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는 간헐적이어도 폭력적 구조 흔드는 동력"
"종교적 성찰로 폭력문화를 평화의 문화로 바꿔야"
"열린 마음과 겸손한 자세로 경청하고 대화해야"
[일간투데이 김상덕 칼럼리스트]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종교'와 '평화'는 어쩌면 가장 어색한 조합처럼 느껴질 수 있다. 모든 종교는 평화를 지향하고 실천하는가. 언뜻 당연한 명제와도 같은 질문에 선뜻 답하기 어려운 이유는 현실 속 종교의 모습이 되레 평화와 더 멀어 보이기 때문이다.
평화란 눈에 보이지 않고 실재하지 않는 개념에 가깝다. 반면에 폭력은 우리 앞에 생생하게 목격되는 현실이다. 개인적이고 일상적인 관계에서도 일어나고 집단과 국가 사이에서도 발생한다. 물리적인 폭력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알게 모르게 벌어지는 구조적이고 문화적인 폭력들도 존재한다.
이러한 폭력과 갈등의 원인은 너무도 다양하고 복잡하다. 너무 많은 문제들이 얽히고 설켜 있어서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모르는 실타래와 같다. 그래서 평화를 연구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은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대화를 통해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자신을 돌아보며 공통점을 발견하고 공존의 길을 모색한다.
대화의 중요성은 배우고자 하는 자세에 있다. 나의 입장만을 고수하는 독선적인 자세가 아니라 열린 마음과 겸손한 자세로 서로를 이해하고 이를 통해 자신을 더 알아가게 되는 과정, 그 자체가 중요하다. 그러니 진정한 대화란 종교적인 수행과 같다. 사실 종교가 자신들의 종교적 수행으로서의 대화를 유지하고 실천했다면 이 세상은 좀 더 평화로웠을지 모른다.
최근 출간된 '지속적 폭력과 간헐적 평화: 그 역전을 위한 종교적 대화'(모시는사람들 2020)는 평화에 대한 진지하고도 열린 대화의 산물이다. 이 책은 2015년 겨울, 종교와 평화연구를 위한 모임을 뜻하는 '레페스포럼'(REligion + PEace + Studies)이 만들어지고 그 이듬해부터 약 3년 동안 10번에 걸친 대화모임에서 다뤄진 이야기들을 글로 담아냈다. 종교와 평화라는 주제를 가지고 3년이란 짧지 않은 기간 동안 모임을 이어왔다는 점과 그것이 한 권의 책으로 나왔다는 점만으로 쉽고 빠르게 쓰여지는 여느 책들과는 차별점이 있다.
한 사람의 생각을 깊게 따라가며 읽는 것도 유익하지만 총 22명 포럼 참가자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읽는 즐거움도 색다르다. 이들은 종교적 배경도, 연구하는 분야도 다르다. 그러나 평화를 고민하고 열린 자세로 대화의 자리에 참여했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책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한 번에 하나의 주제에 대해 토론하는 방식으로, 총 10가지 주제를 다루고 있다. 각 장마다 문제제기 형식의 글이 있고 토론이 뒤를 잇는다. 주제는 국가·종교·비폭력·이슬람·구조·정체성과 차별 등 평화와 관련해 꼭 필요하지만 좀처럼 다루지 않았던 것들이다.
가볍지 않은 주제를 친절하게 소개한다는 점은 이 책의 또 다른 미덕이다. 평화에 대한 깊고 진지한 논의를 비교적 대중들의 눈높이에서 쉽게 접근하도록 한다. 글 대부분이 대화와 토론의 형식으로 쓰여서 독자들이 읽기에 큰 부담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그 행간에 놓치지 말아야 할 의미들이 숨어 있어서 쉽게 삼킬 것이 아니라 천천히 씹고 음미해야 할지도 모른다.
'지속적 폭력과 간헐적 평화'라는 책 제목은 레페스포럼이 지향하는 바를 잘 보여준다. 평화에 대한 이해는 우리가 당면한 다양하고 복잡한 폭력의 문제를 살펴보는 것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노르웨이 출신의 세계적인 평화학자 요한 갈퉁(Johan Galtung)이 주장하듯, 폭력이란 그리 단순하지 않으며 복잡하고 다양하며 구조화돼 있다. 구조적인 폭력이 토양처럼 한 사회를 지탱하는 한 개인적·집단적·사회적 차원의 폭력은 계속해서 발생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구조적 폭력의 가장 깊은 곳에는 우리의 의식과 같은 정신문화 혹은 사회문화가 자리한다. 종교란 결국 개인과 사회의 정신문화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다시 말해 종교적 성찰이 없이는 구조적 폭력을 해결하고 평화로운 사회로 전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종교가 유일한 해답이라는 것이 아니다. 종교를 포함한 사회 구조가 폭력의 문화에서 평화의 문화로 전환되지 않는 한 폭력은 지속될 것을 의미한다. 그만큼 폭력은 우리 가까이 내재화돼 있고 일상화돼 있다.
'종교가 폭력을 조장하는 것은 아닐까'. 출판 직전 추가된 10장을 제외하면, 실제 마지막 장이었던 9장의 주제는 어쩌면 이 책이 씨름하고자 했던 가장 핵심적인 질문이자 결론이다. 구조적이고 지속적인 폭력 속에서 종교의 역할을 '간헐적 평화'로 표현한다.
이 포럼을 기획한 이찬수는 서문에서 그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는 "평화가 간헐적이라고 해서 불연속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 불연속적 간헐성이 견고해 보이는 폭력적 구조를 근저에서 흔드는 심층적 동력이라는 점에서 인류의 평화 운동이 끊어져 본 적도 없다. 현실이 아무리 엄혹해도 그것을 넘어서는 세계에 대한 상상조차 사라진 적은 없다. 표층적으로는 불연속적인 듯 해도 심층적으로는 연속적이다"고 말하며 인류와 종교에 대한 희망을 제시한다.
이 책 하나로 종교와 평화에 대해 모든 것을 다루거나 바꿀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적 폭력과 간헐적 평화'의 출간이 반가운 이유는 평화를 위한 우리의 노력이 간헐적이나마 지속되고 있음을 우리의 두 손으로 만질 수 있고 두 눈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바랄 것은 오직 하나, 이런 대화모임이 많아지고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 김상덕 박사는 미국 보스턴대학교와 에모리대학교에서 각각 목회학 석사와 신학 석사를 마치고 영국 에딘버러대학교에서 언론사진과 평화학을 주제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의 연구실장으로 재직 중이며 명지대학교 객원교수로 출강하고 있다. 저서로는 'The Role of Religion in Peacebuilding'(Jessica Kingsley, 2017)과 '평화의 신학: 한반도에서 신학으로 평화만들기'(동연 2019), '더불어 함께하는 평화교육'(동연 2020) 등의 공저가 있다.
김상덕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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