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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훈 칼럼] 주체와 행위와 결과를 해석하는 ‘랜덤화
  • 일간투데이
  • 승인 2019.09.17 11:38
  •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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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훈 박사(서경대학교 나노융합공학과 학과장)

[일간투데이] 우리가 평등하다고 말하는 세상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행사하는 권력의 수위와 대상이 랜덤화된 세상이다. 우리는 그것을 ‘누구든’ 혹은 ‘누구나’ 라고 말해왔다.

1999년 전후 반도체 회사에 실험계획법(DOE: Design of Experiment)이 적극적으로 도입됐다.

반도체 엔지니어가 실험할 웨이퍼를 받기 위해 실험 계획 기안을 작성하고 결재를 올리기 위해서는 어떤 실험계획 도구(SAS, SPSS, MiniTap)로 실험방법을 설계했는지 선택해야 결제를 올릴 수 있게 되어 있는데, 그런 제도가 도입된 것도 그 즈음이었다.

반도체 공정에 특화된 실험계획법을 누군가 연수를 받고 배워와야 하는데, 입사 6개월도 안 된 수습과정 막내 과장이 가서 배워오기에 딱 좋은 과정이다.

그 후로 대학에서도 10년 이상 실험계획법 강의를 했고, 졸업한 모교 후배들이 회사에 가서 2주일 만에 학교에서 배운 걸 제대로 써먹은 것은 실험계획법뿐이었다고 할 정도로 실용적인 지식이었다.

남학생들만으로 가득한 공대 강의실에서 실험계획법에 대한 설명은 여친 과의 데이트로 시작했다. “자, 여러분 수중에 10만원이 있다.

사랑하는 여자친구와 최고로 행복한 하루를 보내고 싶다. 당장은 힘들겠지만 몇 번의 테스트로 최상의 만족도를 이끌어 내야 한다.

단순한 우리 공대생 머릿속에 별다른 아이디어는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선물, 영화관람, 식사, 현금 정도다. 현금 10만원을 주거나 10만 원어치 영화관람 다섯 편을 하는 것의 만족도는 다르다.

식사에 5만원을 쓰고 영화를 한 편 보고 나머지 3만원은 꽃다발 같은 선물로 쓸 수도 있다. 여친에게 몇 번인가 솔직한 평가를 받을 수 있다면, 여친도 알지 못했던 최상의 조합 영화 1만8000원, 식사 3만원, 2000원 장미 한 송이, 그리고 현금 5만원. 응? 그런 조합도 DOE를 통해 찾아낼 수 있다. 쓸 만하지 않은가? 우린 이거 배워야만 한다. 실험계획법!”

공대 학부생들의 눈이 별처럼 반짝이기 시작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반짝이는 눈을 가진 공대생들은 기껏해야 6cm 정도 튀는 종이접기 개구리를 손끝으로 꼬리를 누르는 동작만으로 학기말 평가 때는 4미터 92cm를 날게 하기도 하고, A4지를 동그랗게 말아 던지면 강의실에서 6미터도 날지 못하는 윙페이퍼를 최적화해서 120미터를 날게 설계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각 조건을 설계하는 사람이 조건을 바라보는 시각의‘객관성’이고, 특정 조건에 편향되지 않은 마음가짐이다.

빨간 종이로 만들면 왠지 모르게 개구리가 잘 튈 것 같다는 생각을 가진 실험자는 실험조건을 잡을 때나 측정을 할 때나 실험결과를 평가할 때나 모두 그 빨간 종이로 만든 개구리에서 나온 산출물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이것이 누적되면 편향되고 잘못된 결과를 도출하는데 기여하게 된다.

대학교 강의시간에는 실패해도 괜찮은 아이템들로 낭만적인 실험을 하지만 산업현장에서는 사뭇 사정이 다르다. 조건 하나, 소재 수입처 하나 바꾸는 데 어마어마한 비용이 소요된다. 따라서 양산에 적용할 공정을 최적화할 때 실험 주체의 감정적 요소를 배제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생각한다.

‘이 원재료는 중국제이니 결과도 안 좋을 거야.’ 라던가, ‘이 공정은 야간반이 진행했으니 결과가 안 좋을 거야.’ 같은 생각들을 배제하려면 이런 선입견이 공정을 최적화하는데 개입되지 않도록 제거하는 방법이 있어야 한다.

