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길 속에 길이 있다 <20>

‘안전 제일’ 이라는 말이 있다.이 말의 유래는 다음과 같은 일화에 근거한다. 1905년 적자에 허덕이던 ‘us 스틸(steel)'사의 ceo로 부임한 그리니가 회사의 경영방침을 살펴보니 ’생산성 제일(productivity first)', 품질 제이(quality second)', ‘안전 제삼(safety Third)'으로 되어 있었다.

회사의 성격상 안전사고가 많은 반면, 이로인한 직. 간접적인 손실을 단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간과하고 있다는 걸 알아낸 그리니는 안전제일, 품질 제이, 생산성 제삼’ 으로 목표를 바꾸었다. 결과는 적자에서 흑자로의 전환이었다. 안전의 중요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이때부터 ‘안전 제일’ 이라는 말이 유행하게 됐다.

지금도 공사현장에서 쓰는 작업모자에는 십자 마크와 함께 이 ‘안전 제일’ 이라는 글자가 씌어져 있다. 정말이지 안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우리의 도로역사를 살펴봐도 마찬가지다. 무조건 길이 절실했던 시대가 있었다면 지금은 안전하고 쾌적한 길을 필요로 하는 때에 이르렀다.

길을 많이 만들어 교통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는 것도 경쟁력을 키우는 일이지만 무엇보다 안전을 고려한 길을 만드는 것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경쟁력이다. 안전 부족으로 일어나는 교통사고란 날씨나 천재지변처럼 통제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사전 예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효과적인 도로안전정책을 세우고 시행할 수 있다면 교통사고 발생 건수와 치명적인 사고율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다.

항공기 사고로 수백 명이 사망하면 요란하게 떠들어대면서 한 해에 무려 만 명 가까운 사람이 생명을 잃는 교통사고에 대해서는 무감각한 게 우리의 현실이다. 다행히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매년 줄고 있기는 하지만 안전율을 따져보면 OECD 국가 가운데 우리나라가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는 점도 부끄럽기 그지없다.

안전을 위한 대비책으로는 운전자의 안전의식과 효율적이고 지속적인 단속 등을 꼽을 수 있겠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도로관련 안전시설이 개선되고 확충되어야 한다. 이 같은 안전의 중요성을 고려해 부산지방 국토관리청장으로 재임하던 시절, 필자는 한 가지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다. 일반적으로 도로공사를 시행하기 위한 설계내역서의 공종을 보면 크게 1,토공 2,배수공 3,구조물공 4,교량공 5,터널공 6,포장공7,부대공으로 분류해 시공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따라서 안전시설에 관한 것은 주로 부대공 속에 일부로 포함되어 있었다. 안전문제가 이렇게 소홀하게 다뤄질 일이 아니라는 판단에서 새로 발주하는 공사는 물론 설계를 변경하는 공사에 대해서도 설계내역서에 ‘시설 안전공’ 항목을 별도로 만들게 했다.

전체 공사에서 안전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지를 모두가 느끼고 안전대책을 보다 철저하게 세우게 하려는 생각에서였다. 이것이 ‘안전’에 얼마나 기여했는지 구체적인 수량으로야 측정할 수 없는 일이지만 도로를 만드는 이들의 의식 속에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았다면 더할 나위 없이 반가운 일이다. 도로의 안전시설 가운데서도 중요한 역할의 하나가 바로 중앙분리대이다.

중앙선 침범은 치명적인 교통사고로 이어지므로 이를 막기 위한 조치가 필요한데 여기에는 두가지 방법이 있다. 첫 번째는 미국과 같이 땅이 넓은 나라에서 선택하는 방법으로, 별도의 시설을 설치하지않고 왕복도로를 넓은폭으로 분리 하는 것이다.

이 경우, 도로를 주행하는 차량이 순간적으로 방심해서 차로를 벗어나더라도 반대편 도로 까지는 충분한 거리의 여유가 있으므로 적어도 반대편 차량에까지 위협을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리나라나 일본처럼 땅덩어리가 작은 나라에선 이 방법을 쓰기가 어렵다. 그래서 선택하는 방법이 도로의 중앙부분에 방호울타리를 설치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방호울타리도 처음부터 중앙 분리의 목적으로 설치한 건 아니었다.

경부고속도로를 처음 만들 당시에는 방호울타리 대신 화단형 연석을 설치했으나 화단의 잡초 제거도 어렵고 나무뿌리가 포장하부까지 뻗어나가 도로를 파손하는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고 반대방향 차로의 차량이 화단을 넘어와 대형사고를 일으키기 일쑤였다. 중앙분리대의 가장 중요한 기능인 ‘안전’ 보다 ‘미관’에 더 치중한 결과였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점차 방호울타리로 교체하였다. 이처럼 고속도로에는 중앙분리대를 설치한 지 오래됐지만 국도를 포함한 일반도로에는 중앙분리대를 설치하지 않았다. 예산 사정 때문이다. 일반국도에 중앙분리대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건 최근이었다. 1996년 10월, 국무총리실 주관으로 열린 교통사고 감소대책회의에서 4차로 이상 일반국도에도 중앙분리대를 설치하기로 결정하고 난 후였다.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1996년, 중앙선 침범사고가 2만 2,488건이 발생하여 2,387명이 생명을 잃었던 데 비해 2002년에는 중앙선 침범사고가 1만4,447건으로 줄고 사망자 수도 918명으로 크게 줄었다. 도로국장 재임 시절, 필자는 새로 만드는 국도엔 중앙분리대를 만든다는 원칙을 세웠다. 또 기존에 만들지 않은 도로라도 추가로 중앙분리대를 설치한다는 방침도 마련했다. 단 기존의 국도에 한꺼번에 중앙분리대를 세울 수는 없으니 우선은 교통량이 많고 커브가 심한 길부터 설치하였다.

문제는 막대한 비용이었지만 여기에 들어가는 돈보다 더 비싼 게 우리의 안전 아니겠는가. 중앙분리대는 대형차량과 부딪쳐도 파괴되지 않는 강성과 소형차량과 부딪혔을 때 에너지를 충분히 흡수해 탑승자를 보호할 수 있는 연성을 함께 지녀야 한다. 이런 점을 감안해서 2003년부터는 중앙분리대를 포함한 차량 방호울타리 등의 안전시설에 대해 실물충돌시험을 거쳐 성능을 검증토록 하고있다.

충격완화와 더불어 안전에서 중요한 것은 대형차량의 조명이 유발하는 눈부심이다. 이때 운전자가 순간적으로 주의를 잃게 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 중앙분리대에 방현망을 함께 설치하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 삶에 절대적으로 안전한 공간은 존재하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좀더 안전한 공간을 만들어나갈 수 있다. 도로도 마찬가지다. 자동차를 몰지 않고 주차장에 모셔두기만 한다면 안전하겠지만 자동차는 그렇게 주차하라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좀더 안전한 도로를 만들어나가려는 노력일 것이다.


글 : 남인희 前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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