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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걸의 창건 설화] 관세음보살 영험담이 이어지는 석모도 보문사
  • 최종걸 주필
  • 승인 2019.12.19 14:05
  •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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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문사 경내 눈썹바위 아래 마애불 가는 길에 있는 용왕단. 사진 제공 보문사
인천 강화도 서쪽 석모도에 자리하고 있는 보문사는 강원도 양양 낙산사, 남해 금산 보리암과 함께 우리나라 3대 해상 관음기도 도량이다. 석모도 낙가산 중턱 눈썹바위 아래 마애 관세음보살님은 탁 트인 서해를 바라보며 중생들을 살펴준다고 한다.

신라 선덕여왕 4년인 635년에 금강산 보덕암에서 수행하던 회정스님이 관세음보살님을 친견하고 강화도로 내려와 창건했다는 인천광역시 강화군 삼산면 삼산남로828번길 44에 있는 보문사(普門寺)에는 기도 영험담이 넘쳐난다.

창건 당시 관세음보살이 상주한다는 산 이름을 따서 낙가산(洛迦山)이라 하고, 관세음보살의 원력이 광대무변 무변함을 상징해 보문사라 했다고 한다.

보문사 사적기에 따르면 보문사를 창건한 지 14년만인 649년 석가모니부처님과 미륵보살 등 22명의 석상을 바다에서 건져 올려 석굴 법당에 모신 나한전의 신통방통한 기도 영험담이 이어지고 있다.

나한전에 모셔진 부처님들에는 이런 기연들이 있었다고 한다. 때는 신라 진덕왕 3년 보문사 아랫마을 어부들이 여느 해와 다름없이 봄을 맞아 고기잡이에 나서느라 분주했다. 만선의 꿈에 부풀어 어부들이 바다에 그물을 쳤다가 올려보니 물고기는 보이지 않고 특이한 형상의 돌덩이가 22개나 그물에 걸려 있었다.

어부들이 자세히 들여다보니 돌덩이들은 사람 모습과 똑 닮아 있었다. 기이한 석상을 보고 놀랍고 두려운 생각이 들어 바다에 던져 넣고, 배를 저어 멀리 떨어진 다른 곳에 가서 고기를 잡기 시작했다. 한참 만에 그물을 다시 걷어 올리자 아까 멀리 떨어진 곳에 던져 버렸던 석상 22개가 또 올라왔다는 것이다. 어부들은 놀라 허둥지둥 그물과 석상들을 바다에 던져 버리고 서둘러 육지로 돌아와 버렸다. 그날 밤 어부들은 모두 똑같은 꿈을 꾸었다. 맑은 얼굴을 한 노스님이 나타나 "우리는 서천축국(인도)에 왔다. 나와 더불어 스물두 성인이 돌배를 타고 이곳까지 왔는데 우리가 타고 온 돌배를 돌려보내고 물속에 있다가 그대들의 그물을 따라 올라왔더니 두 번씩이나 우리를 다시 물속에 넣어 버리더구나. 우리가 이곳에 온 것은 부처님의 무진 법문과 중생의 복락을 성취하는 길을 전하러 온 것이다. 그대들은 우리가 편히 쉴 수 있는 명산으로 안내해 주기 바라노라. 그 인연과 공덕은 후손들까지 길이 누리게 될 것이니라"라고 했다.

어부들은 하도 꿈이 생생해서 새벽녘부터 다시 바다로 나가 어제 석상을 던져 버린 곳에 그물을 쳤다. 잠시 후 걷어 올린 그물에는 어제의 그 석상 스물 두 개가 그대로 따라 올라왔다. 어부들은 석상을 낙가산으로 옮기는데 보문사 석굴 앞에 이르니 석상이 무거워져서 꼼짝도 하지 않아 더는 앞으로 갈 수가 없게 되자 내려놨다. 이때 석굴 안에서는 경 읽은 소리가 나오고 은은한 향이 밖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굴 안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가 스물두 위의 석상을 좌대에 차례로 모셨다. 석가모니부처님과 좌우에 미륵보살, 제화갈라보살과 열 아홉 분 나한님을 좌대에 모두 모시고 나니 굴 안은 신비한 영기(靈氣)가 가득 찬 것처럼 느껴졌고, 마을 사람들은 일제히 부처님 앞에 엎드려 예경을 올렸다.

그날 밤 꿈에 노스님이 다시 나타나 "그대들의 수고로 장차 무수한 중생들이 복을 빌려 가게 될 것이다. 그대들에게 먼저 복을 줄 것이니 받은 복을 함부로 쓰지 말고 교만하거나 자만심을 버려라. 악하고 삿된 마음을 일으키게 되면 곧 복을 거둬들일 것이니라. 그리고 그대들에게 효성이 지극하고 복덕을 갖춘 이들을 점지할 것이니라"라며 어부들에게 옥동자를 안겨 주고는 계속 말씀을 이어갔다. "사람들은 이 노승을 빈두로존자라고 부른다네. 우리는 석가모니부처님과 두 보살님을 함께 모시고 왔으니 나와 더불어 나머지 열여덟 분은 모두 부처님의 수제자들이라네"라고 말했다. 어부들뿐만 아니라 보문사의 스님들도 같은 꿈을 꾸었다고 한다.

그 후에도 나한전에서는 석굴 법당 앞의 '신기한 약수'와 고려 왕실에서 하사받은 '깨지지 않는 옥 등잔', 가난한 청년이 부처님전 성물들을 훔쳐 밤새 달아났는데 낡이 밝아 쉰 곳이 바로 경내 느티나무 아래서 맴돌았다는 등 신비한 일화들이 많이 일고 있어 신도들 사이에서 신통굴이라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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