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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큰아버지 유해, 우리의 품으로 꼭 돌아왔으면...”엉터리 전사기록 "전쟁 발발도 안했는데 전사기록"
아버지 유언에 6·25 전쟁 기록 바로잡고자 노력
"국가가 직접 나서 끝까지 6·25 전사자 잊지 않길"
  • 송호길 기자
  • 승인 2019.09.30 16:47
  •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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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내 충혼당 위패봉안실에서 지난 19일 고(故) 박두근의 동생 고 박순근의 자녀들이 큰아버지의 이름이 적힌 위패를 가리키고 있다. 사진 맨 왼쪽부터 박주애, 박미경, 박숙경, 박일현씨. 사진=김현수 기자

[일간투데이 송호길 기자] "올해부터는 큰아버지인 고(故) 박두근의 제사를 1950년 10월 29일 전사한 날짜에 잘 모시겠습니다."


내년 6·25전쟁 70주년을 맞는 가운데 지난 19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만난 고 박두근 조카 박일현(52)씨의 감회는 남다르다. 올해 잘못 기록된 큰아버지의 6·25전쟁 참전기록을 바로잡았기 때문이다. 이날은 음력으로 박두근씨가 전사한지 69년째 되는 날이다.

1950년 9월경 경상남도 동래군 북면 남산리 122번지에 거주하던 고 박두근씨. 당시 18살이던 그는 낙동강 방어 전선으로 징집됐다. 당시 육군은 징집 인원이 많이 모자란다는 이유로 미성년자를 가두모집으로 강제 징집했다. 나라를 위해 전쟁에 참전했던 그는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6·25 전쟁이 끝나고 육군은 유족들에게 더 큰 상처를 안겨줬다. 육군은 1956년 고 박씨 유족들에게 '육군 26연대 이병 박두근 1950년 5월 16일 불상지역에서 전사'라는 내용의 엉터리 전사기록을 통보했다. 그는 1950년 9월경 징집됐는데 전사기록은 전쟁이 발발하기도 전인 5월이었던 것이다.

고 박두근의 어머니는 아들의 전사 통보를 받고 충격으로 쓰러져 투병하다 1960년 세상을 떠났다. 박두근의 동생 박순근씨는 2008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국군부산병원에서 6·25 전사자 유해발굴 신청을 위해 유전자 정보를 제공했다. 언젠가는 꼭 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하지만 세월이 야속하게도 순근씨는 형님의 흔적을 찾다가 결국 못 찾고 2012년 눈을 감았다.

지난 19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만난 고 박두근 조카 박일현(52)씨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국립서울현충원에서 현재 위패봉안실 현대화 사업이 진행 중으로 안다"며 "큰아버지 박두근의 위패를 포함해 시설을 현대화 할 수 있도록 관심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사진=김현수 기자


"그동안 수십 년간 가족들과 함께 매년 음력 9월 9일 자택에서 큰아버지 제사를 지냈습니다. 큰아버지의 6·25전쟁 참전기록과 유해를 꼭 찾으라는 아버지(고 박순근)의 유언에 따라 제사를 한 번도 거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기적처럼 큰아버지의 참전 기록을 구체화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됐다. 올해 6월 6일 현충일을 맞아 서울현충원에서 6·25 전사자 기록을 찾아보던 조카 박일현씨가 우연히 현충원 내 충혼당 위패봉안실에서 큰아버지의 위패를 발견하게 되면서다.

박씨는 큰아버지의 병적 기록 확인을 위해 육군본부(인사사령부 병적민원과·보훈지원과), 병무청, 서울현충원, 국방부 유해발굴단 등에 각각 민원을 신청했다.

박일현씨는 이들 기관에 ▲박두근의 모친 성명이 '양택남'으로 잘못 기재돼 있어 '양차남'으로 정정 ▲본적지가 '경상남도 동래 북 남산'으로 표기돼 행정구역 표기를 '경상남도 동래군 북면 남산리 122번지'로 변경 ▲고 박두근 전사일 자가 1950년 '5월 16일'로 잘못 기재돼 있어 전쟁 발발 이후인 '6월 25일' 이후로 정정 등을 요청했다.

육군본부는 민원접수한 내용의 사실확인을 위해 지난 7월 2일 박일현씨의 부산 자택에 현장 방문을 했다.

지난 19일 고(故) 박두근의 동생 고 박순근의 자녀들이 현충원에서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김현수 기자

이 때 기적 같은 일은 또 벌어지게 된다. 6·25전쟁 당시 박두근씨와 동네친구이자 함께 육군에 입대한 송경두(87)씨의 생존 사실이 뒤늦게 확인된 것이다. 박일현씨는 큰아버지의 잘못된 전사기록 변경을 위해 어렵사리 설득 끝에 송씨의 진술을 담아내는 데 성공했다.

당시 송씨는 진술에서 한국전쟁 발발 이후 그해 8월 경상남도 동래군 북면 남산리에서 동네 이장인 양씨가 국군장병을 징집하고 있었는데, 인원수가 모자란 탓에 징집됐다고 증언했다. 이후 집결지에서 박두근씨를 만났고 경주, 포항 인근 전투에서도 박두근씨를 만나 반가워 이름을 불러 인사했다고 회상했다.

"큰아버지의 친구가 살아계신다는 소식을 접한 뒤 아직 희망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송씨는 옛 기억을 더듬을 당시 여전히 전쟁에 대한 두려움이 역력해 보였습니다. 그의 조카의 적극적인 도움을 받아 송씨의 증언을 함께 청취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 19일 오후 국립서울현충원에서 고 박두근의 동생 고 박순근의 자녀들이 6·25 희생자 묘역을 찾아 묘비를 어루만지고 있다. 김현수 기자


박씨는 송씨의 증언이 담긴 음성파일과 인우보증서를 7월 2일 육군에 제출했다.

육군은 7월 10일 박씨 측의 민원을 받아들여 전사기록과 모친 성명, 주소기록을 정정했다.

육군본부는 박씨에게 보낸 공문에서 '육군 26연대 일병 군번(0203267) 박두근, 1950년 10월 29일 전사, 전사장소 함흥'으로 정정했다고 알렸다.

지난 19일 오후 국립서울현충원에서 고 박두근의 동생 고 박순근의 자녀들이 참배를 위해 현충탑을 향하고 있다. 사진=김현수 기자


인터뷰 말미에 박일현씨는 큰아버지의 유해는 여전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지만, 생전에 꼭 유해를 찾고 싶은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국방부 유해발굴단이 현재 북한지역에서는 유해발굴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큰아버지 유해를 북한 함흥지역에서 언젠가는 꼭 찾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국가가 6·25 전사자를 잊지 않고 끝까지 찾아 주시기 바랍니다."

고 박두근 일병(큰아버지)의 동생 고 박순근(아버지)의 둘째딸 박주옥이 미국 하와이에서 소식을 듣고 현충원을 방문해서 인사드리고 있다.


한편 인터뷰 전날인 18일 오전 국립대전현충원에서는 '6·25 전사자 발굴유해 안식장'이 열렸다. 영현 봉송병들은 지난봄 비무장지대(DMZ) 화살머리고지에서 발굴돼 신원이 확인된 고(故) 남궁선 이등중사의 영현을 봉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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