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아온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소위 ‘내로남불’이라는 표현도 시대가 바뀌니 '아시타비(我是他非)'로 변했다. 대학가 교수들이 올 한해 우리 사회를 표현하는 사자성어로 '아시타비(我是他非)’를 뽑았다. 대학신문이 매년 연말을 즈음해 한해를 돌아보는 압축적인 뜻을 사자성어로 뽑아서 전국 대학교수들에게 설문을 통해 가장 많이 공감을 얻은 것을 공개하는데 올해는 “나는 옳고 상대는 틀렸다”라는 아시타비였다.

지난 1990년대 정치권에서 쓰이던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이중잣대식 정치 행위를 비판하는 데 쓰이다가 '내로남불'로 축약되더니 올해 다시 ‘아시타비’로 탈바꿈했다. 사자성어에도 없는 신조어란다. 아시타비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선택을 받은 사자성어는 '후안무치'(厚顔無恥)였다. 낯이 두꺼워 뻔뻔하고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뜻이다. 아시타비와 다르지 않다. 아시타비나 후안무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대유행 상황의 어려움을 빗댄 '첩첩산중'(疊疊山中)보다 더 많은 공감을 받았다는 점에서 올해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비단 우리뿐만 아닌 듯하다. 국제질서에서도 여지없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코로나 19를 둘러싼 미·중 간 책임 공방에서도 코로나 19에 대응하는 국가 간에서도 공동대응보다는 책임 떠넘기기로 대유행을 초래했다.

정태연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는 아시타비를 추천한 이유로 "소위 먹물깨나 먹고 방귀깨나 뀌는 사람들의 어휘 속에서 자신에 대한 반성이나 성찰, 상대를 위한 건설적 지혜와 따뜻한 충고, 그리고 상생의 소망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을 들었다. 교수들은 어느 사회든 나름의 갈등이 있지만, 올 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과 같은 국가적 위기 속에서도 정치·사회적으로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 아시타비의 자세만이 두드러졌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코로나 19로 인해 올해만큼이나 사상 초유라는 용어들이 범람한 예는 없을 것이다.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바이러스와의 전쟁과도 같은 상황에서 정부 방역지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목숨을 건 종교집회와 반정부 투쟁도 이와 다르지 않다. 국회에서도 국정원법 전부 개정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개정안, 남북관계발전법 일명 대북전단금지법을 둘러싸고 이를 저지하기 위해 합법적 의사진행 발언을 통해 표결을 지연시키는 필리버스터도 등장했지만 국회선진화법에 따라 필리버스터 강제 종결로 정치권은 극한 대결을 그나마 피했다. 민심이야 사람 마음을 반영하는 것이라 늘 변한다지만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한 실패의 화풀이를 독재정권이라 외치는 것을 두고 아시타비는 딱 어울리는 표현이다. 코로나 19가 창궐 중에도 정부의 방역지침을 어겨가며 밀집 집회를 고집한 교회가 종교탄압이라는 목소리를 높이는 것 또한 후안무치하다. 그 밀집 집회 여파로 이미 우리는 무증상 전파로 인해 생업이 봉쇄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서로서로 경계해야 하는 그리고 악수 대신에 주먹으로 인사해야 하는 코로나 19시대 아시타비는 안타까운 우리의 일그러진 자화상이다.

가장 정의로워야할 검찰이 직속 상관과 그 주변을 이 잡듯 뒤지는 과정에서 밝혀진 검찰의 아시타비는 결국 공수처를 출범시키는 발판이 됐다. 가장 공정해야 할 시민단체 곳곳에서도 얼룩진 한해였다. 그러고도 책임지는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같은 사안에 대해 나는 옳고 너는 옳지 않다는 태도는 동전의 양면일 수 있지만, 그 입장이 바뀔때마다 바뀌는 것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 공수처법을 둘러싸고 여당 일 때와 야당일 때가 바뀌었다고 입장을 바꾸는 자세는 아시타비의 극명한 예이다. 코로나 19를 둘러싼 아시타비 대응은 결국 모두에게 화로 다가온 한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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