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만 前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이사장

  ▲ 이상만 前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이사장

우리말과 글자의 국제경쟁력은 글자에서는, 로마글자, 아랍글자, 중국의 한자, 키릴문자, 일본의 글자에 이어 여섯 번째쯤이라고 여겨지고 있다. 말의 경쟁력은 영어, 아랍어, 중국어(북경 말), 스페인어, 러시아, 불어에 이어 열세 번째라고 평가되고 있다.

글자의 경쟁력은 그 나라의 군사력과 맞먹고, 말의 경쟁력은 경제력과 맞먹는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 경쟁력의 기초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 말과 글을 쓰는 사람의 수와 가장 깊은 관계가 있으며, 말과 글의 쓰임새가 갖는 힘과도 관계가 있다.

우리의 말과 글은 온 누리에 퍼져 나가는 힘으로 볼 때, 가장 빠르고, 힘차게 번지고 있다.

청나라 말기에 중국은 말과 글이 민족 단위로 구성된 성마다 달라, 서로의 의사가 소통되지 않아서 우리 조선말을 나라말로 쓰자고 하는 논의가 있었는데, 망하는 나라의 말을 왜 쓰느냐 하는 의견이 컸기 때문에 채택이 안 되었다는 기록을, 우리나라 초대 부통령이며 독립운동가였던 성재 이시영 선생의 평전에 기록되어 있다.

만일 중국이 우리 말과 글을 나라말과 나라글로 썼더라면 중국의 운명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경기장·안내문 어디에도 한글실종

실제로 장개석이 중국을 통치할 때에 언어소통이 되지 않아 한쪽에서는 울고 한쪽에서는 웃는 사태가 벌어지고 결국은 정권이 무너지는 슬픈 일을 당하게 된 것이다.

청나라를 일으킨 누루하치는 한족(漢族)을 무찌르고도 한족의 문화에 눌려서 그들의 말과 글을 잊어버린 것이 나라를 망친 근본 원인이 되었다.

누루하치가 쓰던 만주 말은 문법체계나 표현력에서 쓰임새가 뛰어난 언어였다. 그런데 그 당시 지도층들은 한어(漢語)를 배우고 한자를 익히고, 한족 여인들을 데리고 사는 등 한족 문화를 동경하는 열풍에 휩싸였다. 마치 우리나라에서 한때 영어를 배우고 미국에 가서 아이를 낳는 바람이 일었던 것과 흡사하였다. 결국 청나라는 사라지고 말았다.

올림픽의 공식적인 글과 말은 근대 올림픽을 창시한 프랑스의 쿠베르탱 남작의 뜻에 따라 프랑스어가 공식 언어였다.

처음 아테네에서 개최되었을 때는 그리스어와 프랑스어를 공식 언어로 채택하였다. 그리고 4년마다, 개최지를 바꿀 때마다 그 나라의 언어가 공식 언어가 되었다. 이번 평창 올림픽도 당연히 우리나라 언어가 공식어의 하나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개회선언, 조직위원장의 인사말을 우리말로 한 것이 바로 그 증거이다. 그런데 평창 올림픽의 시설물, 경기장, 안내문, 심지어 평창 올림픽의 상징표시와 우리가 만든 마스코트 어디에도 한글은 한자도 들어가지 않았다. 단지 표지에 'ㅍ'자와 'ㅊ'자를 상징화한 기호가 쓰였는데 그것을 보고 누가 한글이라고 생각하겠는가?

올림픽은 국가가 치르는 행사이다. 올림픽의 모든 시설물은 모두 나랏돈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자기 집을 짓고 문패를 달 때 자기 나라 글자로 표시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닌가? 올림픽이 국제적 행사니 만큼 로마 글자와 아라비아 숫자로 표시하는 것도 당연하지마는 반드시 우리나라 글이 병기되어야 했다.

아울러 2018년과 함께 단군기원 사천삼백오심일 년(4351)도 함께 적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글 발전이 나라 경쟁력 키우는것

아무리 이 정부가 얼이 빠졌기로 이런 것 하나 챙기지 못했는가 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그동안 행정부의 사람들은 무엇을 했고, 민의를 대변하는 국회의원들은 무엇을 했으며, 국문학을 전공한 시인 주무부장관, 그 많은 언론기관이 어떤 생각을 했는지 통탄할 일이다.

또 한 가지 이번 올림픽에서 얼빠진 일은 북녘 바람과 함께 등장한 한반도기이다. 우리나라가 한반도로 영역이 고착된 것은 나라의 힘이 꺾여서부터이다. 고조선의 영토는 분명히 만주벌판, 시베리아와 중국의 본토까지 이르는 넓은 광활한 땅이었다. 한반도기를 들고 나선 것은 우리 영토를 반도로 고착시키는 짓이다. 일제강점기에는 우리나라 사람들을 반도인(한토징)이라고 경멸하였다. 그 쓰라린 아픔을 다 잊었는가?

우리 선조들은 일제강점기에도 우리말과 글을 지키기 위해서 목숨 바쳐 싸워왔다. 우리 말과 글을 더욱 튼튼하고 건실하고 쓸모 있게 키우는 것이 우리나라가 살길이고 지켜나가야 할 일이다.

영어는 영국에서 발전해서 미국으로 건너가 세계에서 가장 강한 언어가 되었다. 그것이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나라로 우뚝 선 것과 무관하지 않다.

영국은 영어를 다듬고 강한 말로 키우기 위해서 온갖 힘을 다 쏟았다. 셰익스피어를 인도와 바꾸지 않겠다는 말도 영국인의 언어 사랑을 말해준다. 그것이 해가 지지 않는 영국을 만든 것이다.

근대 올림픽의 발전을 위해서 미국인 국제올림픽 조직위원장 브린디지가 1960년대에 부임하여 큰 공을 세웠다. 그는 가난한 올림픽위원회를 텔레비전이라는 문명의 이기를 이용해 금전적으로 성공한 올림픽으로 만들었다. 영어가 올림픽의 공용어가 아닌 실질적 언어가 된 것도 브린디지 위원장의 공로에 기인한 것이다.

우리는 평창올림픽에서 많은 희생을 했다. 잃은 것들이 많지만 우리 얼을 되찾고 우리나라의 긴 역사 4350년을 다시 찾는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상만 前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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