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16일 개성 남북공동연락소 건물을 폭파한 데 이어 금강산 관광지구와 개성공단, 비무장지대(DMZ) 내 감시초소(GP)에 군부대를 재주둔시키고 서해상 군사훈련도 부활시키겠다고 발표함에 따라 지난 2018년 9월 19일 남북이 합의한 군사합의서가 사실상 무력화 위기에 처했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 근간이라고도 할 수 있는 남북 군사합의서인 만큼 그간의 남북, 북미, 남북미 정상들 간의 비핵화 및 평화구축 노력이 원점으로 되돌리는 형국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아닌 김여정 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군부에 위임했고 북한 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을 통해 군사 전개 견해를 밝혔기 때문이다.

인민군 대변인의 발표에 따르면 북남 군사합의에 따라 비무장지대에서 철수하였던 민경 초소들을 다시 진출·전개하여 전선 경계 근무를 철통같이 강화할 것과 서남해상 전선을 비롯한 전 전선에 배치된 포병부대들의 전투지일 근무를 증강하고 전반적 전선에서 전선경계근무급수를 1호 전투 근무체계로 격상시키며 접경지역 부근에서 정상적인 각종 군사훈련을 재개하게 될 것 등이다.

개성과 금강산 지역은 북한군 주력 부대가 주둔했다가 후방으로 철군하는 대신 남북 경제협력 장으로 남북이 숱한 우여곡절 속에도 발전을 모색해왔지만, 북한 당국의 남북연락사무소 파괴로 남북문제가 중대 기로를 맞이한 셈이다. 거기에다 군대를 재배치하겠다는 북한 군부의 발표는 지난 20년간 남북 정상들이 맺은 선언과 합의마저 일방적으로 무력화시키는 조치이다.

지난 2018년 9월 19일 대한민국 국방부 장관 송영무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인민무역상 조선인민군 대장 노광철은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 상태를 완화하기 위한 포괄적 방안을 담은 '역사적인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 분야 합의서'에 서명하고 교환한 바 있다. 남북은 합의서를 통해 ▲모든 공간에서의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 전면중지 ▲비무장지대를 평화지대로 만들어나가기 위한 군사적 대책 강구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 평화수역 조성 및 안전한 어로 활동 보장▲다양한 분야의 교류협력 및 접촉 왕래 활성화 관련 군사적 보장 ▲상호 군사적 신뢰 구축을 위한 다양한 조치 마련하는 데 합의했다.

남북 군사합의서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발표한 남북정상회담 합의문의 후속 조치였다. 양 정상은 이 선언을 통해 핵 없는 한반도 실현, 연내 종전 선언,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성 설치, 이산가족 상봉 등을 천명하고 이후 구체적인 후속 조치로 남북군사합의서를 맺었었다.

그 상징인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북한 측의 파괴로 사실상 남북 정상 간 맺은 합의 자체도 휴짓조각이 된 셈이다.

지난 4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여동생이자 노동당 제1부부장인 김여정이 탈북민이 살포하는 대북 전단에 대해 강한 불쾌감을 드러내면서 시작된 이번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파국의 길을 예고했다.

4일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김여정이 담화를 통해 남측이 대북 전단에 대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금강산 관광 폐지에 이어 남북 군사합의 파기가 될 수도 있다고 경고 한 바 있지만 우리 측이 이를 간과한 상호 불신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북한은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삐라 살포 등 모든 적대행위를 금지하기로 한 판문점 선언과 군사합의서 조항을 남측이 위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삐라 내용을 보면 북한 권력 핵심층을 모욕하는 지극히 말초적인 사진과 글들을 담고 있다. 북한으로써는 비무장지대 내 어떤 적대적 행위도 상호 금지한다는 점을 들어 삐라 대북살포에 강한 유감을 전달했지만 이를 남측이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난달 31일 탈북민 단체 자유북한운동연합은 남북합의서 자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김포에서 대북 전단 50만 장과 소책자 50권, 1달러 지폐 2000장에 메모리카드 1000개를 대형풍선에 매달아 북한으로 날려 보내는 등 지금까지 끊임없이 북한을 자극하는 삐라 살포를 지속해왔다.

북한으로서는 탈북단체의 잇따른 대북 삐라 살포가 남한 당국의 묵인하에 이루어지고 있다는 의구심을 넘어 체제를 부정하는 행위로 볼 수 있다. 남북 정상 간 맺은 선언이나 합의는 어떤 상황에서도 지켜야 한다는 점에서 이를 사전에 막지 못한 후유증이 현실로 다가온 셈이다. 정부가 대북정책의 큰 틀만 보다 탈북단체들의 이탈행위를 챙기지 못한 위기의 남북 상황이다. 탈북단체들에도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지켜야 할 법을 철저히 준수토록 해야 했지만, 이들의 이탈이 얼마나 큰 후유증을 몰고 왔는지 이제야 깨달았다면 뭔가 허상만 쫓은 대북정책의 허점을 드러냈다고밖에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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