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5조8천억 원. 내년도 예산안이다. 사상 최대규모로 편성한 내년 나라 살림살이에 투입해야 할 돈이다. 국민과 기업들이 낸 세금도 부족해서 적자 국채까지 발행해서 마련한 예산이다.

국회는 정부가 제출한 555조8천억 원의 예산을 2일 예산안 공청회를 시작으로 4∼5일 이틀간 종합정책질의, 9∼10일 경제부처 부별 심사, 11∼12일 비경제부처 심사를 진행한 뒤 16일에는 예산안조정소위에서 사업별 감액·증액 심사로 이어진다. 국회는 매년 예산안을 놓고 창과 방패로 때로는 쪽지로 예산안 고수와 삭감을 줄다리기해왔다. 지난해 513조5천억 원에 이어 42조 원 규모가 증액된 555조8천억 원이지만 올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으로 인해 추가경정예산(추경)으로 투입된 580조 원 규모보다는 작은 규모다.

하지만 추경은 여유분을 투입한 게 아니다. 모두 국가가 보증해서 발행한 국채를 통해 투입된 것이다. 내년 예산도 90조 원의 국채를 발행해서 사상 최대규모인 555조8천억 원을 마련한 것이다.

쓸데는 많은데 세금부족분만큼은 적자 국채를 발행해서 쓴다는 의미다. 코로나 19로 경기가 후퇴하는데 이를 막기 위해 빚을 내서 선순환시키겠다는 소위 ‘한국형 뉴딜’까지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투입해야 한다는 소리다. 올해도 그렇지만 내년에도 예기치 않은 사태가 돌발 시에는 추경도 불가피할 수 있다. 비단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니지만, 예산의 적정성에 대해서는 늘 고민해야 한다. 정착 투입해야 할 분야가 소외되고 정권의 입맛에 맞는 분야에 선심성으로 편성되는 경우가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간접자본(SOC) 확충을 빌미로 제 기능을 갖추지 못한 채 폐허나 다름없는 시설물들이 전국 곳곳에서 전시용으로 세워지는데 예산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으로 투입되는 예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를 따지는 게 국회 몫이다. 하지만 국회 역시 선심성 예산을 마다할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다. 지역 민심을 챙겨야 할 국회다 보니 정부 원안에다 본인들 지역구 챙기는데 투입하는 예산을 추가하기까지 한다. 그 예산 챙기기 시절이 시작된 셈이다.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확장재정 기조로 짜인 점을 내세우며 원안 고수하겠다고 하고 있고, 제1야당인 국민의힘 당은 한국판 뉴딜 관련 예산은 손을 봐야겠다고 벼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21조3천억 원 규모인 한국판 뉴딜 관련 사업비의 경우 포스트 코로나 시대 대응을 위한 미래성장전략 차원에서 당력을 모아 통과시키겠다는 방침이다. 반면 국민의힘 당은 한국형 뉴딜 예산 부분에서 50%를 가지치기하겠다는 전략이다. 원안 고수와 삭감을 놓고 줄다리기가 있겠지만 원안이 미래 성장을 위한 마중물인지를 먼저 챙겨보는 게 국회가 해야 할 막중한 책무이다.

매년 예산안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꼭 필요하다 해서 마련한 만큼 삭감할 이유가 없지만, 그 적정성을 꼼꼼히 따져야 할 필요는 있다. 거둬들이는 세수보다 투입해야 할 예산이 매년 증가하는 비대칭 예산으로 나라 살림을 꾸려가는 것은 올바른 재정정책이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산안 통과 법정시한이 12월 2일이라 슈퍼 예산을 심의하기에는 다소 빠듯한 일정이지만 그 기한 내에 여야를 막론하고 부족한 부분은 보충하고 선심성은 과감히 줄이는 데 집중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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