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를 포함한 중국, 일본 등 아시아 태평양 16개국 간 하나의 자유무역지대를 뜻하는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RCEP ; 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이 드디어 각국 정상 간에 채택됐다.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10개국과 한·중·일 3개국, 호주·뉴질랜드·인도 등 총 16개국의 관세장벽 철폐를 목표로 하는 일종의 자유무역협정(FTA)이다.

한국 등 아태 지역 16개국 정상들이 지난 2012년 11월 20일 캄보디아 프놈펜 평화궁전에서 열린 동아시아정상회의(EAS)에서 공동선언문을 채택한 지 7년 만이다. 정상들은 공동성명을 통해 이같이 밝히고 향후 시장개방 등 협상을 마무리해 2020년 최종 타결·서명을 추진키로 했다.

내년에 RCEP가 체결되면 역내 인구 36억명, 무역 규모 10조1310억달러(약 1경1043조원), 명목 역내 총생산(GDP) 19조7640만달러에 이르는 자유무역지대가 열린다. 이는 명목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18조달러)과 유럽연합(EU, 17조6000억달러)을 능가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자유무역 벨트다.

문재인 대통령이 4일 태국의 수도 방콕 임팩트 포럼에서 열린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에서 아세안 10개국과 중국·호주·일본·인도·뉴질랜드 등 15개국 정상들이 참여한 가운데 이 협정에 서명했다. 이미 한국은 이들 국가와 양자 간 FTA를 맺은 상황에서 한발 더 나아가 다중국가들과 더 촘촘하게 자유무역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안게 됐다.

이번 RCEP 협정으로 세계 인구의 절반, 세계 총생산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역내 자유무역으로 교역·투자 활성화와 수출시장 다변화를 통한 새로운 기회가 창출될 것이라는 점은 반가운 소식이다. 갈수록 보호무역 색깔을 드러내는 미국과 일본에 대한 무역비중 의존도를 줄이면서 새롭게 부상하는 아세안과 태평양 연안 국가들과는 상대적으로 확대하는 신남방정책이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점에서다.

한국은 RCEP에 참여한 15개국 중 일본을 제외한 모든 국가와 양자 FTA를 맺고 있어 시장 접근성 등은 양자 FTA를 통해 확보하고, 나라 간 다른 원산지와 통관 규정으로 발생하는 한계는 RCEP로 해결하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얻게 됐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반면 RCEP 참여국에는 중국, 호주, 뉴질랜드 등 농산물 강국이나 수산업에 경쟁력이 있는 아세안 등이 포함돼 있어 한국 농수산물 분야에 미칠 파장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 지난달 정부가 세계무역기구(WTO) 내 농업 분야 개도국 혜택을 포기한 데 이어 이번 RCEP 협정 채택으로 농수산물 분야에 대한 시급한 대응책이 요구되고 있다.

제품 생산 과정에서 역내 여러 국가를 거친 제품도 특혜 관세를 적용받을 수 있게 됨에 따라 참여국 간 가치사슬이 강화되고, 미국·중국 등 주요 2개국(G2)을 넘어 신남방 핵심국가들로 교역망을 다변화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게 정부 측 설명이다. 특히 한국 기업은 현재 아세안 등 RCEP 역내국에 지속적 투자를 통해 다양한 역내 생산기반을 확보한 만큼 RCEP 체결은 기존 FTA의 제약을 허물고 FTA의 활용률을 더욱 높일 것이란 전망이다. 또 협상 참여국은 원산지 규정, 통관 절차 및 표준의 간소화와 통일 등을 통해 역내 거래 비용 절감효과를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문제는 우리나라가 상대적으로 가격 경쟁력에 취약한 농수산업에 미칠 파장이다. 참가국 중 중국, 호주, 뉴질랜드는 농산물, 아세안 국가들은 풍부한 수산물로 한국 시장을 공략할 경우 우리 농수산업이 직격탄을 맞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농촌경제연구원이 지난 2017년 2월 '포스트-FTA 농업통상 현안 대응 방안'에서 "RCEP 협상이 타결될 경우 율무, 고구마, 녹두, 팥과 같은 곡물류와 배추, 당근, 수박, 양파, 마늘, 고추, 생강 등과 같은 과채 채소류의 영향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사과, 배, 복숭아, 감, 감귤과 같은 품목은 현재 검역으로 수입이 제한되고 있지만, 향후 RCEP 협상 타결이 검역에 영향을 주게 되면 과일류의 영향도 클 수 있다"고 지적했다.

농수산 분야는 제조업 분야의 희생을 감수해야 할 대상이 아닌 국가가 가장 신중하게 보호하고 육성해야 할 농수산물 주권을 지켜야 한다는 점에서 농수산 분야에 대한 획기적인 대책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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