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 수수료율 잇달아 인하…증권사들 입지 더 좁아져

▲ 은행연합회관에서 열린 한 행사에 참석중인 하영구 은행연합회장

[일간투데이 장석진 기자] 은행과 증권사, 보험사 등 금융업종의 '퇴직연금 쟁탈전'이 2라운드에 접어들고 있다.

노령화가 급속도로 진전되고 있는 것에 비해 퇴직연금 수익률이 가입자들의 눈높이에 미치지 못하면서 각 금융사가 전세 역전을 위해 새로운 카드를 꺼내들고 있다. 특히 주요 은행들은 최근 퇴직연금 수수료율을 공격적으로 인하하며 지난해 주식시장 폭락과 함께 수익률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던 증권사들을 더욱 압박하고 있다.

18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신한금융그룹이 퇴직연금 수수료 인하에 들어간 가운데 은행과 증권, 보험 등 각 금융사들이 퇴직연금을 놓고 치열한 유치전을 펼지고 있다.

신한금융그룹은 지난 16일 퇴직연금 수수료 체계를 다음달 1일부터 전면 개편한다고 밝혔다. 그룹 내 신한은행, 신한금융투자, 신한생명 등 각사 퇴직연금 사업부문을 매트릭스 조직으로 확대 개편한 신한은 그 첫 번째 신호탄으로 퇴직연금 수수료 인하에 들어갔다.

신한금융에 따르면 개인형 퇴직연금(IRP) 가입자 계좌에서 수익 미발생시 수수료를 아예 면제하기로 했다. 또 10년 이상 장기 가입자는 운용·자산관리수수료를 최대 20%, 일시금이 아닌 연금 방식으로 수령하면 연금 수령 기간 운용관리수수료를 30% 감면해 준다. 또 만 34세 이하에 가입하면 운용관리수수료를 20%까지 깎아준다.

이 뿐만 아니라 사회적 기업에게는 운용 및 자산관리수수료 50% 우대 혜택 및 확정급여형(DB), 확정기여형(DC) 30억원 이하 기업과 IRP 1억원 미만 고객에게는 운용관리수수료를 0.10%~0.20%포인트 깎아준다.

이에 앞서 IBK기업은행의 자회사 IBK연금보험도 지난달 DB형은 최대 0.25%포인트, DC형은 최대 0.1%포인트 수수료 인하를 단행했다.

우리은행은 이미 지난해 말 DB형 최대 0.08%포인트, DC형은 0.05%포인트 인하에 이어 추가 인하를 검토 중이다.

하나금융도 이에 질세라 '연금손님자산관리센터'를 신설하고 20~34세 사회초년생과 55세 이상의 은퇴 세대에 대해 수수료를 최대 70%까지 할인해주는 수수료 개편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농협은행은 올해 1월 '퇴직연금 10조원 달성 및 사업추진 활성화' 행사를 열고 퇴직연금 수익률 향상과 상품라인업 확대를 선언했다.

KB금융지주는 자산관리부문 아래 연금본부를 신설해 그룹 전체 연금고객의 사후관리, 은퇴와 노후 서비스 등을 관장한다. 또 연금기획부를 신설해 지주, 은행, 증권, 손보 4개사를 매트릭스 조직으로 묶어 움직이고 있다.

이 같은 은행들의 움직임에 증권사들의 마음은 점점 더 분주하다. 10년 장기 수익률에 있어서는 은행권보다 여전히 앞서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2018년 연간 수익률에서는 금융사 중 단연 꼴찌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존에 퇴직연금 적립금 운용 방식이 예적금 위주의 원리금 보장상품으로 돼 있어 은행들과의 경쟁이 더욱 힘겨운 상황이다.

올해 4월 금감원 연금운용실이 공개한 '2018퇴직연금 적립 및 운용현황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말 기준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는 190조원으로 전년(168.4조원) 대비 21조6천억원(12.8%)이 증가했다. 다만 적립금 중 90.3%에 해당하는 171.7조원이 원리금보장형으로 운용되고 있고, 9.7%인 18.3조원만 실적배당형으로 운용되고 있다.

작년 한해 전체 퇴직연금 운용수익률 평균이 1.01%를 기록한 가운데, 원리금 보장형의 수익률은 1.56%를 기록한 반면 실적배당형은 -3.82%를 기록했다. 2018년 한해 주식시장이 쉼없이 폭락한 결과 상대적으로 실적배당형 포트폴리오 비중이 높은 증권사들의 운용 성적이 나빠졌다.

보고서를 좀더 살펴보면 2018년 기준 원리금보장형 상품의 44.6%는 예적금으로 구성돼 있고, 보험상품이 뒤를 이어 40.9%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 실적배당형 상품의 경우 집합투자증권의 비중이 93.3%로 절대적이다. 원리금보장형 상품이 대부분인 퇴직연금 투자 포트폴리오에서 상대적으로 실적배당형 상품 비중이 높은 증권사가 작년 같은 장에서는 수익률에서 고전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사업자 관점에서 퇴직연금 시장을 바라보면 판도는 확연히 드러난다.

지난해 기준 권역별 점유율을 살펴보면 은행이 50.7%로 압도적이고, 뒤를 이어 생명보험이 22.7%, 금융투자 19.3%, 손해보험 6.1%, 근로복지공단 1.2% 순으로 나타난다. 이중 상위 6개 사업자 즉, 삼성생명과 상위 5개 은행의 점유율이 무려 52.5%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 금융투자회사 중 1위 사업자인 현대차증권의 적립금은 11조2천734억원으로 은행 5위인 우리은행의 12조5천716억원에 미치지 못하는 형편이다. 금융투자회사 13개 사업자 적립금 총합인 36조7천98억원이 상위 은행 두 곳인 신한은행과 국민은행의 합계 36조1천75억원과 비슷하다.

한 국내 대표 은퇴연구소 관계자는 “중장기적으로 국민연금, 개인연금과 함께 노후보장 3층 시스템의 축인 퇴직연금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수익률 제고가 급선무”라며 “원리금보장 보단 실적배당형 상품에 강점이 있는 증권사가 목소리를 더 높여야 하지만 노후자금의 안정성을 강조하는 은행권의 논리와 작년 같은 수익률 참패로 증권사가 고객의 선택을 받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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