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등한 실력의 카리스마 ‘가속도’부터 아름다운 꼴찌마 ‘차밍걸’까지

▲ 사진=가속도 은퇴식 <제공=한국마사회>

[일간투데이 조필행 기자] 해외에서 현재 폭발적 인기를 끌고 있는 모바일 경마 게임이 있다. 실제 경주마들을 모델로 해서 그들의 부상경력이나 성적, 상대전적 등을 그대로 가져와 캐릭터에 서사를 부여했다. 현실 경마를 모바일 속에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친숙한 모습에 우리나라에서도 게임의 영상만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만약 한국에서 이런 게임이 만들어진다면 어떤 경주마들이 출연할까? 다양한 이야기를 가져 경마팬들이 사랑한 암말 경주마들을 소개한다.

■ 월등한 실력으로 적수 없어 강제(?) 은퇴. 카리스마 넘치는 ‘가속도’

* 주요 성적 : 90년·91년 그랑프리 1위

역대 인기 암말을 꼽아본다면 ‘가속도’가 먼저 떠오를 것이다. 2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13전 12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우고 곧바로 은퇴했기에 경마팬들의 기억에 더욱 강렬하게 남아있을 터. ‘가속도’는 90년 3세에 데뷔해 6연승을 거두며 단번에 1등급까지 승급했다. 그 해 치러진 ‘그랑프리’ 역시 쟁쟁한 경주마를 제치고 우승했다. 그녀의 연승행진은 이듬해까지 이어져 단박에 ‘11연승’을 기록했다. 그녀의 연승행진이 깨진 것은 91년 10월 ‘한국마사회장배’. 이 때 경마팬들은 가속도에 대해 암말의 한계 등 혹평을 가했다. 그러나 가속도는 두 달 후 ‘그랑프리’에서 진가를 보여준다. 주무기인 순발력을 앞세워 선행경쟁을 압도한 후 여유 있게 결승선을 통과했다. 준우승마와의 차이는 9마신. ‘어나더클래스’를 보여준 가속도는 ‘그랑프리’ 경주를 마지막으로 은퇴했다. 최고의 경주마들이 모이는 ‘그랑프리’에서 59kg이라는 높은 부담중량으로도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으니 그야말로 적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루나 <제공=한국마사회>

■ 장애를 딛고 여왕이 된 경주마, 마생(馬生) 자체가 드라마인 ‘루나’

* 주요 성적 : 05년·06년 경상남도지사배(GⅢ) 우승. 07년 KRA컵마일(GⅢ) 우승

선천적으로 왼쪽 앞다리를 절었던 ‘루나’는 33전 13승을 거두며 자기 몸값의 78배인 약 7억 6천만 원 상금을 수득한 마생역전의 주인공이다. 맹렬한 스피드와 영특한 머리 그리고 특유의 불굴의 의지로 ‘경상남도지사배’, ‘KRA컵 마일’ 등 주요 대상경주를 우승하며 여왕으로 거듭났다. 특히 루나는 마지막 은퇴경주까지 ‘레전드’였다. 그녀는 8세 고령의 몸, 57kg라는 가장 무거운 부담중량으로 3세 강자들과 맞서야 했다. 경주 초반 후미권에서 달리다 마지막 직선주로에서 폭발적 뒷심을 발휘, 선두를 0.1초차로 따돌리고 짜릿한 역전우승을 차지했다. 주어진 조건을 극복하기 위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달리는 루나의 모습은 그 자체로 많은 경마팬들에게 감동과 용기를 주었다. 2020년에는 경주마 이름을 딴 최초의 대상경주인 루나스테이크스로 부활하여 후배 암말들을 기다리고 있다.
 

차밍걸 <제공=한국마사회>

■ 이기든 지든 언제나 ‘전력질주’, 성실함이 만든 101연패 ‘차밍걸’

* 주요 성적: 101전 101패

1등만 기억하는 세상에서 꼴찌는 ‘조연’일지 모른다. 그렇지만 세상에는 1등보다 더 아름다운 꼴찌도 존재하는 법. 태생적으로 체구와 폐활량이 작았던 ‘차밍걸’은 혈통도 그리 좋지 않아 경주마로서는 크게 기대를 받지 못했다. 성적도 101전 101패, 가장 좋은 성적은 8번의 ‘3등’. 그러나 ‘차밍걸’은 2008년 데뷔 후 월 2회 꼴로 성실하게 경주에 참가했다. 딱 한번 다리부상으로 경주를 포기한 것을 빼놓고는 항상 최선을 다해 열심히 뛰었다. 뒷심이 부족해 우승은 못하지만 마지막 결승주로에서 한 번은 꼭 전력으로 치고 나갔다. 차밍걸이 98연패로 연패 신기록을 세웠을 때 변영남 마주는 “연패 기록은 부끄러운 게 아니다. 98연패는 곧 98경주를 완주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하며 감동을 자아내기도 했다. 차밍걸은 지난 2014년 승용마로 데뷔하여 승마대회에 출전하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숫자로 매길 수 없는 성실함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차밍걸. 그녀는 경마팬들에게 있어서 희망이자 자기 자신의 모습이었다.
 

19년 서울마주협회장배 실버울프 <제공=한국마사회>

■ 최강 ‘감동의바다’와 현역 ‘실버울프’·‘다이아로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어...

‘최강 암말’로는 부경의 명마 ‘감동의바다’도 빼놓을 수 없다. ‘감동의바다’는 데뷔 후부터 암말 한정 대상경주에서 두각을 보이더니, 신예인 3세 때 이미 최고 경주 ‘그랑프리(GⅠ,2300m)’에서 당대 최고의 경주마들을 제치고 우승했다. 전성기 이후 6세 때에도 단거리에서 빼어난 경쟁력을 보였다. ‘부산일보배(L,1200m’)를 우승했고, ‘SBS스포츠배한일전(GⅢ,1200m)’에서도 유수의 일본 경주마들을 제치고 3위를 거머쥐었다.

지금까지 살펴봤던 경주마들은 모두 경주로를 떠난 ‘추억의 명마’들이다. 그렇지만 최근까지도 경주로를 누비고 있는 ‘실버울프’나 ‘다이아로드’ 역시 인기라면 뒤지지 않는다. ‘실버울프’는 1회도 우승하기 힘들다는 대상경주를 무려 11번이나 우승하며 한국경마 대상경주 최다승을 갈아치웠다. 2019년, 7세라는 고령에도 퀸즈투어 시리즈 대상경주를 모두 석권하며 경마팬들에게 ‘역대급 경주마’로 불리기도 했다. 적수가 없을 것 같던 ‘실버울프’를 꺾은 것은 같은 마방 후배인 ‘다이아로드’였다. 체구가 작고, 후반부에 힘을 모아쓰는 ‘실버울프’와 달리 ‘다이아로드’는 체구가 커 경주 초반 선두권 싸움과 후반부 추입에도 능하다. 그렇지만 체구가 큰 탓에 체중관리가 힘들다는 후문도 있다. 같은 듯 다른 두 여왕자매의 이야기 역시 눈길을 끌기 충분하다.

이렇듯 한국경마에서도 당장 드라마나 게임으로 만들어져도 손색없을 이야기를 가진 경주마들이 많다. 각각의 경주마가 가진 사연과 그들이 경주로에서 펼치는 투혼이 경마를 스포츠로 완성시킨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한 파행적 경마 시행으로 경주마들의 새로운 이야기 역시 ‘일시 멈춤’ 상태이다. 경주마들의 이야기는 환호해주는 팬들이 있어야 비로소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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