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21세기 초엽 대한민국의 보수(保守)정치는 ‘궤멸(潰滅)’ 수준이다. 6·13 민선 7기 지방선거는 보수진영에 대한 완벽한 탄핵이었다. 제1야당 자유한국당은 수도권과 PK(부산·경남)를 더불어민주당에 내주며 ‘TK(대구·경북)한국당’으로 전락했다는 자조까지 나돌 정도다.

자멸적 패인은 무엇인가. 시대정신을 읽지 못한 데서 찾아야 한다고 본다. 기존의 보수 가치로는 국민적 지지를 얻을 수 없다는 게 이번 선거에 나타난 민심 소재인 것이다. 무엇보다 ‘철학의 부재’는 보수의 최대 아킬레스건이다. 반공과 국가주의에만 기댄 탓에 보편적 가치를 모조리 진보에 빼앗겼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2000년대 이후 한국 사회를 흔든 무상급식, 반값등록금, 88만원 세대, 흙수저 등의 이슈는 전부 진보 진영에서 내놓은 화두였다.

교육·문화·역사 등 사상과 담론 전쟁에서 진보에 주도권을 빼앗겼던 보수가 정치권력까지 내줬으니 속절없이 허물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여기에 보수의 무기였던 안보 이슈마저 남북화해 무드가 무르익으면서 평화 이슈로 넘어가자 보수의 입지는 더욱 좁아진 것이다. 국민대다수는 한국 사회의 불공정성과 자신을 가로막은 사회·경제적 절벽에 절망하고 있는데 보수만이 여전히 철 지난 산업화·안보·성장만을 반복하고 있으니 실망한 민심이 보수정당에 등을 돌렸다고 할 수 있다.

책임지지 않는 보수 지도자들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높다. 2007년 대선 이후 친노(친노무현)는 스스로 ‘폐족(廢族)’이라며 정치권에서 퇴장했는데 지난해 탄핵 이후 친박(친박근혜)·친이(친이명박) 가리지 않고 보수 인사 중 정계은퇴를 택한 이가 없기에 이번에 유권자가 선거를 통해 내쫓은 것이라는 진단도 있다.

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지방선거 참패 책임을 지고 사퇴했지만 수습책이 될 수 없다고 본다. 한국당식 색깔론 조장, 지역주의, 무조건적 반대 등 낡은 정치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점을 직시하고 인물교체 등 환골탈태해야만 ‘보수 회생’의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당은 무엇을 간직하고 무엇을 바꿀 지를 찾아내는 일부터 시작하길 당부한다. 예전처럼 이념적 고민 없이 ‘친북 좌파’ 또는 ‘포퓰리즘·중우정치’ 비판으로 때우려 해선 안 된다.

명분 없는 국회 보이콧과 막말로 보수를 결집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해서도 안 된다. 당원들이 정책결정 과정에 적극 참여하도록 공간을 넓히고 인적쇄신으로 당의 분위기를 바꿔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전통과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에 대한 지지를 한데 묶어 보수정당의 방향성을, 나아가 보수주의 정치철학의 틀을 바르게 세워 나가야 할 것이다. 개혁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는 수레의 양 바퀴처럼 함께 성장해야 할 ‘동반자’이다.
저작권자 © 일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