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입맛대로 학과 폐지, "재량권 일탈·남용"

[일간투데이 권희진 기자] 대학 당국이 특정 학과를 폐지하는 조치가 위법이라는 취지의 법원 판결이 나왔다.

법원은 적법한 절차를 따르지 않고 여러 학과 중 특정 학과만 선택해 폐지한 대학의 행정 조치가 재량권을 일탈·남용하는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18일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박양준 부장판사)는 모 대학 교수 이 모씨가 교원소청심사위원회를 상대로 "폐과·면직 처분을 취소해 달라"며 낸 소송에서 법원은 이 모 교수의 손을 들어줬다.

이 교수는 1997년 한 대학 전임강사로 임용된 후 2013년 정교수로 승진해 교수로 재직해 왔다.

이후 대학은 2013년 이 교수가 재직하고 있는 학과를 폐지하기로 의결한 후 신입생 모집을 하지 않았고 2014년 2월 이 학과를 삭제하는 내용으로 학칙을 개정하는 등 일방적으로 학과 폐지를 주도했다.

재학생들이 차례로 졸업해 2017년 4월 학적부 등록 학생이 소멸되자 대학 당국은 이듬해 학과를 폐지하고 이 교수를 면직 처분했다.

이 대학은 이 교수의 면직 처분을 내린 당시 2011년 제정된 '구 대학발전 구조조정에 관한 규정'(구조조정 규정)을 학과 폐지의 근거로 제시했다.

이 규정에는 매년 4월 1일 신입생 등록 인원이 모집정원 대비 70% 미만인 학과에 대해서는 다음 연도에 폐과 절차를 개시하고 모든 재학생의 졸업 후 폐과 절차가 종료된다고 명시됐다.

하지만 이 교수는 대학 주도의 '구조조정 규정'이 적법한 절차에 의해 제정되지 않았고, 다른 학과는 존속시킨 채 이 교수가 소속된 해당 학과만 특정해 폐지한 것은 형평성에 반하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결국 재판부는 이 교수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학과 폐지는 적법하게 제·개정된 관련 규정에서 정한 폐과 요건을 충족하고, 적법한 절차에 의해 학과가 폐지된 경우로 한정해 엄격히 해석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어 "해당 대학은 2011년 '구조조정 규정'을 제정하면서 공고 절차를 제대로 거치지 않았고, 대학 구성원들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았다"며 "또 폐과 기준을 충족한 다른 과들에 대해서는 폐과를 유예한 반면 원고가 소속된 B과만 폐지해 재량권을 일탈·남용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해당 대학은 이미 2013년 7월에 2014학년도 해당 학과 신입생을 모집하지 않겠다는 계획을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에 제출했다"며 "2014년 2월 학칙을 개정하기 전에 이미 신입생 모집 중단 계획을 제출한 점에서 (대학 당국의)잘못은 더 중대하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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