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부 길위에서 생각한다

미국 기업들 가운데는 고객을 뜻하는 ‘Client'의 첫 글자를 반드시 대문자로 표기하는 곳들이 있다. 이런 기업들에선 ’Client'라고 쓰지 않고 ‘client'라고 쓰는 건 중요한 문책사유가 된다. 고객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실례라고 하겠다.

그런가 하면 미국 유수의 우유회사인 스튜 레오나드(Stew Leonard)는 직원들에게 두 가지 규칙을 강조하고 있다. “규칙 1,고객은 항상 옳다. 규칙2, 만약 고객이 옳지 않다면 규칙1을 상기하라”는 것이다. 고객제일주의의 철학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요즘엔 우리나라에도 고객 우선주의를 실천하는 기업들이 많다. 기업의 가장 중요한 경쟁력이 고객관리와 이를 통해 고객으로부터 얻는 신뢰인 시대가 됐다.보통은 고객에게 상품을 팔아야 하는 기업에 국한된 이야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다. 공직자들에게도 ‘모셔야 할 고객’은 존재한다. 바로 국민들이다.

일을 하다보면 공직자로서 이런저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될 때가 있다. 정책 판단을 해야 할 때도 많다. 뭔가를 결정해야만 하는 순간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공직자들에게 필연적으로 다가오게 마련이다.

판단하기가 어려울 때도 많다. 어떤 잣대를 가지고 결정을 내릴 것이지 고민스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 잣대는 여러 가지다. 합법성이냐, 효율성이냐, 경제성이냐, 또는 민원의 해소냐 하는 식으로 말이다.

이런 여러 가치들이 서로 충돌하게 될 때도 있다. 합법성을 살리자니 경제성이 울고, 효율성을 따르자니 민원이 해소되지 않을 경우 등이다. 이럴 때 나는 망설이지 않고 ‘위민성’이란 잣대로 판단을 해왔다. 합법성보다도 위민성이 더한 가치가 있느냐고 의구심을 가지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시 관내에 존재하는 일반국도는 비록 국가적 개념을 지닌 도로라고 할지라도 도로법 제24조의규정에 의거해 시장이 ‘관리청’이 되어 사업계획을 세우고 예산을 편성해서 도로관리를 책임진다.

반면 시 관내에 위치하지 않은 일반국도는 정부인 건설교통부가 관리청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업계획을 세울때 일률적으로 시 경계선까지 라고 한정한다면 법률적으로는 맞지만 현실적으로는 합리성을 잃고 만다. 특별한 시설도 없고 도로교통적 특이성도 없는 시경계선에서 도로가 끊어 진다면 국민들은 얼마나 불편해지겠는가.

그래서 도로 계획을 세울 때는 국가가 예산 측면에서 좀 손해를 보더라도 도로를 시 경계선까지만 만들지 않고 시내까지 다만 몇 킬로미터라도 연장해서 버스 종점이나 사거리, 학교 앞, 운동장 등 주요 교통유발 시설까지 도로를 건설하는 게 더 맞는 정책이 아닌가 싶다. 물론 배보다 배꼽이 더 클 정도로 시내 깊숙이 들어가서는 곤란하다. 시의 재정이 충분하다면 그럴 필요가 없겠지만 아직까지는 열악한 지방 재정의 현실을 고려할 때 국민의 편의를 먼저 생각하는 이런 판단이 옳다고 확신한다. 이 문제로 예산 당국이나 감사 당국으로부터 지적을 받았다해도 도로계획을 세울 때 국민의 입장에서 결정했던 많은 일들을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중앙정부가 하는 게 맞느냐, 광역지자체가 하는 게 맞느냐, 기초지자체가 하는 게 맞느냐, 중앙정부 중에서도 건설교통부가 하는 게 맞느냐, 행정자치부가 하는 게 맞느냐 하는 논란을 하면 할수록 국민들의 고통은 더욱 깊어만 가는 것이다. 이처럼 ‘과연 국민을 위한 정책인가’ 하는 잣대를 가장 앞에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책 결정 과정에서 국민을 참여시키는 것도 ‘위민성’을 실천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앞서 서해대교를 얘기하였는데 이 경우를 다시 예로 들어본다. 서해대교의 경우, 안전상의 이유로 콘크리트벽을 둘러싸서 서해를 볼 수 없다. 이 때문에 서해대교의 조망권을 돌려달라고 아우성치는 이들도 상당수다. 실제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 일본 혼슈와 시코쿠를 연결하는 아카시 해협대교 등 외국의 주요 교량들에는 바깥 경치를 볼 수 있도록 철제난간이 설치되어 있다.

그런데도 우려했던 안전사고는 거의 발생하지 않고 있다. 이런 논쟁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는 국민들에게 직접 물어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인터넷 매체 등을 활용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또 다른 예를 보자. 수년 전 주요 도시의 모든 길에 이름을 부여했다.

그런데 그 명칭이 너무 낯선 경우가 많았다. 이를테면 ‘가루개길’ 이라는 이름의 길이 있다. 무슨 역사적 의미가 있는 것인지 모르지만 익숙해지지 않는다. 이 이름을 계속 쓸 것인지, 다른 이름을 붙일 것인지 하는 문제도 몇 개 대안을 가지고 주민투표에 부쳐보면 어떨까?

또 어떤 도로에 교통사고가 자주 발생했다고 하자. 제한된 예산으로 어떤 방법을 쓰면 교통사고 피해를 줄일 수 있을지도 이 지역의 특성을 가장 잘 아는 주민들에게 물어보는 게 좋다. 육교 설치, 중앙분리대 설치, 보도 확장 가운데 어디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하는지도 주민들 선택에 맡겨볼 수 있다.

이것이 진정한 ‘governance'의 개념이 아닐까? 이제 세상이 달라졌다, 국가가 일방적으로 국민을 통치하던 'govern ment' 개념에서 국가와 국민들이 함께하는 'governance'의 개념으로 바뀌고 있다.

앞으로 도로 정책을 결정할 때도 일방적으로 결론을 내리는 대신 국민들의 의견을 반영해서 결정하는 주민참가형(public involvement) 방식으로 바꾸어 나가고자 한다. 도로를 이용할 고객은 바로 국민들이기 때문이다.

 

글 : 남인희 前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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