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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훈 칼럼] 폭력의 대물림
  • 김종훈 칼럼리스트
  • 승인 2020.07.07 13:33
  •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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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훈 박사(서경대학교 나노융합공학과 학과장)
[일간투데이 김종훈 칼럼리스트] 최근에 팀내 폭행과 가혹행위로 철인 3종 경기 국가대표 선수의 안타까운 소식에 많은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다.

이와 비슷한 학대와 성범죄가 고등학교 기숙사에서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발생한다. 선배가 후배에게, 유명 선수가 미성년자에게, 교수가 학생에게 피해를 주었는데, 오히려 자신의 명예가 훼손되었다고 반박하기도 한다.

가정폭력 같이 폭력의 피해자가 다시 폭력의 가해자가 되는 경우는 ‘분노’가 뼛속 깊이 폭력을 새기는 매개체가 되고, 권력을 가진 폭력의 가해자가 다시 폭력의 가해자를 창출하는 과정에서는 권력의 행사가 주는 ‘쾌락’이 증폭제가 되는 것 같다.

후자의 대표적인 예가 ‘N번방’ 사건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지만 쾌락이 주는 학습효과는 놀라워서 죄책감은 찾아볼 수조차 없다. 그 안에서는 성폭력의 수위가 높아질수록 칭찬을 받게 되어 더 가혹한 학대로 폭주하는 이유가 됐다.

우리가 지금 보는 권력에 의한 폭력은 가슴 아프게도 새롭게 창출된 것이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경우 학습된 것이다. 소중한 가풍이 대물림되듯 폭력 역시 핏줄을 통해, 학연을 통해, 직종을 통해 대물림되지만 ‘대물림된 폭력’이라고 하면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에게 일말이나마 면죄의 기회를 줄 것 같아 ‘학습된’ 것이라고 했다.

386세대의 끝물에 성장한 세대는 거의 모두 ‘구타의 추억’을 가지고 있다. 중학교 때는 학년 별 체력장(체력 테스트)의 가장 힘든 1km 달리기가 끝나고 운동장에 앉아 즐겁게 떠들고 있었는데, 조용히 앉아 있지 않았다고 다른 반 체육 선생님께 맞았다. 단 한 대. 머리를 땅에 박은 원산폭격 상태에서.

“맞고 나면 화장실에 가라.” 는 말의 의미를 몰랐는데, 필드하키배트로 엉덩이를 한 대 맞자 마자 그 말과 미소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단 한 대에 우리는 모두 화장실로 뛰어가서 구토를 해야 했다.

고등학교 때는 한 학년의 마지막 날, 각자 바뀐 반으로 가는 시간에 “1년 동안 나에게 한 대도 안 맞은 녀석 있냐.”는 말씀에 그 단 한 명이라는 이유로 칠판지우개 받침을 잡고 젊은 남자 선생님의 풀스윙을 엉덩이로 받아 내야 했다. 하나 둘 셋. 세 대.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폭력들은 상당 부분 우리나라에서 자취를 감추었고, 은밀한 부분에서 유지되면서도 동시에 드러나는 부분에서는 세련미를 더해 갔다. 가정, 교육, 기업, 정치 거의 모든 분야에서 그랬다.

두 번째 박사학위 논문 심사는 SCI 논문 일곱 편을 게재한 10년 동안의 연구내용으로 준비되었는데 지도교수님을 포함한 다섯 분은 칭찬해 주셨고, 따로 심사하시겠다고 하신 두 분의 반대로 1년 후에 재심사를 받아야 했다.

졸업논문에 인용된 SCI 발표 논문 가운데 소속이 두 번째 학위과정 학과가 아니라 첫 번째 박사학위를 받았던 학과 소속으로 되어 있었던 점을 문제로 지적 받았다. 제가 부족했다고 시인하고 다시 1년 보충실험과 추가 SCI 논문 게재 후에 모든 심사위원 분들의 축복 속에 학위를 받을 수 있었다.

1년 정도 졸업이 연기되었을 때의 절망감은 우리나라 최고 학문기관에서 박사논문심사에 통과하지 못해 다른 세상으로 유명을 달리한 학과 후배의 마음이 무엇인지 이해하기에 충분했다.

그 후로는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내가 가진 힘이 학생들을 힘들게 만들지는 않을까 순간순간 노심초사하며 살게 됐다.

아직도 대학교육의 혁신을 위해서는 적절한 학점과 졸업요건을 만족하면 학부를 졸업하게 되듯 석박사 과정도 학생의 객관적인 연구능력을 증명할 만한 논문 게재나 특허를 바탕으로 졸업할 수 있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수의 학위 부여와 관련된 권한은 조금이라도 남용되는 순간 폭력이 된다. 학생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는지 고민해서 정말 조심스럽게 사용해야 할 권한이다.

교육자가 가진 권한으로도 학생을 살리고 죽일 수 있는데, 직접적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분들이 가진 힘은 정말 조심해서 사용되지 않으면 엄청난 폭력이 된다.

더군다나 공적 권력을 가진 집단이 모이면 상상을 초월하는 파괴력을 가지게 된다. 군인과 군인의 모임인 하나회가 그러했고,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위해 청와대와 교육부 간의 비밀 조직이 그러했다.

교수로서 부끄러운 일이지만 감사원에서 부당한 사업이라고 지적한 4대강 사업을 적극 지지하고 정당화하는데 힘을 보태서 포상을 받은 교육자들도 있었다.

그래서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어떤 권력이라도 주권자인 국민이 컨트롤 할 수 없는 형태로 모이게 되면 합법과 불법의 판단을 떠나 불안감부터 느끼게 된다.

검언유착이 두려운 이유도 같은 맥락에 있다. 산천초목도 숨죽이는 무관 조직, 인권 최후의 보루여야 하는 검찰과 국민 여론을 좌지우지하는 언론이 특정 목적을 위해 협력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정도를 벗어난 권력 간 협력은 즉시 거대한 폭력이 되기 때문이다.

권력을 가진 분들은 못 느끼시겠지만, 평검사 분들도 아니고 검사장님들이 모이는 회의는 정말 엄청난 힘이 결집되는 순간이다. 단지 회의라 할지라도 그 분들의 모임을 두려워하지 않을 국민이 없을 것이다.

언론에서 검사장 회의를 대서특필할 수밖에 없는 이유의 기저에 그 모임이 가진 힘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모여서 의논하신 내용이 낱낱이 드러나지 않아서 더 충분히 두렵다.

왕의 일거수일투족을 겁 없이 기록한 조선왕조실록을 가진 우리나라에서 주권의 주체인 국민들이 알 수 없는 초고위 공무원의 회의 내용이 있다는 것은 역사의 퇴보가 아닐까.

코로나19로 인해 마치 3차 세계대전을 치르고 있는 듯 한 시대다. 진정한 국민 개개인의 행복 수준이 조금이라도 높아지기 위해서는 비상한 힘을 기울여야 할 때다.

이제 국민의 미래를 위해 권력을 내려놓아야 하는 부분이 있다면 스스로 과거에 누렸던 힘을 빼고 국민을 향해 벙긋 멋스럽게 웃어주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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