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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순의 풍수보따리] 밀교풍수<하>밀교의 택지법은 불교풍수의 한 유형
길지란 찾는 것만이 아니라 흉지를 길지로 바꿀 수 있다는 개념 부여
■신라의 밀교와 도선국사의 풍수

신라에 밀교를 최초로 전한 승려는 안홍安弘으로 600년에 서역승 3명과 중국승 2명을 데리고 와서 『전단향화성광묘녀경栴檀香火星光妙女經』을 번역하였다. 명랑은 632년 당나라로 가서 밀교를 공부하고 돌아와서 금광사金光寺를 중심으로 포교를 하였으며 668년(문무왕8)에는 신입비법을 행하여. 당나라군대를 물리쳤다.

순밀사상은 혜통이 처음으로 들여왔으며 현초・의림・혜일의 밀교승이 있었다. 신라의 밀교는 신인비법神印秘法, 사리탑舍利塔, 오대산신앙五臺山信仰, 소재활동消災活動을 통하여 활발하게 민중으로 파고들었다.

도선은 선문구산禪門九山 중 동리산문桐裏山門을 개창한 혜철선사(791-861)의 직계 제자로 선승禪僧이었다. 혜철선사의 스승이었던 서당지장西堂智藏도 밀교승으로 알려진 분이다.

도선국사의 풍수가 어떤 특징을 지녔지 알려면 옥룡사비문에 의거하여 분석해야한다.

“처음에 대사가 옥룡사(玉龍寺)를 중건하기 전에는 지리산 구령(毆嶺)에서 암자를 짓고 있었는데, 이상한 사람(異人)이 대사의 앞에 와서 뵙고 말하기를, '제가 세상 밖에서 숨어 산 지가 근 수백 년이 됩니다. 조그마한 술법이 있으므로 대사님에게 바치려 하니, 천한 술법이라고 비루하게 여기지 않으신다면 뒷날 남해의 물가에서 드리겠습니다. 이것도 역시 대보살(大菩薩)이 세상을 구제하고 인간을 제도하는 법입니다'하고, 간데 온데 없어졌다.

대사가 기이하게 생각하고 그가 말한 남해의 물가를 찾아갔더니, 과연 그런 사람이 있었는데 모래를 쌓아 산천의 순역(順逆)의 형세를 보여 주었다. 돌아본 즉 그 사람은 없어졌다. 그 땅은 지금 구례현(求禮縣)의 경계인데, 그 곳 사람들이 사도촌(沙圖村)이라 일컫는다. 대사가 이로부터 환하게 깨달아 음양오행의 술법을 더욱 연구하여, 비록 금단(金檀)과 옥급(玉笈)의 깊은 비결이라도 모두 가슴속에 새겨 두었다.“ (옥룡사비문 : 한국고전번역원 역)

도선풍수는 밀교의 지리관과 이인으로 대표되는 신선관, 산천순역의 형세풍수, 호국사상, 음양오행술에 도참사상이 융합되어 나타난 새로운 풍수관 즉, 비보사상으로 나타난다. 도선의 비보사상은 국토를 길지와 흉지로 나누어서 흉지에다가 사탑을 건립함으로서 전국토를 길지로 만들어 국태민안을 이루는 것이다. 도선의 풍수는 개인이나 가문을 위한 이기적이고 폐쇄적인 풍수가 아니라 대국적大局的이고 대승적大乘的이며 통합적인 지령사상地靈思想이다.

도선국사가 처음으로 풍수에 입문하게 된 것은 이인異人이 산천순역의 형세를 알려주었다는 것이다. 이인은 단군이래로 토착화되어 전수되어온 신선도의 맥을 잇고 있는 사람으로 추정된다. 이인異人의 풍수는 음양오행술도 아니고 술법풍수도 아니며 중국풍수도 아니다. 비문에 의하면 그 후에 음양오행술을 가미했다고 하므로 이인異人풍수야 말로 도선풍수의 근간일 수도 있다.

■사탑비보풍수

고구려와 신라에 전해진 불교가 대부분 밀교와 융합된 것으로 추정된다. 신라 지배층과 결탁한 화엄종과 6두품출신의 지식인층과 지방호족들이 호응한 구산선문이 신라의 불교를 이끌었으나, 교종은 화엄밀교로, 교종에 반기를 든 선종인 구산선문도 인도의 밀교승인 선무외善無畏(637-735)와 직간접적으로 도통의 연결고리를 갖고 있었다.

