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 대동 시찰 비판…반구저기를
카의 역사관은 혁명적이다. 역사는 점진적인 개선을 추구한 사람들이 아닌, 기존 질서에 근본적인 과감한 도전을 감행했던 사람들에 의해 진보됐다고 밝혔다. 그는 책 곳곳에 카를 마르크스의 말을 인용했고 공감을 표했다. 이 때문에 '역사란 무엇인가'는 군부 권위주의 정권 시절 한국에선 금서(禁書)로 분류돼 일반인은 쉽게 접하기 어려웠던 책이기도 했다.
그 시기 주목되는 단체 중 하나가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다. '철권(鐵拳)통치'로 악명 높던 5공 정권 시절, 전국 대학 총학생회장들이 결성한 단체다. "군부독재정권과 제국주의자 타도" 등을 목적으로 설립됐다. 정치 편향이라는 비판과 김일성 주체사상에 경도됐다는 지적이 작지 않았지만 이 땅의 민주화를 이끈 학생운동의 선봉에 섰다.
전대협 중심인물 중 청와대 임종석 비서실장이 있다. 3기 의장으로서 1989년 임수경의 방북 프로젝트인 '평양 축전참가'를 주도했다. 재선 국회의원 출신의 임 실장이 요즘 자기정치를 하고 있다는 논란 가운데 서 있다. 임 실장은 앞서 문재인 대통령의 유럽 순방 기간이던 지난달 17일 국가정보원장, 국방부장관, 통일부장관을 대동해 강원도 철원의 비무장지대(DMZ) 남북 공동유해발굴 현장을 시찰해 빌미를 줬다. 특히 청와대 홈페이지 첫 장에 선글라스를 낀 임 실장 영상이 방영되면서 야권의 거친 공격을 받고 있다.
하지만 무리했다. 임 실장은 '너무 나선다'는 비판이 점증하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왜 그렇게 비치고 있는 지, 자신에게서 답을 찾는 반구저기(反求諸己)하길 기대한다. 자중자애다.
■지도자나 참모, 제 역할 충실해야
사실 장관급 3명을 대동할 정도면 이낙연 국무총리가 갔어야 하는 게 순리라고 본다. 임 실장은 오버한다는 지적을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할 일이다. 한자어로 숨길 비, 글 서 자를 쓰는 '비서(秘書)'는 앞에 나서는 게 아니라, '주군'이 올곧게 판단할 수 있도록 치우침 없는 정책 대안과 정세 분석, 민심 등을 조용히 전하는 게 책무일 터이다.
문 대통령도 임 실장에 대해 신뢰하면서 유력 차기 대선후보군으로 성장시킬 목적 아래, '장관 대동 DMZ 방문'을 재가했다면 자연스럽지 못하다. 내각이 할 일을 참모가 수행하는 건 적절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세민, 곧 당나라 태종을 보자. 그는 사람 보는 눈이 밝았다. 누구든 한 번만 보면 재주가 있는지 어리석은지, 충성스러운지 요사스러운지를 가려낼 수 있었다. 태종은 늘 말했다. "임금은 오직 한 사람. 따라서 마음은 하나뿐이다. 그런데 그 한 마음에 들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모여든다. 이들은 각기 장기(長技)를 가지고 임금에게 다가온다. 그러므로 임금이 조금만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이 사람들에게 넘어가게 돼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그래서 임금은 잘 판단해야 한다."
자칫 최고지도자의 판단이 흐려져 측근 참모 몇 명에게 휘둘리게 되면 국난(國難)을 당하기 십상이다. 진시황이 병으로 죽자 환관 조고가 설쳐 망국에 이르게 된 '지록위마(指鹿爲馬)' 교훈이 오버랩 되는 게 기우이길 바란다. 그렇다. 신하가 임금처럼 행세하면 나라가 어지러워진다. 지도자나 참모나 제 자리, 제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 주필
황종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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