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훈 박사(서경대학교 나노융합공학과 학과장)
[일간투데이 김종훈 칼럼리스트] 지난달 정부가 청년 주거지원 정책의 하나로 호텔을 개조해 임대주택을 공급하겠다고 발표하자, 일부 언론과 야당을 비롯한 정치권에서 정부의 이런 주택정책을 ‘호텔 거지’라고 신조어를 만들어 비하하는 등 조롱하며 비판하고 나섰다.

다른 언론 지상에서 공유거주 공간이라는 기본은 배제하고 일반 주택과 비교에서 결여된 부분 위주로 비하되기만 한 ‘안암생활’ 이라는 호텔전세 공간이다.

그나마 살만 한 곳이라는 실제 거주 청년들의 의견을 붙인 정도가 호의적인 기사였다.

금수저 리그에서 자라난 분들 눈에 ‘호텔거지’로 보였다면 그렇게 본 자신의 눈을 더 부끄러워해야 하지 않을까? 물론 이런 공유 주거 공간이 현재 발생하고 있는 전세 문제 자체를 해결할 수는 없다.

어떤 상황에서도 비판적인 시선을 갖는 것은 좋지만 우리 청년들이 입주할 공간, 미래를 예비할 자리는 따뜻한 눈으로 보아주었으면 좋겠다.

누군가가 호텔거지라고 부른 우리 청년들이 사는 곳이고, 그 곳에 사는 우리 젊은이들은 ‘거지’도 아니고, 그 곳은 거주환경이 나쁘다고 비아냥댈 일말의 이유도 없는 곳이다.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해 20분 거리 안에 부품/가공/인쇄/포장/문화/먹거리/산책의 모든 것이 제공되는데 ‘주차할 곳이 없다’고 비난할 수 있을까?

주거 사다리 정책에 대하여 비난하는 입장에서 크기와 위치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는 의견을 가진 분도 최소한 안암생활과 같이 입지가 좋은 청년 공유주택을 나무랄 수 없을 것 같다.

그 근처, 훨씬 열악한 환경의 좁디좁은 하숙방과 고시원에서 뜨거운 젊은 날을 보내고 이제는 각 정부 출연연구소 연구단장, 첨단기업 임원, 원자력 발전소 이사관, 솔직한 언론인, 올곧은 법조인이 된 사람들이 즐비하다.

이곳에서 삼천 원 삼선 슬리퍼를 끌고 나오면 횡단보도 둘을 걸어 내려와 서울시 3대 해장국집 중 하나라 손꼽히는 대X집 선지해장국을 먹을 수 있다.

길 건너 맞은 편 7천원 수제 두부집 메뉴가 주머니 가벼운 청년에게 무거운 메뉴라면 셋이서 1만 5천원에 라볶이와 김밥, 순대와 각종 분식을 행복할 때까지 먹을 수 있는 떠오르는 새 분식집, X공김밥이 있다.

여기서 지나는 학생에게 ‘또랑’이 어디예요? 물으면 근처 캠퍼스 학생들만 알고 있는 작은 구내매점에 들러 커피를 사서 4계절 아름다운 정조대왕 원빈 홍씨의 인명원터인 애기능 비탈에서 시간을 녹여낼 수도 있다.

이곳에서 나오면 100미터 거리에 북한산 국립공원 입구까지 갈 수 있는 안암천 산책로에 들어설 수 있다. 물론 이 산책로 주변에도 80년 넘은 XX추탕부터 보문동, 돈암동을 관통하는 맛집들이 즐비하다.

단지 더 걷기를 원한다면 낙산 성곽길과 성북동 옛길까지 갈 수 있다. 이곳 근처에서 두 번의 박사과정 20년과 강사생활 10여년을 보낸 필자 머리에는 정말 소중한 카페와 맛집이 50곳 이상 스친다.

지금도 필자가 ‘보스’라고 부르는 미국인 의료 컨설턴트 선배가 출국 시간 8시간을 남긴 상황에서 “가장 짧은 시간 내에 한국을 경험하고 나갈 수 있는 곳 한 곳만 찍어보라.” 부탁하여 추천한 신설동 풍물시장과 동묘-황학동 시장도 이곳에서 산책 삼아 가기 충분한 거리에 있다.

후에 그 선배는 “한국의 팬텀마켓 풍물시장이라는 곳은 내가 전 세계를 돌아다녀 본 곳 중 가장 재미있는 곳이었다. 엔틱 골동품부터 모던, 물건들과 음식, 막걸리와 소주... 다이내믹하면서도 극히 전통적인 한국이라는 나라를 깊게 느낄 수 있는 놀라운 곳이다”고 평했다.

스탠포드로 유학 간 선배가 가장 부러워하던 세운상가도, 언제나 스타일리시 한 상점과 사람들로 넘쳐나는 인사동도 이곳에서 버스를 타면 20분 거리다. 가장 많은 지하철 노선이 겹치는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은 인사동까지 가는 시간의 반이면 갈 수 있다.

이곳에서는 쭈꾸미로 유명한 용두동도 지척인데, 그 중간에는 청계천-성수동-용두동으로 꼽히는 작은 머신샾들이 즐비해서 사부작사부작 무언가 만들고 싶은 젊은이들이 꿈을 펼치기에 정말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다.

제품이 만들어지면 마무리 과정에서 꼭 챙겨야 하는 포장부터 각종 인쇄물까지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산시장도 이곳 문 앞에서 144번 버스를 타면 20분 거리다. 방산시장에서 바쁜 일을 해결하고 나면 광장시장으로 건너와 빈대떡, 마약김밥, 육회, 애와 곤 생선 내장탕을 즐기는 것은 덤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곳의 지하에 있던 작고 맛나던 샐러드-치킨 부페가 공동주택 요건을 맞추기 위해 공유주방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전세는 부동산 시장의 메인스트림과 관련된 것이고, 청년 공유주택은 되갚아야 하는 학자금 융자와 낮은 임금으로 사회에 진입하여 미래를 개척해야 하는 우리의 미래를 위한 정책이므로, 이런 정책이 시장 상황을 바꾸지 못하였다는 점을 들어 비난할 수는 없는 일이다.

신설학과의 첫 졸업생들이 배출되는 시점에 학과장이 되어서 학생들이 졸업하면서 갖게 되는 부담들을 직접 보고, 특히 지방에서 유학 온 졸업생들의 상황을 알고 나서 청년 공유주택 같은 제도가 꼭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젊었다면 주저 없이 입주하였을 이곳은 어딜까? 수년 전부터 논의되고 실행되고 있는 주거 사다리 개념은 젊을수록 주거공간의 크기 자체보다 위치가 중요하고, 가족 구성원이 늘어날수록 주거공간의 넓이가 중요해지는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

공학을 가르치며 강북의 작은 아파트에 사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부동산 자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부동산 값이 올라도 정책 실패, 내려도 시장 붕괴라고 욕먹는 것처럼 보인다. 부동산 정책에 대해 판단할 수준도 안 된다.

한국은 지금 코로나 방역과 놀라운 문화역량으로 국위를 떨치고 있다 해도 만일 다른 나라에서 월거지, 전거지, 빌거지, 엘사,,, 조금이라도 부동산 가격이 차이가 나면 해당 아파트 단지의 머리글자를 붙여 X거지, Y거지,,, 라 부른다는 사실을 알면 우리의 경쟁력과 품격은 땅바닥에 떨어지고 말 것이다.

굳이 언론까지 나서서 그런 단어로 정책을 비난하여 천박한 밑천을 스스로 드러내며 우리의 청년들을 상처받게 할 이유는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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