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채수완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 리스크 애널리틱스(Risk Analytics) 담당 이사
■ 도량형의 통일

지금으로부터 약 2000여년 전인 기원전 220년 무렵 진시황이 춘추전국시대의 종지부를 찍고 중국 최초의 통일왕조를 세우면서 시행했던 대표적인 제도로 도량형의 통일을 꼽는다. 진나라 이전의 각 나라들은 문자, 화폐, 도량형이 서로 달랐으나 이를 통일하면서 지역 간의 교류가 활발해 지는 계기가 되었다. 길이, 무게, 부피 등을 재는 기본 단위인 도량형이 통일되니 자연스럽게 상거래도 활성화 되었다. 물론 이 보다 훨씬 이전부터 고조선이 먼저 도량형을 통일했다는 문헌도 있으나 적어도 중국 내에서는 진시황이 도량형을 통일한 것으로 정설로 받아들여 지고 있다. 진시황이 살던 시대는 유럽으로 따지면 지중해 패권을 두고 로마와 카르타고가 이른바 ‘포에니 전쟁’을 치열하게 벌이던 때이고, 유럽에서는 진시황만큼이나 유명한 한니발 장군이 활약하던 때이니 정말 오래 전 이야기다.

■ 단위의 중요성

70년대만해도 신발을 살 때 “10문 짜리 하나 주세요” 라는 말이 흔했다. 문은 길이를 재는 단위로 흔히 신발 사이즈를 잴 때 사용하던 단위다. 1문은 약 2.4cm를 의미한다. 미국의 경우 신발 사이즈를 재는 단위가 여성용과 남성용이 다르다. 여성용 270mm는 10 이고, 남성용 270mm는 9로 표기한다. 30여년 전 한국의 신발을 재는 단위와 현재 한국의 신발을 재는 단위, 그리고 현재 미국의 신발을 재는 단위가 모두 다르다. 이렇듯 일원화되지 않은 단위는 공급자나 소비자 모두에게 혼란을 가져올 수 밖에 없다.

1986년 1월 미국은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발사 실황을 전세계에 중계했다. 카운트다운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주선에 이상이 생기고 폭발하는 장면이 전세계인에게 생중계됐다. 챌린저호는 발사 73초 만에 동체에 불이 붙어 폭발했다. 사고 원인을 분석한 결과, 외벽 이음새 설계를 다른 부분과 같은 미터(m)가 아닌 인치(inch)로 설계해 차이가 발생했고, 그로 인해 틈새가 벌어졌다. 이 틈새로 흘러나온 액체수소 연료에 불이 붙으면서 동체로 불이 옮겨 붙었고 폭발로 이어졌다.

2007년부터 정부는 비(非)법정계량단위 사용을 단속하기로 하고 평, 돈, 근 단위를 사용할 경우 과태료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소비자 보호 및 공정한 거래질서 확립을 위해 시행한 조치였지만 한동안 혼란을 겪었다. 여전히 부동산중개소를 가면 제곱 미터와 평형을 병기하여 사용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시장에서도 여전히 근 단위가 사용되고 있다. 1근을 말할 때 보통 야채는 200g, 과일은 400g, 고추나 고기는 600g으로 제각기 다르게 사용된다. 무게를 재는 단위인 그램(g)이나 킬로그램(kg)을 사용하지 않고 아닌 ‘쌀 한 말’, ‘콩 한 되’ 라 할 경우 얼만큼인지 헷갈리기 쉽다. 그 만큼 단위는 일상생활과 상거래에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기본 단위 정의의 변화

작년 11월 16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베르사유에서 개최된 제26차 국제도량형총회에서 기본단위인 킬로그램(kg), 암페어(A), 켈빈(K), 몰(mol)의 재정의가 공식적으로 의결됐다. 국제단위계(SI)의 7개 기본단위 중 질량(kg), 전류(A), 온도(K), 물질량(mol) 총 4개 물리량에 대한 단위가 새롭게 정의됐다. 바뀐 정의는 금년 세계측정의 날인 5월20일부터 공식 사용된다. 기본 단위가 바뀌는 이유는 기존의 단위가 측정의 기준으로 삼을 정도로 충분히 안정되지 않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채수완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 리스크 애널리틱스(Risk Analytics) 담당 이사>

단위 측정의 안정성과 불변함에 대한 신뢰는 산업 발전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시간단위 측정이 있었기에 위성항법장치(GPS)가 개발되었고, 네비게이션 개발로 자동차 산업 발전과 서비스 산업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 산업표준은 일관되고 예측 가능한 제품의 품질을 기대하게 한다.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해야 하고, 해외 수출이 많은 우리나라 기업들의 현실을 볼 때 도량형을 국제기준에 맞추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 기준 데이터 관리의 중요성

기업에게 있어 기준 데이터(Master Data) 관리가 중요한 이유도 도량형 통일과 무관하지 않다. 측정 단위가 일관되고 신뢰성이 있어야 그 결과가 의미가 있다. 인사평가의 기준이 객관적이어야 수용성이 높은 것과 마찬가지다. 만일 기업의 성과를 측정하는 도구인 데이터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왜곡된 정보로 경영활동을 하게 될 수 있다. 비즈니스에 어떤 데이터를 활용할지도 중요하지만 데이터 자체에 신뢰성이 떨어질 경우, 이를 활용하는 것도 제약이 따를 수 밖에 없다. 특히 기준 데이터의 경우 집계되는 모든 데이터와 관련된다. 기준 데이터인 단위, 일자, 분류코드, 코드명칭 등에 오류가 있을 경우 심각한 정보의 왜곡이 발생할 수 있다.

상거래의 중요한 도구인 도량형만큼이나 기준 데이터 관리가 중요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4차산업혁명 시대는 데이터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빅데이터, 인공지능, 머신러닝, 블록체인 등 주요 기술들이 데이터와 관련되어 있다. 기업의 혈액과도 같은 데이터를 분류하고, 집계하는 기본 단위인 기준 데이터 관리는 시스템 운영에 앞서 반드시 이행되어야 할 일이다. 기준 데이터 관리는 4차산업혁명 시대의 도량형 통일과 마찬가지로 그 중요성이 인식되어야 할 것이다. <채수완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 리스크 애널리틱스(Risk Analytics) 담당 이사>
저작권자 © 일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