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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성 칼럼] 성탄절과 예수강원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
  • 일간투데이
  • 승인 2018.12.18 16:50
  •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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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은 예수님(이하, 예수)이 인간의 죄를 구속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날을 기념하는 기독교(가톨릭, 개신교) 최대의 축제다. 지금은 그저 하루 노는 날로 그 의미가 많이 퇴색했지만, 비기독교인이라도 그 의미를 한번 쯤 분명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예수가 정말 하나님인지, 하나님인 예수가 왜 이 땅에 오셨는지, 예수는 진정 메시아(구원자)인지 등의 진위 여부이다.

필자는 기독교가정에서 태어나 성장했다. 이를 보통 모태신앙이라고 한다. 모태신앙을 가진 경우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셨으며, 세상 끝날 세상을 심판하러 다시 오신다는 기독교의 핵심 진리를 주어진 사실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나 모태신앙이라 해서 기독교 진리를 의심 없이 고민 없이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청소년 및 청년의 과정을 거치면서 주입된 내용에 거짓이 없는지, 정말 그런지, 힘든 자기검열을 거치게 된다. 이를 통과하지 못해 교회를 떠나게 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 스스로를 하나님이라 칭한 예수

첫째, 성경을 읽다보면, 하나님이 창조주라는 사실은 어렵지 않게 받아들이게 되는데(?), 가장 어려운 부분은 예수는 분명 사람인데, 성경도 스스로도 하나님이라고 하는 부분이다. 예수는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났고, 성장과정이 있으며, 목마르고 시장하고 피곤하다고 하시며, 하나님께 기도한다. 반면 예수는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하며, 태초부터 있었다고 한다. 인성과 신성을 모두 지니고 있다는 것은, 이성의 한계를 넘는 것으로 설명하기도 믿기도 어렵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의 신성을 분명히 말하고 있으니 인성만 강조하는 것은 올바른 성경해석이 아니다.

저명한 교부·신학자·목사들이 모두 예수의 신성과 인성을 인정하고 있기도 하지만, 예수의 신성을 부정하게 되면 예수는 존경의 대상은 될 수 있어도 숭배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또 만일 신성을 부정하게 되면 성경 자체를 거짓으로 보아야 하기에, 예수는 신성과 인성을 모두 지닌 분으로 보지 않을 수 없다. 이슬람은 예수는 마리아의 아들이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고 하면서, 예수도 알라가 만든 피조물이라고 한다. 예수의 신성과 인성을 인정하는 성경과 예수의 신성을 부정하며 알라의 피조물로 보는 코란, 둘 중에 하나는 거짓이다.

둘째, 예수가 하나님이라면 왜 이 땅에 사람의 몸으로 오셨는지가 궁금하다. 이슬람의 하나님(알라)은 인간과 멀리 떨어져 있고 인간 사후에 인간의 행위에 대해 심판한다고 한다. 코란이 명하는 5가지 행동을 지키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한다. 반면 기독교의 하나님은 인간의 죄를 사해주기 위해 자신의 아들 예수를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게 하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게 했다고 한다. 그 어느 것도 쉽게 믿어지지 않지만, 인간과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 최후 심판만 하는 창조주보다는 인간에게 가까이 오셔서 인간의 죄를 구해주시고 인간과 소통하는 창조주가 더 마음에 와 닿는다. 모든 종교에서는 인간이 신 앞에 나아가지만 신이 인간에게 사랑으로 다가온 것은 기독교뿐이다. 인간의 행위를 가지고 심판하게 되면 살아남을 자는 단 한 명도 없다. 하나님은 인간이 되지 않는 한 죽으실 수 없기에, 인간의 몸으로, 즉 성육신을 통해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

셋째,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를 메시아로 보지 않았다. 당시 예수의 스펙은, 천한 목수의 아들이었고, 학교에 다닌 적도 없으며, 출신지역이나 성장배경을 볼 때, 당시 주류사회의 시각에서는 예수를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보는 것은 정말 어려웠을 것이다. 더구나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칭했으니 신성모독 그 자체였다. 그러나 3년간의 예수의 언행은 인간의 능력으로는 감히 할 수 없는 말과 업적이었다. 예수는 자신들의 해결능력 밖의 존재였기에 죽이는 방법 외에 다른 방법은 없었다.

■ 왜 ‘이 땅에 오셨는지’ 돌아볼 필요가

넷째, 예수는 메시아, 즉 그리스도로 보기에 충분하다. 예수가 실존인물이라는 사실에 다툼이 없고, 예수는 당시 유대지도자들 눈에 비쳤듯이 미치고 정신 나간 사람이거나, 아니면 하나님의 아들, 둘 중 하나다. 인류는 예수를 인간석차 4등 안에 올려두고 있으니(4대 성인) 그를 사기꾼이나 미치광이로 볼 수 없다. 그렇다면, 자신이 말했듯이 하나님의 아들이거나 하나님일 수밖에 없다. 오스왈드 챔버스는 ‘주님은 나의 최고봉’에서, 예수는 이 세상‘으로’ 태어난 것이지 이 세상으로‘부터’ 태어난 것이 아니며, 예수는 역사 속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외부로부터 역사 속으로 들어왔고, 사람이 하나님이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성육신한 것으로, 예수의 탄생은 하나님의 강림이라고 했다.

인간에게 죽음은 피할 수 없고, 언제 닥칠지 모르며, 죽음 이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장담할 수 없기에, 또 죽음 후에 아차해서도 안 되기에, 죽음이후의 세계에 대한 보험이 필요하다. 보험을 들 때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것은, 보험료나 보험지급률이 아니라 보험회사의 안정성이다. 보험회사가 파산돼 한 푼도 건지지 못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요즘 TV 드라마에도 자주 윤회가 언급되는데 탐탁지 않다. 윤회설은 시작도 끝도 없이 영겁에 걸쳐 윤회를 되풀이한다는 것으로 힌두교와 불교의 주된 구원교리인데, 맨 처음 태어난 사람이나 짐승은 어떻게, 또 어떤 업보로 태어나게 된 것인지 꼭 체크해 보아야 할 대목이다. 승려나 신부는 아는 분이 없지만, 목사는 소개할 수 있다. 필자는 서울 양재동에 있는 새로운 교회(한홍 목사)를 다니고 있다. 춘천에 거주하면서 왜 그 먼 곳까지 다니느냐고 의아해 하는 분들이 적지 않으나, 얼마나 좋으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가겠냐는 마음을 웃음으로 답한다.

* 기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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