신라의 불교는 선종 교종할 것 없이 밀교의 영향 아래에 있었다. 밀교에서는 풍수라는 말이 없다. 단지 택지법이라고 한다. 밀교 택지법에서는 만다라를 개설할 경우에는 불보살佛菩薩이나 지신地神에게 공양을 하는 일련의 과정을 거친다. 이것이 비보풍수의 시작이며, 사탑비보풍수는 신라의 불교가 가진 화두였다.

비보사탑설은 신라말기의 정치적 경제적 혼란 상황에서 민중들의 염원을 반영하는 신앙적인 의식으로 나타났고, 지배층의 호국사상과 조화가 되어 매우 유행했다. 비보사탑은 불력의 상징적인 존재이다. 『묘법연화경』의 천태사상에서 ‘불타의 생신生身으로 여겨지는 법신法身을 대리하는 것이 사리를 봉안한 사리탑인데, 불타의 위대성과 강력한 힘에 의존한 사리탑신앙에서 비보사탑설, 보탑설이 파생된 것이다.

조탑신앙造塔信仰은 사리를 얻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인지라, 사리탑이 아니더라도 99탑을 조성하면 멸죄연수滅罪延壽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조탑에서는 탑신 안에 조탑경造塔經인 무구정광다라니경無垢淨光陀羅尼經을 넣었다. 경주 황복사 3층석탑, 창림사 3층석탑, 불국사 석가탑, 대구 동화사 비로암석탑과 금당암 3층석탑, 영일 법광사지 3층석탑, 봉화군 서동리 3층석탑, 백성산사 길상탑에서 무구정광다라니경 나온 것이 그 예이다.

도선국사가 창건한 白雲山內院寺事蹟(백운산내원사사적)에 이르기를 ‘사람의 질병을 쑥뜸으로 고치는 것처럼, 산천에 결함이 있는 땅은 절을 지어 보호하고, 기세가 지나친 땅은 불상으로 막고, 기운이 달아나는 땅은 탑을 세워 멈추게 하고, 기운이 거슬리는 땅은 당간을 세워 기를 걸면 천하가 태평하게 될 것이다.’라고 한다. 땅 전체를 사람의 몸으로 보고 풍수적인 판단을 했다.

비보의 유형으로는 국경비보형, 도성비보형, 재난방비형, 지세비보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국경비보형은 국경이나 바다 등 외침이 잦은 길목에 사탑을 세워 감시의 기능을 부여한 경우이고, 도성비보형은 도읍지나 지방거점도시에 거대한 사탑을 세워 통치력을 제고한 경우이며, 재난방비형은 가뭄이나 홍수에 대비하고자 위험상황을 인지할 수 있는 위치에 사탑을 건립하여 경보의 기능을 부여한 경우이며, 지세비보형은 민중의 생활을 안정적으로 유도하기 위해 허약한 지형을 보호해 주고자 흉상凶相을 막아주고 수구를 가려주기 위해 인공물인 사탑을 세우는 경우이다.

■밀교풍수의 장점

밀교의 택지법은 불교풍수의 한 유형이라고 볼 수 있다. 밀교의 강력한 융합력은 우리나라 고유의 신앙과 민간신앙인 칠성신앙, 용왕신앙, 산신신앙까지 흡수하였다. 밀교는 우리나라 불교의 기복신앙에 끼친 영향이 지대하다.

밀교풍수의 영향으로 길지란 찾는 것만이 아니라 흉지를 길지로 바꿀 수 있다는 개념을 부여하기도 했다. 그 결과 우리나라에 사탑의 건립이 융성하였고, 전국적으로 천년고찰과 사지寺址가 많이 분포하게 되었다. 또한 비보풍수가 발달하여 마을풍수와 주택풍수, 누각과 지명 심지어는 조산造山과 석조물 등을 세울 때 비보의 원리를 이용하였기에 우리의 인문지리학과 인문건축학이 발달하는 근거를 제시했다.

완전무결한 땅이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비보적 술법을 인용한다면 보다 숙명적인 자세를 극복하고 지리적 보완을 통하여 안정적인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으며, 보다 살기 좋은 마을이나 건물을 지을 수 있다는 안도감을 부여함으로써 민중들이 삶을 구가하는데 심정적인 도움을 주는데 기여했음을 평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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