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

지질의 과거역사를 접근하는 방법으로, 지질학에서는 동일과정설과 격변설이 대립하고 있다. 동일과정설이란 과거에 일어났던 과정과 같은 물리법칙이 지금도 적용된다는 것으로 균일론이라고도 한다. 자연법칙은 공간과 시간의 제약이 없이 일정하며, 지질의 변화속도나 형태변화도 균일하므로, 지질학적 기록의 기원은 현재 일어나는 자연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1833년 찰스 라이엘(1797-1875)은 ‘현재는 과거에 대한 열쇠’라는 동일과정설을 주장했는데, 동일과정설은 지질학은 물론, 생물학과 천문학 등 모든 기원연구에 절대적 영향을 줬다. 다윈은 생물진화 역시 아주 오랜 시간과 점진적 변화를 거쳐 이뤄진다고 믿었는데, 이는 그가 스스로도 고백했지만 동일과정설에 결정적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준다.

반면 격변설은 지질학에 과학적 실험이 시작된 1960년대를 기준으로 제기됐는데, 지금은 격변설이 지배적인 견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20세기 후반 최근 지질학은 산, 계곡, 협곡이 자연 풍화작용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크고 작은 수많은 격변에 의해 형성됐다고 한다. 다만 격변의 크기나 정도가 ‘부분적’인지 아니면 ‘전면적’인지로 대립한다.

■ 동일과정설 기원연구에 영향

진화과학은 부분적 격변설을 취하는데, 지구내부나 외부로부터의 부분적 격변을 주장하는 반면, 창조과학은 전면적 격변을 주장하며, 성경의 ‘노아의 대홍수’를 전면적 격변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고 동일과정설의 잔재가 완전히 폐기된 것은 아니다. 협곡은 수억 년 동안의 물의 침식작용으로 됐다거나, 다양한 지층은 수억 년 동안 흙이나 모래가 쌓여 된 것이라는 주장은, 전문 학자들 간에는 더 이상 채택되고 있지 않지만, 200년 가까운 동일과정설의 교육덕분에, 일반인 대부분에게는 아직도 결정적으로 남아 그들의 생각 속에 살아 숨 쉬고 있다. 격변설은 다음 기회에 다루기로 하고, 여기서는 150년 넘게 지배해온 지질학의 동일과정설만 보기로 한다.

먼저, 지층, 특히 협곡의 지층을 보면 동일(유사)한 성분으로 돼 있는 다양한 지층들이 모두 시루떡 같이 평평하게 돼 있다. 동일과정설은 오랜 시간에 걸쳐 차곡차곡 쌓여 형성됐다고 하는데, 흙이나 모래, 돌이 1억년동안 ‘차곡차곡’ 쌓일 수도 없지만, 차곡차곡 쌓였다 해도 평평한 형태를 유지할 수 없고, 심지어 수십 킬로까지 평평하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다양한 지층은 쌓여서 되는 것이 아니라 저탁류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한다. 저탁류(혼탁류)란 물과 함께 한꺼번에 이동하는 고밀도 퇴적물의 흐름으로, 지진, 화산활동, 산사태 같은 자연현상으로 만들어지는데, 대부분의 지질학자들은 저탁류로 지층이 형성된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굵은 흙과 고운 흙이 물과 함께 흐르는 저탁류는 이동하는 과정에서 흙의 크기에 따라 굵은 흙은 굵은 흙대로, 고운 흙은 고운 흙대로 서로 같은 패턴의 흙끼리 모이면서 뚜렷한 지층이 형성된다고 한다. 1994년 콜로라도 대학에서 행해진 ‘불균질한 모래 혼합물의 지층형성에 대한 실험’이 이를 증명했는데, 지질학의 기념비적 연구 성과로 알려져 있다.

둘째, 다양한 지층이 얼마나 빠른 시간에 만들어졌는가를 알려주는 가장 최근의 실증적 사례가 있다. 1980년 미국 워싱턴 주 세인트 헬렌 산에서 화산폭발이 있었는데, 히로시마 원폭의 2만개에 해당하는 위력이었다고 한다. 이 폭발로 산 정상 400미터가 날라 갔고(2950m에서 2550m로), 분출 5개월 만에 화산재나 진흙 등 화산성 쇄설물질의 흐름에 의해 최고 210미터 깊이의 협곡이 2개 만들어졌다. 대규모 산사태가 일어나면서 산 아래에는 100개가 넘는 층들로 구성된 층리가 7.5 미터 높이로 형성됐는데 불과 세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헬렌의 폭발은 한꺼번에 쌓이면서도 줄무늬가 만들어짐을 사실로 확인시켜줬고, 여러 층의 줄무늬를 세월의 결과로 보는 주장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현상을 알았기에 다행이다. 몰랐다면 아마 이 협곡은 캐니언 바닥에 흐르고 있는 강이 수천 만 년에 걸쳐 깎은 것이고, 또 지층은 수천만 년에 걸쳐 차곡차곡 쌓여서 이뤄졌다고 말했을 것이다.

■ 화석은 ‘퇴적’ 아닌 ‘격변’서 탄생

셋째, ‘다지층 나무화석’이란 두 개 이상의 지층 경계를 관통하는 나무의 화석을 말하는데, 서로 다른 지층은 매우 오랜 기간 분리돼 있다고 보는 진화과학에 의하면, 어떻게 하나의 나무 둥치가 두 개의 지층을 관통할 수 있는가를 설명하기 어렵다. 참고로 창조과학은 노아의 홍수와 같은 대격변에 의해 식물이 빠른 시간에 여러 층의 진흙에 묻혀 된 것이라고 한다.

넷째, 화석은 갑자기 흙 등에 의해 매몰되고 부식이 되지 않아야 만들어지므로, 쌓이고 쌓이는 퇴적작용으로는 화석이 만들어질 수 없다. 화석은 격변에 의해서만 가능하며, 동일과정설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랜드 캐니언과 같은 대협곡은 콜로라도 강의 ‘적은 물, 많은 시간’으로는 불가능하며, ‘많은 물, 적은 시간’으로 만들어졌다고 보아야 한다. 현재는 과거를 들여다볼 수 있는 열쇠지만, 유일한 열쇠도 전부인 열쇠도 아니다.

김학성 강원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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