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스포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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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을 보았다. 워낙이 화제가 된 영화인지라 스크린을 향한 눈길은 자연 긴장으로 굳어졌다. 가슴이 설레는 가운데 드디어 영상이 펼쳐지고, 카메라 앵글이 반 지하의 답답하고 가난이 찌든 집 안에서 창 너머로 바깥 거리를 비치면서 대망의 영화가 시작된다.

자그마치 131분, 영화가 돌아가는 동안 숨도 크게 쉬지 못했다. 그만큼 화면은 소름끼치는 스토리텔링이 조금도 한눈을 팔 여유를 주지 않았다. ‘봉테일’이라는 별명에 걸맞은 치밀하고 계산된 구성이 숨 가쁘게 몰아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난 뒤의 여운, 그 뒷맛은 좀 찝찝했다. 뭔가 알 수 없는 칙칙한 기분이 감동을 가로막았다. 영화를 본 뒤 관객전원이 8분인가 기립박수를 보낸 그 칸영화제의 들뜬 분위기에 쉽게 젖어들지 못한 탓이다.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봤다. 이유는 간단했다. 사건을 확 뒤집어놓는 가든파티가 피를 튀긴 때문일까? 뜻하지 않은 살인을 불러들인 난장판이 그만큼 소름이 끼쳤기 때문일까? 소문난 잔치 먹을 것 없다고 극언하는 극우파(?)도 만났다. ‘종북개그’에 그만 거부감을 느꼈을 수도 있다.

■‘봉테일’ 별명 걸맞은 치밀한 구성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지엽적 낙수(落穗)에 불과하다. 다소 여기저기 작의(作意)가 엿보이긴 하지만 번뜩이는 ‘봉테일’이 종횡무진 스크린을 누비는 걸 볼 수 있다. 세계가 감동하는 이유를 알기에 충분하다.

‘봉테일’의 근본, 진원지가 들여다보였다. 누구는 유명한 그래픽디자이너인 부계(父系)의 영향을 들먹인다. 서울대 교수인 누님도 패션디자이너라던가. 그의 외할아버지가 소설가 박태원(朴泰遠)이란 사실도 드러났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영향을 많이 받은 듯싶은 소설가 외할아버지와의 ‘물보다 진한 피’ 에 대해 언급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듯했다. 어찌 보면 ‘봉테일’의 촘촘한 구성력, 연출력은 외할아버지의 핏줄에서 비롯됐음을 눈여겨 봐야한다는 게 필자의 시각이다.

알려진 대로 소설가 박태준은 모더니스트였다. 그의 대표작 ‘천변풍경’과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은 특히 모던하고 치밀한 구성, 필치로 주목 받은바 있다. 그리고 그의 소설기법, 묘사가 다분히 영화적이라는 사실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소설 ‘천변풍경’의 서두는 청계천 빨래터에서 아낙네들이 모여 조잘대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마치 영화의 타이틀백을 보는 느낌이 물씬 풍긴다. 다시 말해 영화적 기법을 소설적으로 은근슬쩍 도용하는 묘사 장면이 번뜩인다는 점이다. 바로 외손자 봉준호 감독의 스토리텔링, 이야기를 만들고 꾸미는 그 탁월한 DNA가 외할아버지로부터 도도히 흘러내려 왔다는 건 필자만의 독단일까?

봉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는 거의가 본인이 직접 쓴 시나리오에 의한 작품이다. 구상하고, 쓰고 그림을 만드는 1인3역을 거침없이 해온 것이다. 다시 말해 영상의 남다른 감각은 친가(親家)로부터 이어받았지만, 이야기를 꾸미는 재간은 외가(外家)가 그 원천(源泉)일 거라는 필자 나름의 분석이다. 가히 ‘신이 내린 영화쟁이’의 내력이 아닐까.

제72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그랑프리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이후 봉준호 감독은 보통 ‘귀하신 몸’이 된 게 아니다. 6월 말 독일에서 가장 큰 여름영화제 ‘필름페스트 뮌헨’을 비롯해, 8월 스위스에서 열리는 ‘로카르노영화제’ 등 세계적 감독답게 세계 여기저기의 초청이 쇄도하고 있다. ‘로카르노영화제’에선 배우 송강호가 세계적인 배우에게 헌정하는 상 ‘엑셀런스 어워드’를 수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만 49세 앞날 밤하늘 별처럼 총총

이번 ‘기생충’ 영화부터 봉 감독은 제작까지 맡고 있다. 지금까지의 1인3역이 4역으로 그 역할이 확대된 것이다. 3역 때보다 훨씬 흥행에 더 많은 심열을 기울어야 하게 된 것이다. 속된 말로 장삿속에도 수완을 발휘해야 한다는 얘기다. 물론 영화계에서 감독·제작겸업이 새삼스런 트렌드는 아니다. 적잖은 감독들이 영화제작에 손댔다가 재미 본 감독도 있지만 그 반대가 더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이제 봉 감독의 나이 만 49세. 앞날이 밤하늘의 별처럼 총총하다. 흥행도 흥행이지만 그 뛰어난 이야기꾼의 감각이, 제작겸업으로 무뎌지지 않기를 바라는 건 필자만의 과욕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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