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특사 파견이나 한·미연합군사훈련 연기 등 단기적 과제로 떠오르고 있는 문제에 대한 신중론이 없지 않다. 무엇보다 미국의 지지와 동의를 얻는 게 우선이다. 굳건한 한·미동맹을 헤쳐 가면서까지 대북 교류에 나설 수도, 나서서도 안 되는 게 현실이다. 미국을 비롯한 주변국의 반응을 살피면서 대북 관계를 조율할 수밖에 없다.
■‘한·미 공조’ 토대 위 대북 교류 수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장녀인 이방카 백악관 선임고문이 평창동계올림픽 폐회식의 미 정부 대표단장 자격으로 방한해 트럼프 대통령 메신저 역할을 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의 비공개 접견에서 한반도 정세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면서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최대한의 대북 압박에 대한 공동의 의지”를 강조했다. 북핵문제를 풀기 위한 북·미 대화를 성사시키는 데 중점을 두는 우리 정부 입장과 거리를 두는 듯한 발언이다. 주목되는 대목이다.
이른바 ‘한·미 균열’ 조짐이 갈수록 커지는 형국이다. ‘천안함 폭침’ 주범으로 알려진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의 방남을 놓고 한미 간 엇박자가 나고 있다. 우리 정부는 김 부위원장이 천안함 폭침과 연관됐는지를 단언하기 어렵다는 입장이지만, 헤더 노어트 미 국무부 대변인은 “그가 천안함기념관에 가서 그에게 책임이 있다고 여겨져 온 것을 보는 기회로 삼기를 바란다”고 꼬집었잖은가.
대북정책에서 무역제재에 이르기까지 여간 우려스럽지 않은 형국이다. 미국은 최근 ‘국가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이유로 한국산 철강제품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기로 하면서 일본 등 다른 동맹국들은 제외했다. 살상가상 미국은 어제 역대 최대 규모의 새 대북제재안을 발표했다. ‘포괄적 해상 차단’ 등 초강력 조치가 포함됐다. 한·미관계가 밑바닥부터 흔들리고 있다는 증좌다.
■‘한반도 운전자’ 위한 주도적 노력
이러니 평창올림픽 이후가 더 문제라는 우려가 크다. 한반도 긴장 수위가 급속히 고조될 전망이다. 미 워싱턴포스트는 “남북이 ‘핵 외교’에서 비켜서 있고 북·미의 스탠스가 정반대 편에서 확고부동한 상태여서 ‘올림픽 휴지기’는 일시적일 것”이라고 전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어제 “그 어떤 제재도 도발도 위협도 우리의 핵보유국 지위를 절대로 허물 수 없다”면서 “핵탄두들과 탄도로켓들을 실전 배치하는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국제사회를 겁박했다. 북핵문제는 우리 힘만으로는 풀 수 없는 난제다. 지금처럼 한·미 공조가 흔들리면 북핵문제 해결은 불가능해지고 우리 안보는 크게 위협받게 될 것이다.
실상이 이러니 평창 올림픽 이후 남북 화해교류 발걸음이 빨라질 것이라는 예측과 달리 청와대가 속도를 늦추는 분위기와 상관관계를 읽게 한다. 청와대는 신중하고 차분하게 대응한다는 차원에서다. 흥분하지 않고 큰 틀에서 구상을 가다듬고 상황을 충분히 보면서 대응하는 게 옳은 기조라고 하겠다.
그렇지만 문 대통령을 비롯한 소수 핵심 인사를 중심으로는 남북대화 추진에 속도를 낼 것으로 예견된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조명균 통일부 장관, 서훈 국가정보원장 등이 주요 역할을 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당연히 그렇게 준비하는 게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한반도 운전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북의 비핵화를 전제, 평창올림픽이 남북화해와 평화세계 실현의 변곡점이길 기대한다. ‘노자’는 대군으로 전쟁을 하면 흉년으로 경제가 피폐하고, 전답을 황폐화시켜 초목만 자란다.(徵兵作戰起凶萌 廢畝荒田養草荊)”고 우려했다. 한반도에 전쟁은 안 된다! 평화를 만들어가자!
황종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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