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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 동상 제작 이야기동상 제작했던 이진수 옹에 67년 만에 '감사패'
  • 권혁미 기자
  • 승인 2019.04.24 14:24
  • 12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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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국방부
[일간투데이 권혁미 기자] 오는 28일 충무공 탄신 제474주년을 앞두고 우리나라 최초로 대형 충무공 이순신 동상을 제작했던 이진수 옹(95)에게 67년 만에 해군 정비창 소속 장병 및 군무원들이 감사패를 전달하며 충무공 정신을 선양하고 선배들의 업적을 기렸다.

현재 경남 창원시 진해구 북원로터리에 세워져 있는 충무공 동상은 당시 국내에서 가장 앞선 주물 기술을 보유했던 해군 조함창(現 해군 정비창)이 1951년 11월 제작에 착수해 1952년 4월에 제막한 동상으로서 대형 충무공 동상의 효시가 됐다.

당시 동상 제작에 참여했던 이진수 옹은 1949년 해군 조함창(現 정비창)에 주물 군속(現 군무원)으로 임용됐으며, 충무공동상 제작에 참여함은 물론, 20여년 간 조함창을 지킨 해군 정비분야의 산 증인이다. 해군에 재직하는 동안 초대 해군 참모총장인 손원일 제독에게 받은 표창장을 비롯해서 20개가 넘은 표창과 상장을 받았다.

이 동상의 제작은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1월, 해군 내부에서 국난극복의 염원을 담아 충무공 이순신 동상을 세우자는 논의로 시작됐다. 이후 마산시장을 중심으로 동상건립기성회가 결성됐고, 전쟁 중이라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 장병들과 국민들의 성금(놋그릇 등 기부품 포함)을 모았다. 제작은 당시 대규모 동상을 제작할 수 있었던 유일한 기관인 해군 조함창이 맡았다.

광화문의 충무공 동상 제작보다 16년이 빨랐고, 높이 482㎝, 너비 140㎝로 제작 당시에는 국내 최대 규모였다. 동상은 창원시 근대건조물 제1호로 지정됐고, 갑옷과 투구를 착용하고 긴 칼을 잡은 자세로 진해만을 바라보고 있다.

임진왜란 360년이 되는 1952년 4월 13일 제막된 충무공 동상 앞에서 지내던 이 충무공 추모제가 1963년부터 문화축제인 군항제로 변경 시행돼 오늘날 전국 최대 규모의 지역문화관광축제로 자리 잡았다.

이진수 옹은 “당시 국내에서 4m가 넘는 대형 동상을 만들 수 있는 곳은 해군 조함창 뿐이었다"며 "나를 포함해서 10여명의 대원들이 4개월 이상 주형을 만들고 쇳물을 부어 동상을 만들었으며 우리 손으로 만든 충무공 동상이 진해만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면서 이 전쟁을 끝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해군 정비창을 대표해 감사패를 전달한 정비창 박정일 금속직장장은 “주물분야를 담당하는 후배 군무원으로서 ‘정비창의 기술력이 해군의 전투력’이라는 다짐 아래 정비기술의 발전과 완벽한 정비지원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이진수 옹을 비롯한 선배들이 어려운 여건 속에서 건립한 충무공 동상은 해군 정비창의 자부심이자 해군의 자랑으로, 충무공 탄신일을 앞두고 선배들의 업적을 기억하고 따르고자 이렇게 찾게 됐다”고 말했다.

한편, 이진수 옹의 차남인 이치관 주무관(58·6급)도 25년째 해군 군수사 정비창에서 근무하고 있다. 이 주무관은 “부친께서는 해군과 정비창의 일원이었다는 점을 항상 자랑스럽게 이야기 하셨고, 동상에 대한 애정도 자주 표현하셨다”며 “부친이 자랑스럽고, 해군 정비 군무원 후배로서 맡은 바 직무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해군 조함창 주물공장은 현재 해군 정비창 지원공장 내 금속공장에서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다. 해군 정비창은 주물품의 불량률을 최소화하고, 품질을 고도화하기 위해 컴퓨터 응용(CAM/CAD) 기계가공 인프라를 구축하는 등 민간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2017년 전국 주조기술 경기대회 은상을 비롯해, 전국 기능경기대회 등에서 여러 차례 수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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