상위규범의 큰 틀 속에서 자체 하위규범(soft law)을 통해 자율규제를 할 수 있도록 자치력·자생력을 키워 줘야 할 것이다.

둘째, 철저한 정경분리의 원칙 고수다. 이는 정부의 과도한 시장개입을 금하는 전제와도 일치한다. 우리 경제는 구조적·관습적으로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지 못하고 통계적·계량적 성장수치에만 연연했던 과거가 있다. 정경유착은 늘 불행한 정부 또는 정권으로 평가받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곤 했다. 치열한 글로벌 경제시장에서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국가의 후견적 관여는 필요하나 국내시장 그 자체의 흐름을 총괄하는 식의 정부의 시장통제나 간섭은 결코 장기적 안목에서 시장생태계 발전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 전직 대통령의 불행의 씨앗이 정경유착과 무관하지 않음을 여러번 목도했기 때문에 국민정신건강 차원에서도 정경유착의 고리는 끊어야 한다.

셋째, 경제정책의 영속성·연속성과 장기성의 유지가 필요하다. 경제백년대계는 아닐지라도 10년·20년 단위의 거시적 장기적 국가경제플랜이 있고, 그 플랜의 큰 틀에서 사정변경사유가 생기면 보완하는 식으로 나아가야만이 민간경제주체의 혼선을 막을 수 있다. 국가 경제정책이 언제·어떻게 바뀔지 모르니 기업은 이익이 있어도 투자를 꺼려한다.

30대 그룹의 사내유보금이 720조나 된다고 한다. 투자를 확대해야 일자리가 생기고 일자리가 생겨야 직원을 채용하고, 임금을 받고 그 임금을 지출해서 시장이 돌아가는 식의, 그야말로 일자리-분배-성장구조의 안정화를 도모할 수 있을 텐데, 그 반대로 돌아가면 결국은 투자가 위축되고 일자리는 줄고, 분배는 얼어붙게 되고, 성장은 멈추거나 마이너스화 되면 국민의 삶은 고달파지는 것이다. 정부는 국민의 총의를 모으고, 세계적 경제흐름을 간파해 정권적 차원이 아닌 국가적 차원에서의 경제비전을 세워서 제시해 그 방향성을 정립하면 그에 따라 민간경제가 대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동북아 공동체 마중물 될 공감 개혁

넷째, 공정거래, 기업의 지배구조개혁과 법치주의 확립이 필요하다. 시장에서의 공정경쟁을 위해서는 근원적으로 기울어져 있는 시장을 바로 세워야 한다. 기업 간,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과도한 갑을관계 하에서 공정거래가 이루어질 수가 없다. 기업에 관한 법은 기업거래법, 기업조직법, 기업감독법의 세 영역으로 나누는데, 거래는 자율에 맡기고(계약자유의 원칙), 조직은 기본 조건을 법으로 만들어 두면 그에 따르게 하면 되고(준칙주의), 기업감독은 경제분야에 따라 그 특성에 맡게 통제할 수 있는 법적·정책적 규제의 틀을 만들어서 집행하면 된다.

자유로운 거래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형평한 조건에서 거래 상대방을 선택하고, 거래방식을 선택하고, 거래의 내용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하는데, 갑을관계에 처하게 되면, 갑의 협박(?)에 주눅이 들어 “그저 목숨만 살려주십시오”식의 불평등계약이 체결돼 시장의 구조를 왜곡시키게 된다. 공정거래가 이뤄지지 않으면 그 시장은 마치 건강을 잃은 환자가 병원에서 연명하는식이 된다. 이러한 비겁한 불공정거래의 횡포의 이면에는 기업지배구조의 왜곡 속에서 오너의 독선적 의사결정에 영향을 받음이 크다.

다섯째, 국민의 공감을 얻는, 국민과 함께 하는 경제정책, 국민통합의 경제개혁이 이뤄져야 한다. 개혁과정에서 피아를 구분해 적과 아군을 나누는 것으로 오해받을 정책은 차라리 없음만 못하다. 시장에서의 적폐를 극소화하고 그 적폐를 청산하기 위한 수술은 그 부위에 국한해 국소마취를 통한 핀셋수술이어야지, 국민경제·국가경제 몸통을 통째로 전신마취해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적폐의 병인을 찾아 온통 개복을 해 버린다면, 그 결과 만약 의료과실로 회생이 불가능한 상황이 도래하면 이거야 말로 멸문이요, 파국이다.

국가경제의 한 작은 부위인 발톱의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심장수술을 한다고 널리 홍보(겁박?)하면 경제주체들의 도피와 탈출은 막을 수가 없다. 고통을 함께 나누며 병인을 찾아 치료하되 가급적이면 쓸 만한 부분은 재생시켜 쓰는 식의 리스크를 극소화하되 효율적인 경제개혁을 통해 국민이 함께 하는, 공감의 경제, 공명의 경제환경조성을 통해 국민통합까지 더불어 수확하는 통 큰 대통합·대화합의 역동적인 시장을 만들어 가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공감과 공명의 경제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국민통합을 이루게 되고 그 통합의 시너지는 남남통합에 머물지 않고 가속도가 붙어 남북·동북아통합의 마중물이 돼 동북아평화공동체를 향한 큰 울림이 될 것이다. <정용상 한국법학교수회장/정부 전자거래분쟁조정위원장/흥사단 통일운동본부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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