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은 부도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을 재건할 참모가 필요했다. 그가 수소문한 이는 김재익 재무부 관료였다. 그를 경제수석으로 발탁하기 위해서 불렀다. 김재익 박사는 전두환에게 ‘각하 제가 생각하는 경제정책은 인기도 없고 또 기존 세력들이 환영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이 일을 해내야만 합니다. 그래도 저를 쓰시겠습니까’라고 하자 전두환은 ‘그렇다’라고 했다고 한다. 이에 김재익 박사는 ‘그렇다면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제가 드리는 조언대로 정책을 추진하시려면 엄청난 저항에 부딪힐 텐데 그래도 끝까지 제 말을 들어주실 수 있겠습니까.’라고 재차 다짐을 받았다. 전두환은 ‘여러 말 할 것 없어.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라며 경제수석으로 발탁했다. 이 말은 두고두고 회자했다.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

김재익 수석은 전두환 정권 출범과 함께 1983년 10월 9일 미얀마(당시 버마) 아웅산 테러 사태로 순직하기 직전까지 국가 부도 위기 속에서 성장·물가·국제수지라는 3마리 토끼를 잡아 전두환 정권을 적어도 경제 부분만큼 안정시키는데 이바지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경제난국을 돌파하는데 정권보단 국민을 위해 헌신한 경제관료로 남아있다.

그로부터 40여 년 후 2020년 대한민국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이라는 전대미문의 바이러스로 인해 국가는 휘청거림 속에서도 방역지침이라는 틀에 힘든 시기를 함께 하고 있다. 그 중심에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이 무대에 올라 진두지휘하고 있다. 마치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를 연상케 하는 것처럼, 방역은 당신이 대통령이야를 데자뷔 시킨다. 지도자는 한번 발탁하면 끝까지 믿고 책임을 다하도록 격려하는 배짱이 있어야 함을 두 사례를 통해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이 지난 7일 코로나 19와 겨울철 독감을 동시에 차단하기 위한 대책을 내놓는 발표를 보면서 든 단상이다. 코로나 19와 겨울철 독감 증상이 비슷하므로 이를 신속하게 분별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을 현재 고려하고 있다면서 일단 8일부터 독감백신을 1천900만 명에게 무료접종하겠다고 밝혔다.

방역 당국과 일사불란한 공조하에서 국민 방역의 전면에 나선 정은경 본부장의 목소리는 늘 차분하면서도 저런 관료라면 믿을 수 있겠구나 하는 무한 신뢰를 할 만한 어조였다. 국민보다 한발 먼저 국민의 기대를 읽고 나서 이렇게 하자고 하는 모습에서 K-방역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낸 장본인이다. 5000만 대한민국 국민 37% 수준에 해당하는 1천900만 명에게 독감백신을 무료로 접종하겠다고 한다. 우선 어린 아동에 이어 임신부 그리고 62세 이상 노년층에게 무료접종을 하고 이후 코로나 19와 독감 여부를 분별할 수 있는 진단 장비를 내놓겠다는 일정을 밝혔다. 코로나 19와 장마 그리고 태풍으로 이어지는 재난에 국민 피로도가 갈수록 높아가고 있지만, 국민에게 위로가 되는 한마디는 다시 일어설 용기를 준다.

정 본부장을 발탁한 정권은 문재인 정부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과 함께 정 본부장을 두 단계 직급을 올려서 발탁인사를 단행했다. 그전까지는 정은경 본부장의 존재를 아는 국민은 없었다. 그것도 박근혜 정부 때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이라는 바이러스로 원인도 모른 체 초기에 39명이 사망한 사태에 당시 질병 관리를 담당했던 보건복지부 담당자들에 대한 책임을 물어 징계를 받았던 이를 발탁해서 중책을 맡겼다. 그 징계로 이를 견디지 못하고 줄줄이 옷을 벗었지만 정 본부장은 사태 경과에 대해 원인이 무엇이었고 무엇을 어떻게 대응하면 좋을지를 절치부심했다고 한다. 그 절치부심이 코로나 19와 마주치는 순간, 무대 전면에 나서 대응 수칙을 밝히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김재익이 그랬던 것처럼 정은경도 무덤덤하게 경제와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고 대응했다. 우리는 이런 관료 이런 공무원을 신뢰하는 국민이다.

국민 편에서 묵묵히 각자 위치에서 헌신하고 있는 또 다른 김재익과 정은경이 그나마 코로나 19로 지쳐가고 있는 국민에게 힘을 싣고 있다.


저작권자 © 일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