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투데이 최종걸 주필 출간
5년간 전국 사찰 찾아 문화와 역사 기록
통도사·불갑사·봉선사 등 81곳 소개

▲ 우리 문화와 역사가 깃든 산사 순례 '천년 고찰 이야기'. 자료=다우출판

[일간투데이 유경석 기자] 37년 전, '천년 고찰 이야기' 저자 최종걸 일간투데이 주필은 해남 달마산 미황사를 찾는다. 어머니의 연락을 받고서다. 당시 대학 2년을 마치고 군 입대를 위해 고향에 내려간 터였다. 어머니는 저자에게 '외가의 작은할아버지 한 분이 스님으로 계시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어머니의 당부대로 미황사를 찾았고, 새벽마다 향엄 스님의 독경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속가의 가족과, 남북 평화 통일을 기원하는 마지막 발원까지'

천년 고찰 이야기는 '발원(發願)'을 다루고 있다. 발원(發願)의 사전적 의미는 부처에게 소원을 비는 것, 또는 그 소원이다.

봉은사의 월간 사보인 판전(板殿)에 교구 본사의 창건 설화를 써보라는 스님의 권유로 사찰 순례를 시작한 저자는 창건 설화 속에서 당대의 발원과 깨달음을 발견했다. 우리 문화의 속살이 깃들어 있음도 마찬가지. 한 곳의 절을 순례하고 한편의 글을 쓰는 과정은 치유의 시간이 됐다.

승보종찰 송광사로 출가한, 경찰 출신인 친동생의 마음과, 말없이 출가한 그 동생을 찾느라 밤잠을 설치던 어머니의 마음. 군 입대 전 미황사에 머물기를 당부한 어머니와는 상반돼 보이는 그 마음의 끝에서, 발원은 빛나고 있었다. 뜻하지 않게 언론계를 떠나야 했던, 그리고 그 일로 사찰 순례로 나서게 됐던 인연은 친동생과 어머니, 그리고 저자의 발원으로 글속 곳곳에 보물처럼 담겨있다.

회한(悔恨) 많은 조선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극락왕생을 발원하며 세워진 용주사가, 염라대왕도 인정한 제일의 참회 도량인 고운사가, 천상에서 죄를 짓고 축생의 몸을 받았으나 스님의 설법으로 천국으로 환생했다는 백양사가 희로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欲) 칠정(七情)의 삶을 더 깊게 한다.

책 '천년 고찰 이야기'는, 저자 최종걸 주필이 5년간 전국 사찰을 직접 찾아다니며 우리 문화와 역사가 깃든 절 이야기를 담은 사찰 순례기다. 부처님 진신사리가 봉안된 종갓집 통도사부터 마라난타 스님이 백제에 불법을 전한 불갑사, 국내 최초로 대웅전에 '큰 법당'이라는 한글 편액이 걸린 봉선사까지 81곳 천년고찰이 소개돼 있다.

사계절의 내음이 모두 다르듯 사찰 순례에서 발견한 발원 역시 그러하다. 아지랭이 마냥 부드러운 봄내음은 해인사에서, 바위를 탐하는 빗방울에 담긴 여름내음은 단양 구인사가 품었다. 바짝 마른 빨래같은 가을내음은 문수사가, 알싸한 겨울내음은 봉암사 대웅전에서 읽힌다. 발품 판 저자는 글마다 내음을 담았으니 그 유혹을 따름이 어찌 잘못이겠는가.

특히 독자가 마음 내키는 대로, 전체 순서와 상관없이, 읽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아 부담이 없다.

저자 최종걸 주필은 발원으로 "우연한 기회에 이 책을 펼쳐 보게 되면 한번쯤 절에 담긴 발원의 역사와 의미를 찾아보기 바란다"면서 "산행을 하든지 절을 찾아 참선을 하든지 '일단 해보면' 어떤 의미인지 알게 될 것"이라고 조언한다.

출가한 친동생의 뒤를 이어 천년 고찰에 숨은 옛이야기를 쓰게 된 형의 책 '천년 고찰 이야기'를 덮고 나면 "아들의 앞날을 위해 여전히 기도하시는 부모님"이 떠오른다.

수많은 전란과 예기치 못한 화재로 소실될 때마다 다시 일으켜 세우고 복원하는 그 발원들이 절박하고 간절한 마음에서 비롯되었음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종교와 무관하게 모두에게 열려 있는 휴식 공간인 산사 (山寺). 아름다운 풍광과 절 특유의 고즈넉한 분위기 속에 마음을 내려놓아도 좋다. 전국 명산대찰 방문을 구상 중이라면 책 '천년 고찰 이야기'는 적격이다. 절 이름에 담긴 창건 의의와 발원의 내용부터 사찰 안 전각, 탑 등 문화재에 얽힌 이야기에서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까닭이다.

다우출판. 432쪽. 2만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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