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훈 박사(서경대학교 나노융합공학과 학과장)

작은 차별들이 생활 요소요소에 도사리고 있어 한 쪽엔 우월감으로, 다른 한 쪽엔 상실감으로 지역감정의 골을 깊게 했다.

대입 시험을 마치고 서울역 시청 쪽 끝에 자리 잡은 우체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오후 세시부터 다음 날 아침 7시까지 일하고 6770원 받았다.

시급이 700원도 안 된 셈인데 30년 전 기준으로도 꽤나 낮은 임금이었다. 밤샘 작업에 가까워서 격일제 근무였다.

출근하면 서울 전 지역에서 어마어마하게 쏟아져 들어오는 연말연시 우편낭을 배송될 지역별로 분류하였다가 화물트럭에 싣고, 하행선 열차의 화물칸으로 접근하여 옮겨 싣다 보면 밤 열한 시 너머 막차가 떠났다.

잠시 우체국에 딸린 침실 침대에서 서너 시간 눈을 붙이고 나면 03시 20분새벽 첫차, 어떤 기차든 맨 뒤 한두 량 딸린 화물칸에서 트럭으로 우편낭을 옮기고 산더미처럼 우체국 마당에 쌓인 우편낭들을 서울 각 지역으로 출발하는 화물트럭에 싣고 나면 퇴근이었다.

언제나 직선으로 뚫린 철로를 따라 거침없이 바람이 불었고, 기온도 낮아서 다음 기차가 들어올 때까지 주변에 맘에 드는 객차에 들어가 몸을 녹였다.

아르바이트를 시작할 때 배워야 하는 안전 수칙은 딱 한 가지였다. "잘 들어. 이거 하나만 잊지 마. 기차가 움직이는 반대 방향 다리부터 뛰어내려" 환갑인 조장님 말씀.

폭신한 의자에 방음도 잘 되는 새마을호(KTX가 생기기 전이어서 새마을호가 가장 좋은 기차였다) 객차는 참 쉬기 좋았다. 기존의 구형 기차들은 앞과 뒤에 있는 기관차가 전체 10여 량의 객차를 잡아당겨 구동하는 방식이어서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덜커덩' 한 번 진동이 온 후 움직였다.

그런데 새마을호는 요즘 지하철처럼 객차마다 구동 모터가 달려 있는 전동차 방식이어서 진동 없이 스르륵 움직였다. 그런데 이런 전동차 방식 새마을호는 주로 경부선에 있었고 호남선의 새마을호는 앞과 뒤에 기관차가 붙은 객차식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경부선 새마을호는 진동 없이 움직이기 시작하기에 몸을 녹이다 어두운 창밖의 가로등들이 등 뒤로 움직이면 빨리 뛰어내려야 했다. 가로등이 뒤로 움직일 수 없으니 실은 열차가 수색의 차량기지로 들어가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특히 이 새마을호는 다른 열차에 비해 가속이 빨라서 가로등이 뒤로 움직이기 시작한다고 느껴질 때 바로 뛰어내리지 않으면 상당히 속도가 높아진 객차에서 뛰어내려야 했다. 명심할 것은 '달리는 방향 반대쪽 발부터 뛰어내릴 것'이다.

기차가 움직이는 방향 발부터 뛰어내리면 먼저 땅에 디딘 다리를 뒤따라 내린 반대 쪽 다리가 쳐서 다리뼈가 부러지는 사고가 종종 났다.

수십 년 우편낭 등짐을 진 우리 조장님도 술 좀 드시고 작업 들어갔다가 내리는 시간도 늦었고, 허둥지둥 달리는 방향 발부터 뛰어내리는 실수로 왼쪽 다리가 골절되었다. 경부선 새마을호 타셨다가.

차라리 덜커덩 출발하는 호남선 새마을호가 쉬기에 좋았다. 특급열차에서 다음 화물칸이 들어올 때까지 쉬는 경우는 운이 좋은 경우였다. 우등열차나 완행 비둘기호까지 가리지 않고 앉아 쉬다 보니 조금씩 차이점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경부선 새마을호는 창문도 멋진 타원 유선형이고, 호남선 새마을호 좌석에 없는 종아리 받침도 있었다.

