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문대 명예교수·시인

"어린애가 우물에 빠지는 것을 보고 만약 '저 애는 내 애가 아니다' 하는 인식이 먼저 앞선다면 그것을 구해주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또 만약 '저 애를 구해주면 내게 어떠한 이득이 생기리라' 하는 타산이 먼저 서고 그 이득을 목적으로 해준다면 그것은 표면으로는 인(仁)의 행동이지만 이면으로는 이(利)의 행동이니 그것은 불순한 것이다.

순수한 인(仁)의 행동, 즉 순수한 지기 본성의 요구에서 행동할 때는 '나'와 '남'의 차별이 없어지고 피아(彼我)의 계선(界線)이 타파(打破)되어 하나의 생명으로 통하고 만다. 인류가 가지는 동정심이라, 인류애라, 박애(博愛)라 하는 것은 다 이러한 개체적 자아를 초월하여 전체와 하나가 되려는 생명의 요구에서 발생하는 '仁'의 정신이다.

앞의 글은 이상은(李相殷)의 '동양적 인간형(東洋的 人間型)'중 한 대문이다. 이러한 견해로 보게 될 때 그동안 대한민국은 국가로서 자격을 갖추었는지 의심스럽다. 유엔총회는 2005년 북한인권결의안을 채택한 것을 시작으로 계속 이어보고 있는데, 한국정부의 태도는 석연찮기 때문이다.

■ 北에 끌려다니며 눈치보는 정부

그동안 유엔은 북한에서 고문과 가혹행위, 강간과 공개처형, 자의적 구금, 종교적 이유에 따른 사형선고, 연좌제, 강제노동 등이 계속되고 있기에 세계인류가 경악하고 있는데, 관심을 갖고 해결책을 모색해야함에도 정부에서는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 왔다.

북한인권결의안 내용에는 정치범수용소의 즉각 폐쇄와 모든 정치범 석방, 그리고 북한 인권유린상황을 국제형사재판소에 회부하고 '북한지도층'과 '가장 책임 있는 자'를 처벌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북한정권 눈치 보느라고 정치범수용소에서 신음하고 있는 우리 북한동포를 외면하는 게 사람으로서 할 짓인가.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회고록 한 대목을 살펴보고자 한다. "나의 주장이 계속되자 국정원장이 그러면 남북채널을 통해서 북한의 의견을 직접 확인해 보자고 제안했다. 다른 세 사람도 그 방법에 찬동했다.

나는 '그런 걸 대놓고 물어보면 어떡하나. 나올 대답은 뻔한데. 좀 멀리보고 찬성하자'고 주장했다. 한참 논란이 오고 간 후 문재인 실장이, 일단 남북경로로 확인해보자고 결론을 내렸다. 더 이상 논쟁할 수가 없었다. 한밤에 청와대를 나서면서 나는 심한 자괴감에 빠졌다. 남북관계를 좀 더 진전시켜두고자 하는 의지는 이해할 수 있었으나 이런 방식으로 남북관계의 허상을 쫓지는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 열강 사이 '외톨이 새끼'가 될수도

왜 우리나라 정부가 북한의 그 비인도적이고 추잡한 인권문제에 북한 정권 편을 들어줘야 하는가? 그렇게 북한 김정은 정권에 끌려 다니며 눈치를 보아야 하는가. 어째서 대한민국의 수뇌부인 "노무현, 문재인, 김만복은 김정일의 하수인이자 반역자다"라는 말까지 들어야 하는가?

바둑에도 공식이 있듯이, '동물의 왕국'에도 공식이 있다. 약한 동물은 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강한 동물도 대열에서 이탈하면 맹수의 먹이 밥이 된다는 사실이다. 지금 동물세계에 빗댄다면 대한민국은 강한 동물에 속하지도 않는다. 중국이나 일본, 러시아까지 모두 한국보다도 훨씬 큰 나라요 막대한 힘을 가진 강국들이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 이후 우리나라는 미국이라는 코끼리 곁에 바짝 붙어있어서 안심하고 생존하며 번영할 수 있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는 미국이라는 코끼리 대열에서 멀어지고 있다. 점점 이탈하고 있는 것이다.

무리에서 떨어진 들소는 늑대나 하이에나의 먹이가 되고 만다. 한국은 덩치 큰 들소도 못된다. 코끼리 곁에 있던 염소가 이탈하는 형국이다. 한국이 한·미군사동맹으로 미국에 바짝 붙어있을 때는 조용하던 중국이 미국과 멀어지는 조짐이 보이니까 사드에 시비를 거는가하면, 공군과 해군이 우리의 방공식별구역을 제 안방 드나들 듯이 침범해 휘젓고 다니지 않는가. 그렇게 본색을 드러내는 데도 문재인 정부는 어찌하여 중국에는 항의도 못하는가.

지금 대한민국은 동맹도 우방도 없는 외톨이 새끼로 떨어져 나오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벌렁 눕혀진 채 늑대에게 하이에나에게 뜯어 먹히는 들소새끼가 눈앞에 아른거려서 차마 눈뜨고는 '동물의 왕국'을 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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