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조달금리 활용해 증권사 밥그릇 빼앗아 논란

[일간투데이 장석진 기자] 한 중견 증권사 법인영업부 박모 차장(42세)은 최근 경험한 씁쓸한 기억을 떠올릴 때 마다 헛웃음만 나온다.

박차장은 이주일 전 평소 알고 지내던 담당기업 자금팀장으로부터 대표이사가 보유하고 있는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통해 자금을 융통할 계획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밤새 엑셀로 자료를 정리하며 프리젠테이션 자료를 만들었다. 마침 경쟁사 김 과장과 최 차장도 이 소식을 접해 회사로부터 조금이라도 더 유리한 금리조건을 받아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마음이 더 분주해졌다.

하지만 발표를 마치고 좋은 결과를 기대했던 박차장은 엉뚱한 결론에 한대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같은 조건일 경우 평소 친분이 두터웠던 박차장에게 기회가 갈 것이라는 담당자의 말에 내심 기대를 했지만 막상 증권금융으로부터 주식담보대출을 받기로 했다는 회사측 설명을 들었다. 결국 경쟁하던 3사 담당자들은 포장마차에 다같이 모여 쓴 소주잔만 돌리며 헤어졌다.

25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최근 주식 유통시장이 갈수록 침체를 보이며 전통적인 브로커리지 영업을 하는 증권맨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수익원을 찾기 위해 조금이라도 경쟁력 있는 상품과 서비스를 만드는데 여념이 없기 때문이다.

이 중 주식담보대출은 보유하고 있는 주식을 담보로 자금을 융통해 추가적인 투자로 지렛대(Leverage) 효과를 노리거나, 단기간 필요한 자금 융통에 사용되는 수단이다. 각 증권사들은 개인 고객의 경우 고객별 거래 실적에 따라 등급을 나눠 낮게는 6%에서 높게는 9%에 이르는 금리를 적용해 대출해 주고, 자금의 규모가 큰 법인 고객에겐 최근 낮아진 금리를 반영해 4% 내외의 금리를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증권금융 홈페이지에 고시된 주식담보대출 금리를 검색해보면, 1년만기 91일물 양도성예금증서(CD)의 경우 변동금리로 3.32%를 제시하고 있다. 이와 관련 증권금융 담당자는 “대출금리는 기준금리에 가산금리를 더하고 경쟁금리를 상황에 따라 적용하기 때문에 일괄적이지 않다"며 "현재는 2% 후반에서도 많이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증권금융이 조달금리가 낮다는 조건을 이용해 일반 증권사에 비해 더 낮은 금리를 제시하면서 증권사들의 영업이 더 힘들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고객 입장에서는 1% 이상 금리차가 나는 상황에서 굳이 증권사를 선택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한국증권금융이 제공한 증권금융 주식담보대출 잔고 추이를 살펴 보면 2017년말 2조7043억5300만원이었던 잔고는 2018년 말 3조778억3000만원으로 불과 1년새 13.8%나 불어났다. 올해 6월말 기준으로는 2조9741억7600만원으로 주식시장 거래 축소가 반영돼 소폭 줄긴 했지만 여전히 큰 규모를 보이고 있다.

한 증권사 주식담보대출 담당자는 “최근 저축은행이 새로운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적용으로 주식담보대출에 소극적인 상황이 되면서 증권사들이 상대적인 수혜를 보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막상 증권금융이라는 복병이 숨어있어 김칫국을 마신 기분”이라고 전했다.

또 다른 담당자는 “증권사나 은행이 아무리 낮은 금리를 제시한다고 해도 인건비와 영업비용 등을 제외하면 증권금융 수준에 맞추기가 불가능하다”며 “근본적으로 공공금융으로서 조달금리가 다르기 때문에 처음부터 경쟁이 되지 않는다”고 전했다.

시중은행 금융연구소에 근무하는 한 연구원은 “증권금융의 사업범위에 명백히 일반 고객의 재테크를 돕는 예금 및 대출업무를 하도록 명시돼 있기 때문에 잘못은 아니다”라면서도 “한국증권금융이라는 공기업의 근본 설립 취지가 증권시장에 자금을 공급하고 자본시장 발전에 기여해 국가경제발전을 지원하는 것임을 상기할 때 유리한 조달금리를 통해 증권사들과 주식담보대출 영업 경쟁을 하는 것은 시장을 교란시킨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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