결국 알게 된 사실은 호남선 새마을호의 좌석이 경부선 무궁화호의 좌석과 같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일부러 두 노선의 기차에 차이를 두려 했던 것은 아닌 것 같고, 유선형 새마을호가 경부선부터 먼저 도입되기 시작하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요즘 부산 가는 KTX와 목포 가는 KTX의 인테리어나 좌석 수준에 확실한 차이가 있다면 난리가 났을 것이다.

오래 전 EBS 토익을 담당했던 임귀열 선생님께 영어를 배우면서 들은 가택연금 상태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일화를 현재는 시니어 기자가 된 후배에게 이야기한 적이 있다.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집으로 인터뷰 온 미국기자에게 현재 자신의 상태가 방문하는 사람을 맞이할 수만 있는 상황이라는 설명을 하면서 'entertain'이라는 동사를 사용하였는데, 기자가 그 앞에서 넋을 놓고 "정말 영어 잘 하시는군요" 했다는 내용이다.

대뜸 그 후배가 "고향이 광주세요?"라고 되묻는 것을 들으며 청량리 주변에서 나고 자란 내가 듣기에도 마음이 아픈데 정말 고향이 그 쪽이었으면 얼마나 속상했을까 싶었다.

그 깊어진 골의 긴장감을 효율적으로 조절하여 정치 판세를 이용 할 줄 아는 사람은 훌륭한 정치공학 일군으로 선거판에 중용되기도 했다. 그것을 위해 지역감정의 텐션을 유지하는 것은 정치사회의 기간산업에 가까웠다.

정치판에서는 전가의 보도였던 지역감정이 뜻하지 않게 온 나라에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 문제가 발생하고 나니 전혀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서울과 경기도에서 병상이 모자라는 대구경북 지역 환자를 수용하는 것도, 빛고을 광주에서 달구벌 대구로 마스크를 보내며 달빛동맹을 과시하는 것도 소중하다.

광주에서도 환자를 받기 시작하였으니 남이 아닌 것이다. 5.18 기념재단에서 '5·18 허위사실을 유포한 지만원 등 에게 재판을 통해 받아낸 손해배상금으로 조성한 공익기금'의 일부를 대구에 지원하는 일도 의미 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지원금은 비록 작은 금액일지라도 이승만 독재정권에 맞서 의기로운 대구시민들이 민주화를 외쳤던 2.28 민주운동 60주년을 기념하며 보낸 성금이라고 재단에서 공지한 바 있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지역감정 같은 긴장감 유지수단을 이단 종교에서도 사용한다는 점이다. 기독교의 성서에 나온 14만 4000 명이라는 숫자를 이용하여 신도의 수가 그보다 적으면 그 숫자를 맞추기 위해 포교해야 한다.

또한 그 숫자보다 신도 수가 커지면 그 숫자 안에 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긴장감을 주며, 감염관련 문제가 발생하고 나니 14만 4000 명을 맞추기 위한 환란이라고 규정하여 14만 4000 이라는 숫자를 놓지 않는다.

언론에서 스스로의 양심을 속이고 직접 가짜뉴스를 생산하는 기자가 존재하는 이유도 가짜뉴스로 진영 간 긴장감을 유지하는 것이 가까워 오는 선거에서는 절대선이기 때문이다.

국가적인 재난 상황에서 우리가 느끼는 것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긴장감의 근거들이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을 지배해 왔지만, 그것들이 현 상황을 극복하는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정치권은 이런 국가적인 역경을 헤쳐 나가는데, 선거의 판세 전체를 좌지우지하던 그 중요한 수단이 아무 것도 아니었다는 것을 지금이라도 알아야 한다.

이제 온 나라에 퍼진 감염사태를 극복하고 나면 다시는 현관문 발털개로도 쓸데없는 지역감정이라는 수단이 우리나라에서 사라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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