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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걸의 창건설화] 마애불이 중매쟁이가 된 홍은동 옥천암
  • 최종걸 주필
  • 승인 2019.11.12 13:05
  • 19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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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홍지문길 1-38(홍은동 8) 개천가 옆 옥천암 보도각내 마애불. 사진 제공 옥천암
부처님이 때로는 ‘때밀이’, 등짐을 나르는 ‘소’, ‘짐꾼’, ‘중매쟁이’로 나서 보살도를 펼쳤다. 이번에는 ‘중매쟁이’로 현몽한 기도 영험 도량인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홍지문길 1-38(홍은동 8) 대한불교조계종 옥천암 이야기다.

정확한 창건 기록이 없는 가운데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가 한양에 도읍을 정하기 전에 옥천암에서 기도했다는 설과 흥선대원군의 부인 민 씨가 아들 고종의 복을 빌 때마다 이 마애불을 찾아 기도했다는 이야기가 내려오고 있다.

하지만 옥천암이 근현대에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나무꾼인 윤덕삼 총각이 이곳에서 마애불인 보도각 관세음보살(普渡閣 觀世音菩薩)님 앞에서 기도하고 나서 그 인연으로 장가를 가서 거부(巨富)가 됐다는 실화가 전해져 오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을 널리 구제하는 부처님'이란 뜻을 가진 옥천암 마애불상을 '보도각백불(普渡閣 白佛)'이라 부른 것은 온몸을 흰색으로 칠한 마애관음보살상이라는 뜻이다. 관세음보살님을 모신 전각이어서 보도각(普渡閣)이고, 보도각 현판은 흥선대원군이 직접 썼다고 한다.

때는 지난 1819년 순조 7년에 서울 인근인 경기도 고양시 신도면 가난한 집에 삼십이 넘도록 장가를 가지 못한 윤덕삼(尹德三)이라 부르는 노총각이 칠십이 넘은 노부모를 모시고 나무장사를 하며 근근이 살아가고 있었다고 한다. 근세기의 일이다.

그는 매일 첫닭이 울면 나무 짐을 짊어지고 서울로 넘어오는데 서대문 거리는 수많은 나무꾼이 많아 경쟁이 심해 발붙일 곳이 없어서 홍제동에서 왼편으로 개천을 끼고 세검정을 거쳐 자하문 산길을 넘어 팔러 갔다고 한다. 논밭이 없어 나무장사로만 노부모를 부양해야 하는 삼대독자 노총각은 장가 한번 들지 못한 채 대가 끊길지도 모른다는 상념이 하루도 멈출날이 없었다.

그런데 하루는 나무 짐을 짊어지고 세검정을 향해 가다가 그날따라 귀에 익숙한 목탁 소리가 들려 쉬어갈 겸 나무지게를 내려놓고 바라보니 개천 건너 높이 수십 척이나 되는 바위에 조각된 부처님상 앞에 신도들이 스님들과 함께 향불을 피우고 절을 올리고 있어 이 모습을 지켜봤다.

그날따라 저렇게 하면 돌부처가 무슨 소원이라도 이뤄 준단 말인가라는 의구심이 들던 차에 기도를 마친 할머니들이 건너와 윤덕삼 총각에게 마애불 영험담을 소개했다고 한다.

저 바위에 새겨진 해수관음(海水觀音)보살님은 강원도 동해안의 낙산사 홍련암(紅蓮庵), 경상도 남해 금산 보리암(菩提庵), 서해 강화군 삼산면 보문사(普門寺)와 같은 해수 관음보살이라는 설명과 함께. 이곳은 바다는 아니지만, 개천가인 까닭으로 멀리 바다에 가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 인연을 맺으라고 새겨놓은 관세음보살님이라고 했다. 그날 이후 윤덕삼 노총각은 이곳을 지날 때는 반드시 길가에 나무 짐을 내려놓고 건너가서 그 해수 관음에게 수십 번씩 절을 하면서 마음속으로 “제가 장가를 들어 자손을 보고 부자가 돼서 나무장사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라는 발원을 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백일이 지난 어느 따스한 봄날 집에 돌아온 그 날 밤 꿈에 나이가 지긋한 노보살님이 나타나 “나는 해수관음을 모시고 있는 옥천암에서 온 보살이다. 너의 정성이 하도 갸륵해 너에게 도움이 될 말을 일러 주러 왔다. 네가 내일 새벽 첫닭이 울 때 나무 짐을 지고 떠나 날이 새기 전에 자하문 밖에 가서 기다리고 있거라. 문이 열리면 첫 번째 나오는 여자가 있거든 ‘어디로 가시는 누구인지는 모르나 제가 안내하여 줄 터이니 저를 따라오십시오'하고, 그를 너의 집으로 인도하면 너의 소원을 이루게 될 것이다”라고 일러준 꿈을 꿨다. 윤덕삼은 곧이어 뒷집에서 첫 닭이 우는소리를 듣고 바쁘게 나무 짐을 지고 집을 나왔다.

옛날에는 한양 도성의 사대문은 물론 그 밖의 사립문까지도 여닫는 시간이 있어 그 시간이 아니면 문을 닫고 일체의 통행을 금했기 때문에 먼동이 트이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문틈으로 하얀 버선을 신은 여인이 나오면서 쏜살같이 세검정으로 내려갔다.

윤덕삼은 쫓아 내려가 소매를 붙들고 꿈속에서 일러 준 대로 말하니 그 어여쁜 낭자가 뜻밖에도 잡은 손을 뿌리치지 않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저는 윤 도령이란 총각을 찾아갑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낭자는 "간밤의 꿈에 어떤 점잖은 노인이 '네가 자하문을 나아가면 첫 번째로 어떤 사나이를 만날 터인데 그는 윤 도령이라는 총각이다. 그를 따라가면 심덕이 좋아 해롭지 않을 것이니 따라가거라' 하시길래 그 말씀을 기억해 여기 나왔습니다”라고 했다고 한다.

날이 밝아오자 두 사람은 서로 마주 보며 간밤의 꿈에 봤던 얼굴이라 더욱 깜짝 놀라며 옥천암 부처님이 맺어준 인연이라 여겼다고 한다.

그 낭자는 명문대가의 규수로 열여섯 살에 시집을 갔지만, 남편이 3년 동안을 집에 들어오지 않자 견디다 못해 친정으로 돌아와 십 년 동안을 수절하며 남편의 개심을 기다렸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희망이 없어 새로운 길을 찾아 떠나기로 하자, 그의 어머니는 불쌍하게 생각하고 값나가는 금, 은, 보석, 산호, 비취 등 귀중한 패물을 한 보따리 싸주고 눈물을 흘리면서 인연 따라 마음대로 집을 나가라고 했다.

그날 밤 꿈에 관세음보살이 노인으로 나타나 “네가 다른 문으로 나가지 말고 자하문으로 나가되 문 앞에 이르거든 첫 번째 만나는 윤 총각이라는 남자를 따라가면 행복하게 살 것이다”라는 현몽이 현실이 된 것이다.

그 윤덕삼은 여인과 백년가약을 맺었고, 여인은 가지고 온 패물을 팔아 집과 토지를 사고 또 산도 사서 큰 살림을 벌이니 일시에 고양 신도면 일대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돼 지금도 그의 5대손까지 옥천암의 지극한 후원자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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