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특별시장의 죽음은 우리에게 다시 공직자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묻고 있다.

자기관리의 끝판왕이 바로 공직자가 걸어야 할 길이라는 것을 되새기고 있다. 홀로 있을 때마저도 도리에 어긋나지 않게 처신해야 한다는 신독(愼獨)의 자세를 우리는 공직자의 자세로 보고 있다. 닭벼슬도 벼슬이라고 그 직위를 이용해 직권을 남용하는 독직(瀆職)은 끝까지 경계해야 할 자리가 바로 공직의 자리이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1천만 시민의 대표로 연간 예산 40조 원 규모의 시정을 책임지는 서울특별시장의 벼슬은 하기에 따라 대통령을 준비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여비서로부터 성추행 혐의로 고소를 당하는 추문에 휩싸여 극단적 선택을 한 점은 충격 그 자체이다. 우리가 겉으로 아는 박원순 씨는 인권을 변호하는 상징적 인물이었다. 누구도 나서기 힘든 사회적 이슈에 당당히 맞서 약자를 대변하는 인권변호사였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스스로 죽음이라는 극단선 선택을 한 점은 충격적이다. 바로 직전 부산광역시장인 오거돈 씨에 이어 여직원에 의한 고소사태로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근래 들어 여직원과의 불미스러운 사태로 경기도, 충청남도, 부산광역시에 이어 서울특별시까지 단체장들의 이탈행위는 본인뿐만 아니라 해당 도민과 시민에게 충격을 넘어 깊은 허탈감을 안겼다.

시민과 도민을 살펴야 할 막중한 책무를 개인의 이탈행위로 마비시키는 볼썽사나운 오점을 남겼다. 시대에 따라 윤리 기준이 다르다지만 공직자의 윤리 기준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어야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다른 나라 이야기지만 그 좋은 사례 중 하나가 중국 청나라말 무렵 태평천국의 난을 일으켜 청 왕조를 전복시킬뻔한 홍수전을 무력화시킨 재상 증국번을 돌이켜본다. 증국번은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의 한족 재상이었지만 같은 한족 홍수전의 반란을 진압하고 청 왕조의 안녕을 도모했다. 그 과정에서 민생이 피폐해지자 유흥산업을 조성해서 스스로 드나들면서 경제 활성화에 나서면서도 정작 자신은 엄격한 삶을 살아온 공직자의 표상으로 추앙받고 있다. 그는 재상이라는 막중한 책무를 다하면서도 동생과 자기 자식들에게 편지로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구구절절이 지도편달한 소위 증극번가서(曾國藩家書)를 남길 만큼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에게도 공직자의 가족답게 처신하기를 당부했다.

우리 사회는 지금 더 투명한 세상을 요구하고 있다. 누구도 그 투명으로부터 예외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요구받고 있다. 또한, 그 투명은 바로 평등사회, 법 앞에 누구나 평등하다는 전제를 담고 있다. 직위의 높낮이는 있을 수 있지만, 그 직위가 독직을 행사하는 권한을 의미하지 않는다.

잊을만하면 터지는 여직원과의 추문으로 언제까지 도정과 시정이 흐트러지는 사태를 지켜봐야 하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죽은 자에 대한 애도가 먼저라는 점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박원순 시장의 극단적 선택은 참으로 우리 사회의 이중성을 극단적으로 보여줬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이 더하다.

다른 사건보다 성희롱 관련에 대해 누구보다 이건 아니라고 변론에 나섰던 박원순 변호사였기 때문이다. 그런 박 시장이 전직 비서로부터 성추행 혐의로 형사 고소당하자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았나 하는 점이다. 시장실에서 근무한 전직 비서는 지난 8일 경찰에서 고소인 조사까지 받았다고 한다. 아이러니라는 노랫말이 그래서 상징하는 바가 크다. 겉과 속이 다른 이중성은 결국 사상누각이라는 점을 또다시 보여줬다.

바로 눈앞에서 보고도 나만은 괜찮겠다고 착각 속에 사는 공직자들에게 이번 박원순 시장의 극단적 선택은 비극적인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경계이다. 그가 평생을 쌓아 올린 모든 공든 탑이 와르르 무너지는 어처구니없는 이탈을 그래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공직의 책무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엄정하고 공명정대해야 한다. 공직자들이 경계해야 할 것은 독직이다. 그들이 마지막 날까지 처신해야 할 자세는 바로 신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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