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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걸의 창건설화] 겨울에도 복숭아와 오얏꽃이 핀 도리사
  • 최종걸 주필
  • 승인 2019.11.10 14:42
  • 19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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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리사 경내 세존사리탑(世尊舍利塔). 극락전 뒤 태조선원과 삼성각 사이에 있는 높이 1.3m의 이라는 글자를 한 자씩 새겨 넣었다. 지난 1977년 중수과정중 이 사리탑에서 8세기 무렵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금동육각사리함과 그 안에 담긴 사리가 발견되었다. 사진 제공 도리사.
신라 불교 최초 가람인 적멸보궁 도리사(桃李寺)는 신라 제19대 눌지왕때인 417년에 고구려 출신의 아도화상(阿道和尙)이 불교가 없었던 신라에 포교를 위해 처음 세운 신라 불교의 발상지이다.

아도화상이 수행처를 찾기위해 다니던 중 겨울인데도 이곳에 복숭아 꽃과 오얏꽃이 활짝 핀 모습을 보고 길지로 여겨 이곳에 모례장자의 시주로 절을 짓고 사찰명을 복숭아와 오얏나무를 상징하는 도리사(桃李寺)라 했다고 한다.

태조산 도리사(太祖山 桃李寺)는 경상북도 구미시 도리사로 526에 있는 절로 도리사 태조선원은 대구 파계사 성전(聖殿), 은해사 운부암, 비슬산 도성암과 더불어 영남 4대 도량으로 꼽히고 있다.

도리사는 해동최초가람 태조산 성지라는 소개와 함께 아도화상 사적비, 불량탑 시주질비, 아도화상 좌선대 등 아도화상과 관련된 유물과 유적을 간직하고 있다.

아도화상 좌선대는 아도화상이 참선했다는 대좌 형태의 널찍한 반석이다. 그 뒤쪽에 아도화상 사적비와 도리사불량답계주질비(桃李寺佛糧畓契主秩卑)가 있다. 앞면에는 쌍용(雙龍), 뒷면에는 네 마리 용을 조각한 특이한 형식을 띈 아도화상 사적비는 조선 효종 6년인 1655년에 세운 것으로 앞면에는 아도화상이 신라에 불교를 전한 사적, 뒷면에는 자운비(慈雲碑)가 음각돼 있다.

창건 당시의 절터는 태조산 기슭에 있는 옛 절터로 추정되고 있고, 지금의 도리사가 있는 곳은 금당암(金堂庵)이 있었던 곳이다. 이는 1677년에 화재로 대웅전과 전각이 모두 소실된 것을 1729년에 대인 스님이 인근의 금당암으로 절을 옮기고 아미타불상을 개금한 이후 불사가 이어져 오고 있다.

이같은 불사 과정에서 지난 1976년 6월에는 아도화상의 석상(石像)이 발견됐고, 이듬해인 1977년 4월에는 세존사리탑을 해체, 복원하다가 아도화상이 신라에 불교를 전하러 올 때 모셔온 석가모니 진신사리를 모신 금동육각탑 형태를 띤 사리구(舍利具)와 진신 사리 1과가 발견됐다. 이를 1982년에 세존사리탑에서 발견된 진신 사리를 친견하기 위해 적멸보궁을 조성하고, 1987년에는 사리를 안치한 석가여래사리탑을 세우는 등 모든 전각의 중건과 중수를 해오고 있다.

아도화상과 관련된 도리사 사적기에 따르면 아도화상은 어머니 고도녕과 중국에서 온 사신 아굴마과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도가 다섯 살이 되자 어머니 고도녕은 아들을 출가시켰다. 아도가 16세가 되자 중국으로 가 현창 화상 밑에서 수행을 하고 고구려로 돌아왔고 당시 불교가를 수용하지 않았던 신라로 불법을 전하러 왔다고 한다. 당시 신라는 외래 문물에 배타적이어서 불교 박해가 심한 탓에 묵호자(墨胡子)란 이름으로 지금의 선산부 도개에 와서 모례 장자의 집에 몸을 의지하고 낮에는 일을 돕고, 밤에는 사람을 모아 포교활동을 했다고 한다.

그때 양나라의 사신이 신라에 향(香)을 예물로 보내왔으나 그 사용법을 아는 사람이 없어 걱정 해오던 중 모례 장자의 추천으로 궁에 들어가 향의 사용법을 알려주면서 “향을 불에 태우면 향기가 그윽해 신성하기가 이를데 없고, 소원을 빌면 반드시 영험이 있다”라고 소개했다고 한다. 때마침 왕의 공주인 성국공주가 큰 병이 들어있었는데, 왕이 아도화상에게 치료를 청하니 아도화상이 칠일간 향을 피우고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니 신통하게도 공주의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

이를 신통하게 여긴 왕의 신임덕분에 불교를 포교할 기회를 얻기도 했으나 아도화상을 알아주는 왕이 세상을 떠나자 아도화상을 해치려 하는 무리들 때문에 몸을 숨길 수밖에 없었다. 모례 장자의 집에 잠시 머물다 떠나려하자 모례장자가 가는 길을 묻자 “나를 만나려거든 얼마 후 칡순이 내려올 것이니 칡넝쿨을 따라 오시오”라는 말을 남기고 아도화상은 사라졌다.

그 해 겨울 과연 기이하게도 정월 엄동설한에 칡순이 모례장자 집 문턱까지 뻗어 들어왔다. 아도화상이 짚히는 게 있어 그 줄기를 따라가자 한 겨울인데도 복숭아 꽃과 오얏꽃이 활짝 핀 나무 아래 좌선대에서 아도화상이 정진하고 있었다. 모례장자는 재산을 모두 시주해 도리사를 세우는데 앞장섰고 아도화상은 절 이름을 복숭아 꽃과 오얏꽃의 이름을 따 도리사라 칭했고 그곳이 바로 신라에 처음 세워진 절 도리사이다.

아도화상이 만년에 열반든 금수굴에는 지금도 재를 올리는 날이면 굴 안에서 빛이 환하게 뻗쳐 나온다고 한다. 또 성국공주의 병을 낫게한 아도화상 동상 앞에서 향을 피워 올리며 가족과 친지들의 쾌차를 위해 기원하는 기도객들이 가피를 받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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