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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걸의 사찰기행] 화마도 범접 못 한 낙산사 홍련암(洛山寺 紅蓮庵)
  • 최종걸 주필
  • 승인 2019.10.17 11:19
  • 19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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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상대사가 671년 국가와 국민의 안위를 기원하기 위해 세웠던 사찰이 지난 2005년 4월 5일 화마에 휩싸이자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청와대 경내 지하벙커인 국가위기관리센터에서 소방방재청장에게 가능한 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불을 진화하라고 지시했다.

당시 청와대 위기관리센터에는 긴박했던 상황을 담은 사진이 걸려있다. 강풍을 등에 업은 화마는 끝내 낙산사를 초토화할 기세로 휘몰아쳤지만, 경내 암자인 홍련암에는 화마가 범접하지 못했다.

바로 그 낙산사는 의상대사가 관세음보살 진신을 친견 후 신라와 당나라의 전쟁 중에 관세음보살의 가피로 국가와 백성을 구하고자 하는 간절한 바람(願)을 담은 관음진신주처(觀音眞身住處) 즉 관음보살이 언제나 머무는 상징적인 사찰이다.

의상 대사가 창건 이후 가지산문(迦智山門)의 개창자인 범일 국사가 중창하면서 세 칸 크기의 법당에 정취 보살상(正趣菩薩像)을 봉안했다. 화엄경 입법 계품에서 선재 동자가 구법 행각을 할 때 28번째 만난 선지식인 관음보살, 29번째로 찾아간 정취 보살이었던 점을 볼 때 범일 스님이 관음 신앙 뿐만 아니라 정취 보살의 지혜를 닦겠다는 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곳이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낙산사는 의상대사가 당나라에서 귀국한 후 관세음보살 진신이 낙산 동쪽 바닷가 굴속에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아가 관음보살을 친견하고 창건했다고 한다. 이후 범일 국사가 동네 아이가 놀던 다리 밑 물속에 돌로 만든 보살상 하나가 있는 것을 보고 꺼내어 보니 왼쪽 귀가 떨어져 있는 것이 영락없이 예전 중국에서 만났던 스님이었다는 것이다. 범일 스님은 이 보살상이 정취 보살인 것을 깨닫고 불전 3칸을 짓고 그 상을 모셨다는 것이다.

바로 그곳이 671년 의상대사가 창건한 신라의 고찰로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에 있는 낙산사이다. 강화도 보문사, 남해 보리암 등과 함께 3대 해수 관음 성지다. 낙산사는 관세음보살이 머무르는 곳이라는 뜻의 보타낙가산(普陀洛迦山)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낙산사에는 관음보살 앞에 나아가 정진하던 조신 스님의 꿈, 일명 조신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조신 스님은 꿈을 통해 모든 욕망에 벗어나고 수행에 전념해 낙산 4성 중의 한 스님이 됐다는 기도 성취 도량으로도 삼국유사는 전하고 있다.

삼국유사 조신 설화에 의하면 이 절에서 수행하던 조신 스님이 그 고을 태수 딸의 마음을 두고 흠모했으나 태수의 딸이 다른 남자에게 출가해 낙담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기도 중인 조신 스님이 꿈을 꾸게 되었는데, 그 태수의 딸이 나타나 사랑을 맺게 돼 도망을 가 아들·딸을 두었으나, 가족이 가난과 병사 등으로 굴곡을 겪으며 인생살이의 덧없음을 경험하는 꿈을 꾸고 깼다고 한다. 조신 스님은 잠시였지만 꿈을 통해 결국은 고통으로 이어질 현세의 욕망을 버려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어 다시 정진 끝에 깨달음을 얻었다는 기도처이기도 하다.

또한, 국내 사찰 중 보기 드물게 낙산사 홍련암 길목에는 공중사리탑이라는 사리탑이 있다. 이 사리탑 비문에 따르면 1683년 숙종 9년에 홍련암 불상에 금칠(개금)을 다시 할 때 주변에 상서로운 기운이 가득하더니 공중에서 오색찬란한 사리들이 쏟아져 1692년 석겸 스님 등이 큰 뜻을 세우고자 조성한 사리탑이라고 한다. 사리탑은 8각 원당 형으로 2006년 해수관음공중사리탑을 해체 보수하는 과정에서 진신사리와 장엄구가 발견돼 이곳에 해수관음공중사리탑비를 조성했다.

낙산사의 가람에는 관음보살상을 안치한 곳과 창건주의 의상 대사를 기념하는 곳, 창건 배경이 되는 홍련암, 그리고 부처님의 진신 사리를 봉안한 공중사리탑으로 이뤄져 있다.

낙산사는 1347여 년 전에 관음보살의 진신을 친견하러 온 의상대사가 창건한 이래 수많은 화마 속에서도 숱한 복원 불사의 원력에 힘입어 지난 2005년 4월 5일 강풍을 동반한 산불로 홍련암 외 전각 대부분이 소실됐다가 당시 주지 스님인 금곡(정념)스님과 신도들의 발원으로 지난 2010년까지 대부분 복원됐다. 지금도 관음진신을 친견하려는 참배객들의 간절한 발원이 끊이지 않고 있는 절이다.

의상대사가 홍련암 위에 나타난 관음을 친견하고 대나무가 솟은 곳에 불전을 지었다는 홍련암은 지난 2005년 4월 5일 화마에도 화마가 멈춰 온전하게 남아 있고 그 바로 아래 관음굴은 의상 대사가 만난 파랑새가 아직도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면 볼 수 있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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