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긴 시간에 비춰 볼 때 일 년은 찰나에 불과하다. 세상은 예전처럼 흘러가고 있다. 천지는 쉼 없는 운행을 하고 있는 것이다.

‘논어’에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은 변함없이 운행하고, 만물은 여전히 낳고 자라니, 하늘은 무엇을 말하는가(四時行焉 百物生焉 天何言哉).”라고 말한 게 잘 보여주고 있다. 세월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흘러가기에 시작이 끝이고 끝이 시작이라고 하겠다. 그래서 시작이 좋으면 끝이 좋고, 끝이 좋으면 또 다른 시작이 좋다고 하는 것이다.

다사다난했던 격동의 2018년도 저물어 간다. 구세군 자선냄비도 어김없이 등장했다. 세모(歲暮)다. 아쉬움이 가슴을 쓰리게 하는 때이다. 이루지 못한 계획들이 생각나서도 그러겠지만, 한 해가 가고 나이 들어간다는 회한이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황혼빛이 아름답다고 말하지만 거기에는 그리움과 아쉬움, 그리고 아픔과 슬픔이 짙게 묻어 있다. “미(美)는 우수(憂愁)와 함께 한다”는 존 키츠의 말처럼, 우리는 한 해가 가는 12월에서 내면으로 젖어드는 숭고한 아픔과 얼룩진 아쉬움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잿빛 미래’에 희망을 잃은 서민들

새해 초 마음먹었던 일을 할 걸, 주변에 좀 더 잘 해 줄 걸 같은 회한이다. 그렇다. 가난하고 외로운 이들에 대한 따뜻한 마음을 전해야 한다. 사람은 ‘꿈’을 먹고 사는 생명체다. 내일, 곧 미래에 대한 희망이 보여야 오늘의 고생도 기꺼이 감내하고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나는 법이다.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에겐 사회와 국가가 도와주고 이끌어주는 게 선진사회의 척도인 것이다.

사리가 이러함에도 21세기 초엽 적잖은 서민들에게 대한민국은 ‘잿빛 미래’다. 희망 상실의 사회라는 조사보고가 있어 안타깝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한국인의 행복과 행복 요인’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 국민 5명 중 1명(20.2%)은 ‘현재 불행하며 과거에 비해 나아지지 않았고 미래에도 그럴 것’이라고 답한 것이다. ‘현재도 괜찮고 미래도 대략 괜찮다’는 응답은 56.7%에 그치고 있다.

우리 사회에는 위기에 내몰린 구성원을 보호해주는 사회안전망(Social Safety Nets)이 부실해 삶의 기로에서 한 번 미끄러지면 수렁에 빠지고 만다고 여기는 이들이 많은 것이다. 과거, 지금도 불행하고 미래에도 삶이 불행할 것이라고 보는 ‘행복취약층’도 적지 않게 나타나 한국 사회의 자화상은 우울함 그 자체여서 충격적이다.

한국인이 느끼는 삶의 불안은 사회 시스템에 대한 불신 탓이 크다는 사실이 주목된다. ‘사업 실패나 파산 등을 하면 웬만해선 회복할 수 없다’는 질문에 55.9%가 ‘동의한다’고 답한 게 잘 보여주고 있다. ‘첫 직장에 들어갈 때 일류 회사에 못 들어가면 평생 꼬인다’는 응답도 35.7%로 나타났다. 성실히 노력해도 인생 반전의 기회가 거의 막혀 있다는 반증이다. 심지어 생활 여건과 상황이 아주 좋은 사람들도 자칫하면 헤어나올 수 없는 위기에 빠질 수 있다고 느끼는 이들이 적지 않은 건 한국사회의 불안정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정성 깃든 따뜻한 나눔 손길 절실

사회 전반에 팽배한 시스템에 대한 불안과 불신을 해소해야 하는 게 시급함을 말해주고 있다. 사실 우리의 경제 규모는 명목 국내총생산(GDP)를 기준으로 2017년 기준 세계 12위를 기록하고 있다. 한데 삶의 질은 정반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로 비교 대상을 좁히면 34개국 중 32위, 유엔의 세계행복보고서(2018)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행복지수는 5.875점으로 157개국 중 57위에 머문다. 행복감에 큰 영향을 주는 소득·소비 생활과 고용 상황 개선 등에 힘써야 한다는 증거들이다.

중국 진(晉)나라 때 관리 부현은 저서 ‘부자(傅子)’에서 백성의 삶을 보살펴야 한다며 이렇게 강조했다. “백성들로 하여금 의복을 풍족하게 해 몸을 따뜻하게 하고, 먹을 것을 풍족하게 해 배고픔을 달래고, 집을 지어 비바람을 피하게 하면 백성들은 쾌적한 생활을 할 수 있다. 천하의 정도로 백성을 보육하면 백성은 즐거운 생활을 할 수 있다(衣足以暖身 食足以充口 居足以避風雨 養以大道 而民樂其生).”

오랜 불황으로 중산층이 무너지고 서민의 삶도 힘들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나눔을 실천해야 하겠다. 베풂의 양이 중요한 게 아니다. 따뜻함이 배어 있는 작은 손길에서 소외된 이웃들은 내일을 꿈꾸게 된다. 한 해의 끝자락에서 우리 함께 새 희망을 보자. / 칼럼니스트
저작권자 © 일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