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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화속에 꽃핀 사찰 창건설화-무학대사와 정주영 회장이 각기 다른 깨달음을 얻은 간월암과 수덕사修德寺]
  • 최종걸 주필
  • 승인 2019.09.19 10:00
  • 19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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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을 보고 깨달음을 얻은 무학대사와 말 너머의 세계를 보고 서산 간척지를 완성했던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의 기도 영험이 서린 간월암(看月庵)을 부속 암자로 둔 대한불교 조계종 선지종찰(禪之宗刹) 수덕사(修德寺)에는 사연도 많다.

깨달음(見性)의 상징이 된 무학, 경허, 만공, 혜월, 수월 스님이 수행했던 곳이다. 수덕사는 강원, 선원, 율원을 갖춘 화두선인 간화선(看話禪)을 스님의 기본 수행으로 삼는 대한불교 조계종의 5대 총림 중 덕숭총림 겸 대한불교 조계종 제7교구 본사다.

수덕사 사적기에 따르면 수덕사는 수덕 도령과 덕숭낭자 수덕각시와 연관된 관세음보살 화현의 전설이 내려오고 있는 곳으로 관세음보살 기도 영험 지로도 알려졌다. 이와 관련 내려오는 전설에 따르면 어느 날 사냥을 나갔다가 한 낭자를 보고 상사병에 걸린 홍주 마을의 수덕 도령은 덕숭낭자를 수소문해 청혼한다. 덕숭낭자는 여러 번 거절하다가 자기 집 근처에 절을 지어 주는 조건으로 청혼을 받아들였다.

덕숭낭자는 결혼을 한 후 수덕 도령이 접근하지 못하게 하였지만, 어느 날 수덕 도령이 덕숭낭자를 강제로 끌어안는 순간 뇌성벽력이 일면서 버선 한쪽만 남기고 낭자는 사라진다. 낭자가 사라진 자리는 바위로 변하고 옆에 버선 모양의 하얀 꽃버선 꽃이 폈다. 바로 그 덕숭낭자가 관세음보살 화신이었다는 것이다.

수덕사 대웅전 우측 전각이 바로 관음전이고 관음전 앞에는 관세음보살 입상과 관음 바위가 있는데 바로 그 관세음보살 화현 이야기의 상징이다. 수덕사 창건 설화를 관음 바위가 품고 있는 셈이다. 마치 중국 당나라 때 황제인 양무제가 달마 스님을 인도에서 초청해 국사로 모시는 사이 이를 시기해 모함을 받은 달마 스님이 사약을 받고 죽었지만, 훗날 그 묘지를 파보니 시신은 온데간데없고 신발 한 짝만 남겼다는 설화가 이곳 수석사에도 관음 바위로 회자하고 있다.

이처럼 수덕사는 관음 성지이면서 근현대 한국 불교의 간화선풍(看話禪風) 근본 도량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은 경허 스님에 이어 법제자인 만공스님이 혜월스님, 수월 스님과 함께 1904년 이후 40년 동안 선풍 진작에 나섰기 때문이다.

경허 스님은 법제자인 만공스님 등을 뒤로하고 함경도 갑산 강계 등 세상 속으로 박난주란 속명으로 변신해 두타만행을 했다고 한다. 경허 스님이 세상 속으로 은둔한 이후 뒤를 이은 만공스님은 일본강점기 한일 불교합병을 시도했던 1937년 3월 11일 조선총독부 회의실에서 전국 31본산 주지들을 불러 모은 미나미 총독의 얼굴 앞에다 대고 "전임 총독은 조선불교를 망친 사람이다. 마땅히 무간지옥에 떨어져 한량없는 고통을 받음이 끝이 없을 것이다. 조선불교는 1500년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일본 불교와 합할 필요가 없다"라며 대한불교 조계종의 종지인 간화선풍에 한 치 흐트러짐 없는 기개를 보여줬다고 한다.

스님들 사이에서는 경허 스님 세 제자인 이들 만공·혜월·수월 스님을 '세 달 3월'로 부르고 있다. 호방한 선풍을 진작시킨 풍류객이었던 ‘중천의 보름달’ 만공스님, 아이 같은 천진 불로 유명했던 ‘남녘의 하현달’ 혜월스님, 그리고 만주벌판에서 독립운동을 하는 독립군들에게 짚신을 삼아주고 주먹밥을 해 주며 무주상 보시를 베풀었던 '북녘의 상현달’ 수월 스님을 ‘경허의 세 달(月)’로 불리고 있다.

수덕사 부속 암자인 간월암(看月庵)은 '서산 어리굴젓'으로 더 알려진 서산시 부석면 간월도에 있다.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의 스승 무학대사와 근현대에 서산 간척지를 조성한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기도 영험이 서린 곳이다.

간월암(看月庵)은 썰물 때는 길이 열리고 밀물 때는 섬으로 변한다. 설화에 따르면 무학대사가 어머니 배 속에 있을 때의 일이다. 아버지가 진 빚을 갚지 못해 쫓겨 다니고 있던 차에 요즘으로 치면 경찰들이 대신 어머니를 붙잡아서 관아로 압송하는 도중 산기가 있었다고 한다. 그때 온 산천이 눈으로 덮여 있었는데 둘러보니 한 곳만 눈이 없어 무학 어머니는 그곳에서 무학을 낳고 아기를 옷가지로 덮어놓은 뒤 태안 현청으로 끌려갔다.

그 사실을 전해 들은 현감이 무학 어머니를 풀어주자 그곳으로 가보니 큰 학이 두 날개를 펴고서 아기를 감싸 안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크게 감격한 어머니가 아이의 이름을 학이 춤을 추듯 날개를 펴 아이를 돌봤다 해서 ‘무학(舞鶴)’이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이후 무학은 출가해 간월도에 암자를 짓고 수행을 하던 중 어느 날 문득 ‘달을 보고 깨달음을 얻었다’ 하여 이 암자 이름을 간월암(看月庵)이라고 했다.

이후 더욱 유명세를 탄 것은 바로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의 눈물 어린 기도 영험 때문이다. 울산 현대중공업, 자동차 등 현대그룹 임직원들이 현장에서 배불리 먹을 쌀이 필요했던 정주영 회장은 바다를 메워 논을 만드는 간척에 나섰으나 마지막 단계에서 바다 물살이 거세 연거푸 둑막이에 실패했다고 한다. 이에 간월암에 가서 온몸을 흥건히 적실 정도로 기도를 하면서 “부처님 제가 우리 직원들 일하는데 배는 고프지 않게 하려고 간척을 하는데 지혜를 달라”고 발원했다고 한다. 이때 흐르는 땀이 눈 사이로 흘러내리면서 배가 보였다고 한다. 이를 깨달은 정주영 회장은 당시 박정희 대통령에게 폐선박 한 척을 제공해달라고 해서 양쪽 둑을 배로 막아 오늘의 서산 간척지를 완성할 수 있었다는 기도 영험이 서린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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