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500대 기업의 최고책임자(CEO) 겸 대표이사가 기업을 창업한 창업자가 내세운 전문경영인 비중이 82.7%인 것으로 나타났다. 창업은 했지만, 본인보다는 외부인을 내세워 기업 경영을 맡기는 사례가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는 조사결과이다.

기업평가사이트인 CEO 스코어가 추적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주요 500대 기업 중에서 전문경영인인 CEO 10명 중 8명이 비창업자로 창업자 비중이 축소되고 있다. 또 해마다 창업자 경영인 비중이 축소돼 전문경영인 시대라는 것을 반영하고 있다.

전문경영인 비중은 지난 2012년 76.7%, 2013년 78.3%, 2014년 79.9%에 이어 2015년에는 80.1%로 넘어선 이후 올해는 82.7%까지 갈수록 비중이 확대되고 있다.

창업 이후 사세가 확장됨에 따라 전문경영인을 내세워 대기업으로 성장시키는 데 따른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다. 주목할만한 점은 가족 비중이 줄고 전문경영인을 내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조사 대상 592명 가운데 52.4%(310명)가 내부 승진 대표이사로 내부 출신 비중이 지난해 51.8%로 절반을 넘긴 이후 올해는 더욱 비중이 확대된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을 일군 과정에서 성장에 디딤돌이 됐던 검증된 내부 인사를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이다.

반면 외부에서 수혈을 통해 기업 내부의 혁신을 도모한 기업 중에서 삼성 출신이 많다는 점도 눈에 띈다. 다른 기업에서 검증된 전문경영인을 눈여겨 본 이후 영입해서 전문경영인으로 발탁한 경우다. 대표적인 인물로 삼성전자에서 ‘황의 법칙(반도체 메모리 용량이 1년마다 두 배씩 증가한다는 이론)’으로 잘 알려진 황창규 KT 회장이다. 황 회장은 삼성전자에서 반도체 신화를 쓴 뒤 KT 회장으로 영입됐다. 또 박근희 CJ대한통운 대표, 옥경석 ㈜한화 대표, 동현수 ㈜두산 대표, 차정호 신세계인터내셔날 대표 등도 삼성가에서 전문경영인으로 담금질을 한 출신이다.

국내 500대 대기업들의 흥망사 속에는 이번 조사 결과 말고도 창업자의 무리수로 하루아침에 신기루처럼 기업지도에서 사라진 대기업이 있는가 하면 전문경영인을 내세워 ‘한국 최고가 세계 최고’라는 구호를 외치며 그야말로 세계 최고기업으로 키운 대기업 오너들도 있다.

창업자와 전문경영인의 역할 분담이 돋보였던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과 민계식 현대중공업 사장 겸 회장의 경우가 그렇다. 정주영 회장은 조선 강국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당시 대우조선해양에서 일하던 민계식 전문가를 영입해 현대중공업을 맡겼다. 선박 건조 기술개발에 대한 전권을 줬다. 현대중공업은 아들이었던 정몽준 몫이었지만 경영은 민계식 사장 겸 회장에게 전권을 줬고 경영을 맡긴 결과, 세계 조선업계를 평정했다. 독자 기술개발을 독려했던 창업자와 이를 실현한 전문경영인의 융합이 창출한 결과였다.

가구업계의 신화를 쓴 한샘도 창업자가 내세운 전문경영인에게 20여년을 맡겼다. 또 금융계에서도 한진가의 막내인 메리츠금융그룹을 빼놓을 수 없다. 대한항공과 한진해운 등이 가족에게 경영을 맡겨 비운을 겪는 반면 메리츠금융그룹은 전문경영인을 내세워 화재와 증권 등에서 숨은 실력자로 부상했다.

지난 80년대부터 대기업 집단 소위 한국식 대기업을 뜻하는 재벌들이 나타나는 과정에서 창업자의 무리수를 넘기지 못하고 망한 소위 오너 위험에 사라진 기업들도 다반사였다. 반면 능력이 모자란 가족보다는 검증된 전문경영인을 내세워 기업을 세계 기업으로 키운 대기업의 성공사례도 만만치 않다. 이 같은 성공사례 뒷면에는 창업자 본인보다는 성장 단계에서 본인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전문경영인을 내세운 창업자들의 혜안이 있었다는 것을 읽을 수 있다. 

기업의 흥망사례에서 전문경영인의 역할이 얼마나 컸는지는 비단 기업에서 뿐만 아니라 국회나 행정부 그리고 지방자치단체의 단체장들도 다시 한번 눈여겨 볼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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