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설부동산부 송호길 기자
[일간투데이 송호길 기자] "1순위 청약 신청 예정자도 중복 접수가 가능해 당첨 확률이 높아집니다."

지난주 찾은 한 견본주택에서 분양관계자가 무순위 청약을 권유하며 한 말이다. 높은 청약 경쟁률이 예상되는 만큼 1순위 청약이 부담스럽다면 무순위 청약이라도 해보라는 얘기다.

무순위 청약은 부적격 당첨자 또는 청약 포기자의 미계약분을 대비해 사전예약하는 제도다. 청약통장이 필요 없는 데다, 만 19세 이상이면 누구나 가능해 진입장벽이 낮다. 최근 잦은 청약제도 개편과 부동산 대출 규제의 원인으로 부적격자가 속출해 미계약분이 속출하고 있다. 이런 탓에 건설업계에서는 판촉마케팅으로 무순위 청약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실제로 예비 청약자들의 호응이 예상보다 높았다.

얼마 전 서울 첫 사전 무순위 청약 접수 단지인 '청량리역 한양수자인 192'의 사전 무순위 청약 결과 총 1만4천376건을 기록했다. 이밖에 ㈜한양이 경기 구리시 수택동에서 재건축하는 '한양수자인 구리역'도 무순위 사전 청약에서 4천15명이 몰렸다. 이처럼 무순위 청약자가 몰린 배경에는 부담없이 청약을 넣을 수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구체적인 자금 계획이나 자금 여력을 고려하지 않은 채 '묻지 마 청약'을 한 사례도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무주택 청약 제도가 얼어붙은 부동산 시장에 단비가 될지는 두고 봐야 한다. 올해 청약을 진행했던 서울 아파트를 보면 효성중공업이 서대문구에서 분양한 '홍제역 해링턴 플레이스'는 일반분양의 41%가 미계약됐다. 앞서 진행한 1순위 청약 결과 평균 11.1대 1의 경쟁률로 전 주택형이 마감된 결과와 대조적이다. 노원구에서 12대 1의 평균 경쟁률을 기록한 '태릉 해링턴 플레이스'도 결과는 비슷했다.

무순위 청약 접수를 하면 앞으로 이런 미계약분이 당첨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현금 부자들이 기회를 가져갈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다주택자들을 향해 돈줄을 조이고 무주택자들의 당첨 기회를 높이기 위한 문재인 정부와의 부동산 정책 의도과 대치된다. 그동안 잔여물량은 모델하우스에서 선착순으로 분양했다. 하지만 이제는 클릭만으로 잔여물량을 예약하는 시대여서 다주택자들이 밤샘 줄서기를 할 필요도 없어졌다.

물론 무순위 청약제도 시행 초반인 만큼 성급하게 판단하기는 이르다. 그렇다 해도 현금부자들의 접근이 쉬워진 만큼, 이번에 드러난 사각지대를 그대로 방치해선 안 된다. 결국 피해의 몫은 선량한 소비자들이 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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