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증권 인수인 한화의 투자자보호 책임 물어

▲ 대법원은 고섬 사태의 투자자 피해에 대해 주관사인 한화투자증권의 투자자보호의무를 무겁게 물어 1,2심을 뒤집고 파기환송했다.(이미지=겟티이미지)

[일간투데이 장석진 기자] 분식회계로 상장주관사와 투자자를 속이고 2011년 1월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됐다 2개월 만에 거래정지 된 후 2013년 10월 상장폐지돼 세간을 시끄럽게 했던 중국기업 ‘고섬’이 다시 수면위로 거론되고 있다. 당시 상장 공동주관사를 맡았다 징계를 받아 20억원 과징금에 대한 행정소송을 냈던 한화투자증권이 투자자보호를 제대로 하지 못한 책임이 있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단을 받았다.

대법원은 1부(주심 권순일 대법관)은 27일 한화투자증권이 금융위를 상대로 낸 시정명령 및 과징금 부과처분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이날 판결은 2013년 12월 한화가 소송을 제기한 후 6년 2개월만에 나온 것으로, 증권신고서 내용조작에 대한 주관사의 책임 범위를 정하는 중요 판례로 남을 것으로 예상돼 귀추가 주목된다.

대법원이 밝힌 판시의 취지는 “주관사가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증권신고서 등의 중요사항을 거짓으로 기재한 것 등을 방지하지 못한 때에는 과징금 부과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쟁점은 주관업무를 맡은 증권사가 증권신고서의 중요 사항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몰랐던 것이 ‘중대한 과실’이 될 수 있냐는 부분이다.

한화투자증권의 입장은 “고섬의 상장 과정에서 회계법인의 감사 의견을 따라 진행했을 뿐이고 총액인수에 나선 대표주관사 미래에셋대우와 달리 한화투자증권에 그 분식회계의 책임을 묻는 것은 과도하다”는 주장이다.

2010년대 초반, 한국거래소가 우수한 중국기업의 국내 유치를 통해 국내 투자자들에게 견실한 해외기업들에 대한 투자기회를 마련하고, 거래소의 글로벌화를 지향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국내에 소개된 ‘고섬’은 중국의 섬유업체로 상장을 위해 2010년 12월 증권신고서 제출시 심각한 자금난을 감추기 위해 고의로 분식회계를 저질러 1000억원 이상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을 보유한 것처럼 꾸며 서류를 제출했다. 이로 인해 2100억원 규모의 공모 자금을 부당 취득했고 추후 상장 폐지를 통해 이 자금은 고스란히 투자자들의 피해로 돌아갔었다.

그 결과 상장 주관사를 맡은 당시 대우증권(현 미래에셋대우)과 한화투자증권은 과징금 최대금액인 20억원씩을 각각 부과받는 제재를 받았고, 이에 불복한 한화투자증권과 미래에셋대우가 각각 행정소송에 돌입한 상황이다.

당초 1심 재판부에선 "고섬 증권의 총액인수를 위탁받는 주체는 대우증권이고, 한화투자증권 등은 대우증권과 협의로 이 사건 증권을 배정받는 것에 불과하다"며 한화투자증권의 손을 들어줬었다. 발행인이 아닌 인수인의 책임을 경감시켜준 판시였다. 2심 재판부도 1심 판결이 정당하다며 그대로 인용해 항소를 기각했다.

한 증권사 법무팀장은 “동일 사건이긴 하나 대표주관사와 공동주관사로서 입장이 달랐던 양사는 각각 소송에 돌입하게 됐다”며 “결론적으로 공동주관사인 한화투자증권이 상대적으로 경미한 책임을 물을 것으로 기대됐는데 대법이 파기환송에 나서 남아있는 미래에셋대우 소송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도 있다”고 의견을 피력했다.

증권사 소송 수임경험이 많은 한 로펌 대표변호사는 “통상 1심과 2심의 판단이 뒤짚어지는 사례는 그간 밝혀지지 않은 증거가 나오거나 특별한 사정이 있을 경우”라며 “현실적으로 증권사들이 상장 주관업무를 함에 있어 회계법인이 실사를 맡은 부분까지 투자자보호라는 명목하에 책임을 물은 것은 앞으로 다가올 투자자보호가 결련된 소송에 대한 법원 판단의 방향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불거진 라임사태 등 사모펀드 관련 소송 등에서 약자보호의 원칙을 가진 법원이 투자자와 맞닿아 있는 금융회사의 선관주의의무 강화를 요구할 수 있다는 의견이다.

상장 주관사의 책임과 의무에 대한 규정에 대해 대법원의 입장은 명확해 보인다.

“투자자들이 인수 업무를 맡는 상장 주관사의 평판과 정보를 믿고 시장에 진입하는 만큼 투자자들에 대한 보호 의무 및 책임을 져야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투자자들은 인수인의 평판을 신뢰해 그로부터 투자판단에 필요한 정보를 쉽게 제공받을 수 있기때문에 자본시장법은 인수인이 증권신고서의 직접 작성 주체는 아님에도, 중요 사항을 거짓 기재하거나 누락을 방지하는데 적절한 주의를 기울일 의무 등을 부과하고 있다"며 "원고가 실제로 주관사 업무를 수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과징금 부과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원심은 잘못됐다"고 철퇴를 가했다.

이번 판결을 접한 한 업계 관계자는 “당시 거래소가 증권사들에게 해외 기업 상장 유치를 적극 독려하는 분위기였고, 실사를 맡은 한영회계법인의 역할이 분명 있는 것인데 증권사에게만 모든 책임을 묻는 것은 외부감사인 제도의 도입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결정이라 향후에도 논란이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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