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훈 박사(서경대학교 나노융합공학과 학과장)
[일간투데이 김종훈 칼럼리스트] 세상에는 상식이나 양심에서 살짝 벗어난 일에 대한 압력을 행사할 수 있는 수준보다 어마어마하게 큰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한다.

최근에는 사회 시스템이 사회적 약자라 판단되는 사람에게 부여하는 권력도 만만치 않아서 한 학생의 거짓 성추행 대자보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결백한 교수분도 있다.

약자인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한 사회적 장치를 잘못 사용해도 어마어마한 파급효과를 가지게 됐다. 권력 사용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실험 결과 분석에 가장 크게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편견이다. 이 편견은 실험 설계를 하는 과정에서 ‘내 갈고 닦은 전공지식을 바탕으로 예측해 볼 때 이렇게 조건을 바꾸면 저렇게 더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라고 예측이나 예상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정당성을 인정받는다.

실험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온도가 높으면 반응이 더 잘 일어나겠지’, ‘산소가 많으면 목표치에 더 가까운 물질이 나올 거야.’라고 씨를 뿌린 바램은 결과를 분석하는 과정에 돌입하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태세를 갖춘다.

여기에 지도하시는 분께서 ‘역시 내 예측이 맞았군’ 해주신다면 편견의 총합이 그렇게 결과 쪽으로 훨훨 날아가게 되는 일이 어느 누구의 양심의 거리낌 없이 발생하게 되는 일이 종종 있다.

실험계획법에서는 이것을 배제하기 위하여 실험 설계 단계와 실험 진행 단계, 분석 단계에 이르기까지 완벽한 무작위화(Random화)를 달성하여 통계처리 하는 것을 실험의 기본으로 삼는다.

특히 1년에 수십 조 원의 개발비를 사용하는 반도체 회사에서 실험계획법의 중요성이 강조되는데, 사람이 보기에 어떠할 것 같다고 예측하는 것이 전혀 나쁜 일은 아니지만 양산 단계에서 이런 예측들은 되돌이킬 수 없는 손해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치우친 마음이 초래하는 악영향을 초고가 통계 프로그램에서 제공하는 실험계획법으로 막는다. 한참 실험계획법 연수자 교육을 받을 때 1500억 원의 계정 사용료를 지불하는 회사에서 2조 원에 달하는 원가 절감 효과를 보고 있다고 배웠다.

제조회사에서는 소프트웨어를 통해 기울어진 마음의 영향을 배제할 수 있지만, 그 외의 거의 모든 개인과 사회기관은 그 영향권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여러 상황을 판단할 수 있는 지식과 판단력을 가진 분이라고 생각하는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경우도 그러하다.
훗날 잘못된 판단이었다고 언급한 바 있지만 황우석 사태 한 가운데에서는 날카로운 취재로 상황을 파헤친 언론을 비난했다.

정치논리가 개입될 수밖에 없는 정치인의 자리에 서 있으면 그로 인해 생겨나는 관점의 기울어짐 때문에 온전히 올바른 판단을 하기 쉽지 않았던 것이라 짐작한다.

이렇게 극히 명철하기로 손꼽히는 분들도 상황이 주는 아주 옅은 색의 색안경 만으로도 정확한 판단을 하기 어렵게 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다국적 대기업과 공인된 판단력을 가지신 분들도 살짝 치우친 마음에서 자유롭기 어려운데, 우리 같은 일반인들은 거기에서 자유롭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문제는 힘없는 사람들이 가진 그러한 잔약함을 권력을 가진 분들이 이해하고 이용할 때 벌어진다.

지도교수 입장에서는 여러 모로 박사를 마치기에 부족해 보여 논문 심사장에서 한두 학기 다음 심사를 미루면, 학생은 전혀 올 것 같지 않은 다음 학기의 논문 심사일 앞에서 죽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마련이다.

단지 죽도록 힘든 것이 아니라 실제로 죽고 싶어 진다. 두 번째 박사학위 논문의 뼈대가 되는 열한 편의 SCI 게재 논문 가운데 한 편, 첫 번째 박사학위를 받은 학과의 연구비로 진행된 논문에 첫 번째 박사학위 소속으로 논문을 게재한 것 때문에 1년 논문심사 연기를 받아 본 경험에 비추어 보면 그렇다.

그나마 사회생활 좀 했다고, 상황을 이해해서 “정말 제 불찰이었습니다. 더 올바른 실적을 낸 후에 이 논문은 참고문헌에서 삭제하고 다시 논문심사를 신청하겠습니다” 라고 말 한 것이 오히려 나를 덜 죽고 싶게 만들었다.

권력을 가진 분들이 내가 평소에 수용할 수 있는 범위나 거기에서 살짝 벗어난 부분의 범위 내에서 부당한 일을 시키면 우리는 대부분 수용하며 살아 낸다.

직장 상사, 학위 심사권을 가진 교수들, 문화예술계의 각종 심사를 맡은 위원들, 여러 모로 부족한 정신세계를 가진 신도들과 중간 성직자들을 이끄는 종교 지도자들, 국회의원과 판검사를 포함한 고위 공직자들…

우리 사회가 올바르게 유지되기 위해 오랜 기간 검증을 거쳐 수립된 권력이지만, 극히 소수에 의해 잘못되었다고 말하기도 미안할 정도만 남용되어도 사람의 삶을 파괴하고 목숨을 빼앗는데까지 이른다는 점을 잊으면 안 된다.

약자는 후자인 ‘결과’를 근거로 판단하고 강자는 전자인 남용을 판단의 근거로 삼는다. 결국 처벌과 관련된 판단은 남용 여부로 결정되게 된다.

따라서 남용의 정도가 미약한 오용이라 말할 수 있는 수준이라면 비슷한 큰 힘을 가진 세력 끼리는 처벌하지도 처벌받지도 않는다.

이런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막으려면 권력을 가진 분들의 기울어진 마음이 표출되는 것을 막는 열린 환경이 필요하다.

학생을 면담할 때 교수연구실 문을 열어 놓는 것부터 거룩한 종교시설 곳곳에 감시카메라를 설치하는 것, 헌법에 명시된 체포 또는 구속 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폭 넓게 지원하는 것 등이다.

비밀스런 정보기관에 의해 조사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납득할 만한 투명성을 가질 의무가 있는 수사처다.

지금 당장 지켜보는 사람이 없다 하더라도 추후에 권력에 의해 부당한 불이익을 받는 국민이 생기면 처벌할 방법이 공수처 설치일 것이다.

권력을 향한 새로운 권력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기울어지면 많은 사람을 다치게 하는 권력 오용의 견제기구로 굳건히 자리잡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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