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한국은 지난 1945년 8월 15일 이후 미국과 일본의 최전선 역할을 해오고 있다. 소위 동맹이라는 이유 하나로 일본은 편승해온 셈이다. 요즘 외교가에 등장한 무임승차론이다.

대한민국군은 육상, 해상, 공중에서 미국의 태평양 방위라인의 최전선 혈맹 군 역할을 하는 동안 일본의 역할은 없었다. 대한민국 전체예산의 상당 부분을 투입, 최전선 역할을 하는 동맹국 한국에 대해 미국과 일본 정부가 최근 벌이고 있는 행태는 동맹국인지를 의심케 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느닷없이 지난 7월 4일부터 한국의 반도체·디스플레이 등의 생산에 필수적인 품목에 대한 수출규제를 강화하는 조치를 시행한 데 이어, 8월 2일에는 한국을 일본의 백색국가 명단(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했다. 일본은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및 백색 국가 제외 방침에 대해 초기에는 강제징용에 대한 우리 대법원의 판결(2018년 10월)을 이유로 내세웠으나, 이후 한국의 전략물자 밀반출과 대북제재 위반 의혹, 수출국의 관리책임 등으로 계속 말을 바꿨다.

일본 정부는 자국의 안전 보장에 위협이 될 수 있는 첨단 기술과 전자 부품 등을 타 국가에 수출할 때, 허가신청이나 절차 등에서 우대해 주는 국가인 ‘안전 보장 우호국’, ‘화이트리스트(백색 국가)’에서 한국을 배제했다. 뚜렷한 이유를 밝히지 않은 수출규제 보복조치가 5개월여가 흘렀고 그사이 우리 정부는 일본 정부와 다각도로 대화를 시도했지만 무산됐다.

일본이 우방인 한국을 불신하는 이상 불신국에 대한 대응조치로 우리도 백색 국가에서 일본을 제외하는 한편 한일 간 맺은 군사협력에 관한 한일군사보호협정(지소미아 GSOMIA) 종료를 선언하겠다고 통보했다.

이때부터 미·일은 전방위로 한국을 압박하며 강도와 수위를 높여왔다. 이에 우리 정부는 지소미아 종료 시한인 지난 23일 0시를 앞두고 22일 조건부 연장을 한일 양국의 합의로 발표했다.

한일 양국이 발표를 하고도 합의 내용 진위를 놓고 국민의 혼선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보도 내용이 양국 언론매체들 통해 각기 달리 나오고 있다.

다행인 것은 일본이 지난 7월 4일 한국에 대한 3개 핵심소재 수출규제 조치를 단행한 이후 약 5개월간 국내 반도체·디스플레이 업계의 생산 차질이 사실상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이후 벌어질 협상에서 일본이 수출규제를 풀지 않는다면 지소미아 종료의 '조건부 연기' 결정을 위반한 점이라는 들어 다시 종료를 선언할 수 있는 카드를 쥐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간 우리가 우려했던 점은 국내 기업들이 일본의 소재부품 수출규제에 얼마나 피해를 입을지 하는 부분과 이에 대한 향후 대응방안이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삼성디스플레이, LG디스플레이 등 4개 업체는 지난 7월 초 일본의 수출규제 발표 이후 이에 따른 생산 차질이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는 뜻을 최근 정부에 전달했다고 한다.

애초 불화수소,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포토레지스트 등 3개 품목의 대일 의존도가 워낙 높아 수출규제가 2~3개월 이상 지속할 경우 한국 기업들의 생산라인 전면 중단 등 '치명상'을 노렸을 일본의 속셈이 빗나간 셈이다.

이는 국내 업체들이 이들 품목의 수입 채널을 유럽 등으로 다변화하고 국산화 노력도 병행한 데다 정부가 세계무역기구(WTO) 분쟁 절차에 돌입하면서 일본이 '부적절한 수출통제'라는 국제사회의 비판에서 벗어나기 위해 부분적으로나마 이들 품목에 대한 수출 허가를 선별적으로 내주는 등 여러가지 요인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일본이 한국의 주력 수출품목에 비수를 들이댄 야욕이 빗나가자 이번에는 지소미아 종료 저지를 이유로 미국을 앞세운 동맹론을 들고 나왔다. 일본의 협상 테이블에 응한 정부의 조치는 그런 면에서 미국과의 동맹이라는 면에서는 양보했지만, 일본에 대해서는 대한 수출규제는 풀어야 동맹이라는 점을 주지시킨 것이다.

미국의 태평양 방위라인의 최전선에서 한국이 대응하고 있는 동맹의 가치는 이번 지소미아를 종료 여부를 놓고 미일 양국이 나서 한미일 군사정보공유를 주장한데서 거꾸로 인정받은 셈이다. 따라서 일본은 어떤 경우에도 안보상 동맹국에 적용하는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에 한국을 다시 포함해야 한다.

정부는 지소미아 종료의 조건부 연장 협상이 사실이라면 일본에 당당히 백색 국가 지위 회복을 요구해야 한다. 또 미국에 대해서는 양보했는데도 일본이 어겼다는 점을 들어 지소미아를 당연히 종료하겠다고 통보하는 외교력을 발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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