특정 요소에 편향된 감정을 완벽하게 배제하는 방법이 있다. 랜덤화 (Randomization)라는 방법이다. 중국제, 프랑스제, 캐나다제 원료가 있다면 실험을 진행하기 전에 실험자에게 어떤 원료인지 알리지 않고, 원료를 사용하는 순서도 완전히 불규칙하게 투입하는 방법이다.

이렇게 실험해서 나온 결과는 실험자의 특정 국가 원료에 대한 편향성이 배제된 결과로, 이후 어떤 원료가 투입되든 객관성 있는 평가를 할 수 있게 된다.

랜덤화 과정은 공학, 자연과학 관련 실험뿐만 아니라 사회과학 관련 설문 조사 항목 생성에도 폭 넓게 적용되고 있으며, 조사 대상이 충분히 랜덤화 되지 않은 설문을 편향적이라고 말한다.

심지어 조사 대상은 랜덤하게 선정되었는데, 설문을 시작하면서 ‘특정 정치 사안에 대한 설문입니다. 조사에 응하시겠습니까?’ 정도의 질문만으로 설문 대상자를 걸러낼 수 있는 장치를 만들면 설문의 결과는 치우쳐 나올 수밖에 없다.

공학을 배운 엔지니어로서 작금의 다양한 가치/이해관계는 좀처럼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 주체가 다른데 행위는 비슷해 보이고, 이 행위에 대응하는 주체는 같은데, 대응하는 방법이 다르며, 주체가 다르면 평가도 달라지는 복잡한 사회 현상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주체와 행위와 결과를 해석하는 방법으로 ‘랜덤화’가 그 어떤 인문학적 접근보다 필자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기에 그 어려운 실험계획법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가장 먼저 ‘내로남불’을 생각해보면, 랜덤화를 수용하지 않는 사자성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주체들을 랜덤화 해보자. 랜덤화의 결과는 ‘내로내불’, ‘내로남불’, ‘남로남불’, ‘남로내불’ 이다.

나의 로맨스는 나의 불륜인가? 나는 로맨스고 남은 불륜인가? 남의 로맨스는 남의 불륜인가? 남은 로맨스인데 나는 불륜인가? 문장의 뜻이 모두 다르다. 랜덤화가 잘 되지 않는다. 내로남불은 랜덤화를 수용하지 않는 편향된 시각을 일컫는 말이다.

다시 한 가지 예를 더 생각해 보자. ‘캐디가 손녀딸 같아서 성추행 했다.’는 말이 변명이 되려면 객체들을 랜덤화 했을 때 말이 되면 된다. ‘손녀딸이 캐디 같아서 성추행 하였다.’ 말이 되는가? ‘손녀딸이 손녀딸 같아서 성추행 하였다.’가 말이 되는가? ‘캐디는 캐디인데’ 왜 성추행 했는가? 라고 물을 수 있게 된다.

이제 훨씬 복잡한 조합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촛불집회를 준비하는 대학생들이기도 하고, TV 앞에서 정치 관련 뉴스를 보는 국민들이기도 하고, 권력을 가진 국회의원일 수도, 검찰 구성원일 수도, 여론의 열쇠를 쥔 언론인일 수도 있겠다.

고등학생의 논문 게재가 문제가 되었다면 2010년대 초반에 자유학기제라는 명목 하에 쏟아져 나왔던 지역사회/전문가 학부모들과의 연계를 통한 진로 탐색 경험활동을 장려했던 상황에서 논문을 쓰고 그것을 기반으로 조금이라도 진학에 유리한 위치에 있었던 사람 누구나 조사해야 평등한 조사일 것이다.

한 명의 표창장이 정당했는지 검찰과 언론에서 검증하는 것도 좋다. 그런 자세로 대상을 랜덤화 해서 문제가 있는 시상, 문제가 있는 정치인 자녀들의 특혜 모두를 지체 없이 밝혀 주면 국민들의 존경을 받는 기자가 되리라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그래야 우리 힘없는 국민들의 기회가 균등해지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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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행정팀 선임기자(국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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