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춘추시대 명재상 관중은 군신관계를 명쾌하게 정의했다. 그의 지도자와 참모 역할론은 오늘에도 빛난다. 관중은 '신하가 임금처럼 행세하며 함께 통치하려 들면 국가가 혼란해진다(共道致亂)'고 전제, "군주가 도리에 맞게 분명하면 상하가 통하고 발전하지만, 신하가 권세를 부리면 국정이 왜곡되고 백성의 삶이 피폐해진다(臣權歪曲塞民情)."고 강조한 것이다.

물론이다. 권력자는 최측근들을 경계해야 한다. ''참모나 친인척을 무조건 총애하면 힘이 군주에게서 신하에게로 옮겨가 군주의 신변마저 위태롭게 한다(愛臣太親 必危其身).'는 경책이다. 2천여 년 전 역사가 오늘에 주는 교훈이다. 맞다.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대화"라는 말과 궤를 같이 한다. 영국 외무 공무원과 '더 타임스' 부편집인, 옥스퍼드대 정치학 교수를 지내는 등 다양한 이력을 지닌 에드워드 H 카가 저서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규정한 말이다.

■장관 대동 시찰 비판…반구저기를

카의 역사관은 혁명적이다. 역사는 점진적인 개선을 추구한 사람들이 아닌, 기존 질서에 근본적인 과감한 도전을 감행했던 사람들에 의해 진보됐다고 밝혔다. 그는 책 곳곳에 카를 마르크스의 말을 인용했고 공감을 표했다. 이 때문에 '역사란 무엇인가'는 군부 권위주의 정권 시절 한국에선 금서(禁書)로 분류돼 일반인은 쉽게 접하기 어려웠던 책이기도 했다.

그 시기 주목되는 단체 중 하나가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다. '철권(鐵拳)통치'로 악명 높던 5공 정권 시절, 전국 대학 총학생회장들이 결성한 단체다. "군부독재정권과 제국주의자 타도" 등을 목적으로 설립됐다. 정치 편향이라는 비판과 김일성 주체사상에 경도됐다는 지적이 작지 않았지만 이 땅의 민주화를 이끈 학생운동의 선봉에 섰다.

전대협 중심인물 중 청와대 임종석 비서실장이 있다. 3기 의장으로서 1989년 임수경의 방북 프로젝트인 '평양 축전참가'를 주도했다. 재선 국회의원 출신의 임 실장이 요즘 자기정치를 하고 있다는 논란 가운데 서 있다. 임 실장은 앞서 문재인 대통령의 유럽 순방 기간이던 지난달 17일 국가정보원장, 국방부장관, 통일부장관을 대동해 강원도 철원의 비무장지대(DMZ) 남북 공동유해발굴 현장을 시찰해 빌미를 줬다. 특히 청와대 홈페이지 첫 장에 선글라스를 낀 임 실장 영상이 방영되면서 야권의 거친 공격을 받고 있다.

"국민은 또 다른 차지철, 또 다른 최순실을 보고 싶지 않으니 자기 정치를 하려면 자리에서 내려오라"는 말까지 듣고 있다. 청와대는 임 실장이 남북공동선언 이행추진위원장으로서 현장 상황을 점검하기 위한 차원이었다고 해명하며, 동의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하지만 무리했다. 임 실장은 '너무 나선다'는 비판이 점증하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왜 그렇게 비치고 있는 지, 자신에게서 답을 찾는 반구저기(反求諸己)하길 기대한다. 자중자애다.

■지도자나 참모, 제 역할 충실해야

사실 장관급 3명을 대동할 정도면 이낙연 국무총리가 갔어야 하는 게 순리라고 본다. 임 실장은 오버한다는 지적을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할 일이다. 한자어로 숨길 비, 글 서 자를 쓰는 '비서(秘書)'는 앞에 나서는 게 아니라, '주군'이 올곧게 판단할 수 있도록 치우침 없는 정책 대안과 정세 분석, 민심 등을 조용히 전하는 게 책무일 터이다.

문 대통령도 임 실장에 대해 신뢰하면서 유력 차기 대선후보군으로 성장시킬 목적 아래, '장관 대동 DMZ 방문'을 재가했다면 자연스럽지 못하다. 내각이 할 일을 참모가 수행하는 건 적절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세민, 곧 당나라 태종을 보자. 그는 사람 보는 눈이 밝았다. 누구든 한 번만 보면 재주가 있는지 어리석은지, 충성스러운지 요사스러운지를 가려낼 수 있었다. 태종은 늘 말했다. "임금은 오직 한 사람. 따라서 마음은 하나뿐이다. 그런데 그 한 마음에 들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모여든다. 이들은 각기 장기(長技)를 가지고 임금에게 다가온다. 그러므로 임금이 조금만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이 사람들에게 넘어가게 돼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그래서 임금은 잘 판단해야 한다."

자칫 최고지도자의 판단이 흐려져 측근 참모 몇 명에게 휘둘리게 되면 국난(國難)을 당하기 십상이다. 진시황이 병으로 죽자 환관 조고가 설쳐 망국에 이르게 된 '지록위마(指鹿爲馬)' 교훈이 오버랩 되는 게 기우이길 바란다. 그렇다. 신하가 임금처럼 행세하면 나라가 어지러워진다. 지도자나 참모나 제 자리, 제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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