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욱신 경제산업부 기자
[일간투데이 이욱신 기자] 지난 7일 국회 예산결산위원회 소속 박용진 의원(더불어민주당·서울 강북을)이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지난 2015년 옛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정에서 기업가치를 '뻥튀기' 하기 위해 고의로 분식회계를 했다는 정황이 담긴 내부 문건을 공개했다.

재계 관계자는 "옛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당시 비정상적인 시장가격에만 의존해서 (이재용 부회장이 지분을 많이 보유한 제일모직에게 유리하도록) 합병비율을 무리하게 책정한 것을 사후적으로 정당화하려다가 생긴 분식회계"라며 "통합 삼성물산 입장에서는 장부가치가 낮은 회사(제일모직)를 높은 가격에 산 격이니 이 차액을 회계적으로 적절히 처리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이번 사태를 정리했다.

이번에 공개된 내부문건 내용도 충격적이었지만 그 공개방식 또한 주목을 끌었다. 박 의원측은 의원실을 찾은 기자들에게만 명함을 받고 관련 자료를 제공했다. '자기 부고 기사 빼고는 무조건 언론에 노출되는 것이 좋다'는 말처럼 홍보에 사활을 거는 대중 정치인이 스스로 폭발성 큰 뉴스의 확산 가능성을 제한한 것이다.

그 배경에는 지난 2005년 노회찬 전 의원(당시 민주노동당)이 이른바 '삼성 X파일'을 입수해 그 내용을 분석한 뒤 보도자료로 만들어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리면서 삼성측으로부터 떡값(명절용 뇌물)을 받은 검사 실명을 공개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은 당시 삼성재벌과 정치권, 검찰 등의 불법 유착관계를 노골적으로 보여줬지만 본 내용은 외면되고 '불법 도청' 문제만 집중 부각됐다. 이 사건으로 노 의원은 부정과 부조리의 고발자였지만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되레 징역 4개월, 집행유예 1년, 자격정지 1년 유죄확정이라는 대법원 판결을 받았다.

우리 헌법은 국민의 대표로서 국회의원이 자유롭게 발언하고 표결함으로써 국회가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을 돕고 입법 및 국정 통제를 원활히 할 수 있도록 '국회의원이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과 표결에 관하여 국회 밖에서 책임을 지지 않는다(헌법 제45조)'고 면책특권을 보장하고 있다.

하지만 위 삼성 X파일 판결에서 대법원은 "국회의원이라는 피고인(노 의원)의 지위에 기해 수사기관에 대한 (떡값 검사에 대한) 수사의 촉구 등을 통해 그 취지를 전달함에 어려움이 없었음에도 굳이 '전파성이 강한' 인터넷 매체를 이용해 불법 녹음된 대화의 상세한 내용과 관련 당사자의 실명을 공개하는 행위는 그로부터 얻어지는 이익(공익)이 통신비밀이 유지됨으로써 얻어지는 이익(떡값 검사 등의 사익)을 초월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해 노 의원의 면책특권을 제약했다.

다음달 1일 세계 최초로 5G(5세대 이동통신) 첫 전파 송출을 앞둘 정도로 속도에 열광하는 자타 공인 IT강국 대한민국에서 왜 국민의 정치적 의사결정을 돕는 과정만은 '느림의 미학'을 구현하는지 의아한 노릇이다. 자동차 전방에 적기 안내인을 배치해 보행인과 마차에게 자동차의 접근을 알리도록 한 '적기 조례(Red Flag Act)' 때문에 영국의 자동차 산업 발전이 지체됐다는 이야기가 있다. 4차산업혁명시대에 우리 정치가 발전의 추동자가 되지 못한 데에는 이런 적기조례성 판결이 있어서가 아닐까. 삼바 내부문건을 받아 오는 길에 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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