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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그건 성희롱입니다"
  • 임현지 기자
  • 승인 2019.03.05 16:40
  • 19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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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현지 경제산업부 기자
[일간투데이 임현지 기자] 최근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18년 성희롱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직장에서 지난 3년간 한 번이라도 성희롱 피해를 경험한 사람은 8.1%였다. 성희롱 발생 장소는 '회식(43.7%)'과 '사무실(36.8%)'. 나이가 어리고 여성이고 비정규직일수록 피해 경험이 높았다. 그러나 피해자 82%는 '참고 넘겼다'고 답했다.

이 소식을 접하고 글을 쓰기까지 많은 고민이 있었다. 기사마다 쏟아지는 혐오 댓글을 보며 마음이 답답해졌다. '성적 수치심을 느껴본 적 없는 사람들이 참 많구나'라는 생각에 그들에게 부러움 마저 느껴졌다.

한 방송국에서 근무할 당시. 뉴스 스튜디오에 들어가자마자 어떤 남자가 나를 보더니 "어? 이런 이벤트가 있었어?"라며 동료들과 웃었던 기억이 있다. 신성한 보도국에서 어째서 나의 등장이 자신을 위한 이벤트라고 생각했는지 의문이지만, 24살 당시 나보다 훨씬 선배일 것으로 추정되는 그의 말에 어떤 대꾸나 불쾌함을 표시하지 못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스튜디오에서 그를 두 번 다시 마주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나는 해당 발언이 적절하지 않은 것임을 알렸을지도 모른다.

살면서 겪는 많은 불쾌함과 억울함 중에서도 성폭력을 당한 기억만큼 끔찍한 것은 없다. 방금 들었던 예시는 겪었던 성희롱 발언 중 가장 약한 것이다. 그 기억들은 나만이 가지고 있는 것이고 그걸 곱씹으며 괴로워하는 사람도 피해자인 나 자신이다. 당시로 돌아가 그의 면전에 한 마디 날려주는 상상을 하는 것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마구잡이로 달리는 혐오 댓글 중에서도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은 피해자를 '꽃뱀' 취급하는 현상이다. 아무런 금전을 요구하지 않고 오로지 진정한 사과와 처벌만을 바라는 사람에게 '꽃뱀'이라는 표현이 맞는 것일까? 성폭력은 사회면에 등장하는 왕따 사건과 유사하다고 보면 이해가 빠르다. 더 큰 보복이 두려워 참는다는 점과 당할 것을 알면서도 제 발로 학교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 등이 그렇다. 왕따 학생이 참았다고 해서 폭력이 용인되는 게 아니듯 성폭력도 마찬가지다. 피해자가 웃었다고 해서, 바로 신고하지 않았다고 해서 부적절한 발언이나 행동이 '해도 되는 일'이 되는 건 아니다.

'무서워서 무슨 말을 못 하겠네'라고 하는 사람들은 대체 무엇이 두려운 지 묻고 싶다. 직장에서 함께 근무하는 이성을 보며 순수하게 '동료'라고만 여겼다면 두려울 것이 무엇이겠는가. '그건 성희롱입니다'라는 지적에 왜 발끈하고 상대방을 예민한 사람 취급하는가. 마치 자신은 아닌데 세상이 변하는 바람에 괜히 억울하게 된 '시대의 피해자'인 것처럼. 진정한 시대의 피해자는 자신이 당하는 것이 성차별인지도 모르고 스스로를 탓하며 살아온 과거 시대의 사람들이다.

결혼 적령기가 되니 훗날 내 아이의 성교육을 어떻게 시켜야 할지가 가장 큰 고민이다. 나 역시 성차별에 분노하는 사람 중 한 명이지만 스스로 발견하지 못한 뿌리 깊은 차별적 인식과 사소한 말 한마디가 아이들의 성인지에 영향을 끼칠 것이기 분명하기 때문이다. 학교와 직장 등 사회 곳곳에서 예고도 없이 불쑥 튀어나오는 성차별과 한 사람의 성인지가 충돌하는 그 순간은 개인에게 꽤 깊은 상처로 남는다.

정부의 노력과 기업문화의 변화로 직장 내 성희롱 예방 교육이 진행되고 있음에 그나마 마음이 놓인다. 공공기관에는 성희롱 고충 상담을 위한 담당자와 성희롱 사건 처리 매뉴얼 등이 90% 설치돼 있다. 이 같은 시스템이 대기업은 물론 소기업에까지 널리 설치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관리 감독이 필요하다. 완벽하게 사라지기란 어렵겠지만 생계가 달려있는 직장에서 성차별은 반드시 뿌리 뽑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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