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본령을 망각한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 국민 의사를 대표해 협상하고 입법 등 의사결정을 해야 할 국회가 대의 민주주의 기능을 전혀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정치 협상이 사실상 중단됐고 각 정파의 지도부는 제 역할을 외면하는 등 '의사결정 시스템' 자체가 완전히 붕괴됐다고 할 수 있다. 참으로 개탄스런 정치 현실이자 국민 분노를 부르는 정치인들의 ‘배임 행위’이다.

여야는 20대 국회 후반기 원 구성 협상을 위한 원내 지도부간 회동을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국회가 변변한 안건 하나 처리 못한 채 6월 한 달 이상을 허송세월했다. 거센 국민적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이유이다. 남북·북미 정상회담 이후 급변하는 국제정세와 고용사정 악화로 처리할 숙제가 산더미지만, 국회는 후반기 원 구성조차 이루지 못한 것이다.

사실 본회의를 진행할 의장단 임기는 5월말 모두 끝난 상황에서 새 의장단 선출을 위한 여야 지도부간 원 구성 협의도 지방선거 등을 이유로 미뤄졌다. 의장단과 함께 입법 실무를 담당할 상임위원회도 모두 해산했다. 국회가 정상적으로 기능할 수 없는 가운데 회기가 열린 탓에 자유한국당 권성동 의원의 불체포특권 연장을 위한 '방탄국회'라는 비난도 듣고 있는 중이다.

국회 기능이 전반적으로 마비된 가운데 각종 개혁, 민생 현안은 산적한 상황이다. 먼저 정부가 중점 법안으로 추진하는 행정규제기본법 개정안, 금융혁신지원특별법 제정안, 산업융합촉진법 개정안, 정보통신 진흥 및 융합 활성화특별법 개정안, 지역특화발전특구규제특례법 개정안은 현재 국회 상임위원회에 상정된 채 한 발짝도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검경 수사권 조정 합의안의 입법화를 논의할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는 이 달 말로 임기가 끝난다. 여야가 사개특위 활동시한 연장을 논의해야 할 상황이다.

민생 안정과 관련해선 상가임대차보호법, 가맹점법이, 혁신산업 성장과 일자리 창출과 관련해선 규제혁신 5개법이 계류 중이다. 방송통신 분야에선 최근 정치권의 댓글조작으로 문제가 된 매크로 프로그램 관련 포털규제법, KBS·MBC 지배구조 개편을 위한 방송법이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민갑룡 경찰청장 내정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오는 9일까지 예정돼 있는 점, 정기국회 전까지 지난해 정부예산에 대한 결산처리가 이뤄져야 하는 점 등도 여야의 신속한 국회 정상화가 요구되는 지점이다.

문제는 20대 국회 전반기 동안 계류법안만 9천800여건, 6월 한 달만 해도 174건이 발의됐지만 어느 하나 처리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러니 ‘식물국회’라는 비판 속에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적용해 국회 세비를 지급하지 말아야 한다는 비아냥마저 듣고 있는 게 아닌가.

급변하는 한반도 안보 상황 관리와 지원체계도 시급하지만 한국 경제 또한 녹록치 않은 실정이다. 반도체 특수를 빼면 내수와 투자 모두 저조하다. 유가와 금리 상승, 원화 강세 등 거시경제 변수도 불안하다. 문재인 정부는 그동안 법인세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 기업의 투자의욕을 꺾는 정책을 쏟아냈다. 최저임금이 뛰면 생산성 향상과 노동개혁은 필수인데 쇠사슬 파업 등 노조의 구태는 그대로다.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해 신산업·신기술 분야의 규제를 과감히 개선하는 등 법적 뒷받침을 국회에서 해줘야 하는데 부지하세월이다. 민의의 중심인 국회가 국익을 생각하는 모습을 보이길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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