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는 국가.., 멈춰버린 국가=3

▲ 사진=조광한 경기도 남양주시장

지난번에 살펴본 대로, 종교적 관용과 포용을 찾아온 유대인과 개신교도의 기술과 자본이 17세기 네덜란드의 황금기를 꽃피우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황금기는 어업과 농업의 혁명에서 시작됐습니다. 

먼저 어업 부문은 청어 산업의 혁명이었습니다. 네덜란드는 서쪽과 북쪽이 북해에 접해있어 어업 특히 청어 잡이의 비중이 높았고, 청어에 대한 기술과 제도를 혁신하며 매우 체계적인 생산기반을 갖추고 단연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1358년, 빌렘 벤켈소어(Willem Beukelszoon)라는 어부가 단칼에 청어 내장을 제거하는 작은 칼을 개발했습니다. 청어는 쉽게 상해서 보관이 어려웠지만 이 칼로 전문가들은 1분에 30마리 이상의 내장을 발라냈고, 재빠르게 내장을 제거한 신선한 청어를 소금에 절여 부패를 막고 유럽 각지로 수출하게 됐습니다. 

이후 배 안에서 고기 잡는 사람, 내장 발라내는 사람, 소금에 절여 통에 넣는 사람으로 확실한 분업 체계가 형성됐고, 네덜란드 청어 포획선은 완벽한 시스템을 갖춘 하나의 공장이 되었습니다. 

어업생산력이 증가하자 많은 도시 상인자본이 투자하게 되면서 청어산업은 대규모 생산 공정을 갖추면서 발전하게 됩니다. 

1575년 5개의 항구도시가 ‘대어업위원회’를 조직했고, 청어산업을 관리 감독하며 포획시기, 포장 규격, 엄격한 품질기준 등의 법규를 제정했습니다. 절이는 소금의 기준, 나무통의 재질과 크기, 완성 가공품의 중량 등 세세한 기준까지 명확히 정했습니다. 이는 세계 최초로 1차 산업의 생산물을 규격화하고 표준화한 것입니다. 

네덜란드 청어는 뛰어난 품질과 우수한 경쟁력을 확보해 17세기 초·중반 청어 잡이 어선은 약 1500척, 매년 생산된 청어는 30만 통 이상이었습니다. 

1624년 의회는 “금광과도 같은 청어 포획을 국가 중점사업으로 지정한다”고 발표했고, 청어 잡이는 곧 ‘금광’으로 통했습니다. 1630~40년대 유럽전체 소비의 절반 이상을 포획했고, 유럽에서 가장 비싼 값으로 지중해 연안까지 수출됐습니다. 

대어업위원회는 기술혁신 제도혁신으로 청어 잡이를 대규모 산업으로 발전시켰고, 네덜란드 황금기의 기반이 되는 엄청난 초기 자본을 만들어냈습니다. 

한편, 농업도 놀라운 발전을 이룩했습니다. 네덜란드는 말 그대로 저지대이고, 국토의 25%가 해수면보다 낮아 물난리가 잦고 홍수문제가 심각했습니다. 네덜란드의 역사는 물과의 전쟁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오래전부터 둑과 제방을 쌓았고, 13세기부터풍차를 이용하여 배수시설을 만들고 바다를 메웠습니다. 풍차는 방앗간의 역할도 하며 9천여 개가 있었는데 지금은 1000여 개가 남아있고, 암스테르담 근교 잔세스칸스 지역엔 18세기에 700개가 넘었지만 이제는 7개만 남아 풍차마을 관광지가 되었습니다. 

간척한 농토를 폴더(Polder)라고 하는데, 1540년부터 170여 년 동안 풍차로 만든 폴더가 서울 면적의 3배에 달합니다. 국토의 20%가 간척한 땅으로 서울의 13배가 넘습니다. 둑을 쌓고 물을 막아 만든 도시를 ‘담’이라고 해서 암스테르담, 로테르담 등이 있습니다. 네덜란드인들은 “신은 인간을 창조했고 우리는 육지를 만들었다”고 자랑스럽게 말합니다. 

1570년대부터는 자연환경에 맞춘 전략적, 전문적 농업을 발전시켰습니다. 점토지역에는 곡물을, 경작할 수 없는 곳에는 목축업을, 도시 근교에는 튤립 같은 원예작물을 집중 재배했습니다. 유럽인들이 선진 농업을 배우기 위해 반드시 거치는 필수 코스였고, ‘유럽 농업의 메카’라는 별칭을 얻었습니다. 

습지가 많아 나무신발을 신었고, 풍차를 발명해 간척을 했고, 그곳에 원예작물인 튤립을 심어서 이 세 가지가 네덜란드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그 당시 이미 시장경제의 원리에 정통했습니다. 수출과 산업에 필요한 고부가가치 작물을 집중 재배하고 식량은 대부분 수입했습니다. 값비싼 작물인 밀과 질 좋은 버터는 수출하고, 값싼 호밀과 저렴한 버터를 수입해 먹으며 부를 쌓았습니다. 

유제품, 고부가가치 경제작물, 과일, 원예는 유럽 최고 수준이었고, 맥주의 향료인 호프는 인류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쳐 전 세계로 맥주가 퍼져나갔습니다. 

경상도 크기의 네덜란드, 2019년 농산물 수출액이 세계 2위입니다. 인구 3만6000명의 바헤닝언 지역의 농생명 클러스터인 푸드밸리에는 연구소 20개, 과학기업 70개, 식품관련기업 1440개가 있습니다. 종사자는 2만여 명, 그 중 R&D 인력이 1만 5000명, 박사급 인력이 1200명에 달합니다. 

이처럼 네덜란드의 황금기는 어업과 농업의 혁명으로 자본을 형성하고 기반을 닦으면서 막이 열리게 됩니다.

우리나라는 3면이 바다이고 북쪽이 막혀 있어 섬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러나 해상왕 장보고와 이순신 장군 말고는 바다를 활용한 역사가 특별히 없습니다. 우리도 바다를 활용하는 장기적인 전략을 고민해보면 좋겠습니다. 

또, 한국은 산지가 많아 1인당 농지면적이 0.03㏊, OECD평균의 10분의 1이고, 네덜란드는 우리의 2배 정도입니다. 그러나 평균기온, 일조량, 강수량 등을 보면 네덜란드가 더 열악한데도 농식품산업은 세계 최상위권입니다. 이제 우리도 푸드밸리와 같은 클러스터를 조성하고 농생명산업을 적극 육성해야 하지 않을까요. 

네덜란드인들은 온갖 불리한 환경과 조건을 극복하는 강인한 의지를 발휘했습니다. 대한민국도 불굴의 의지로 마침내 선진국으로 올라섰습니다. 우리는 더욱 강인하게 지속적인 발전을 이루고 움직이는 국가를 꼭 만들어가야 합니다. 

다음에는 황금기를 본격적으로 열었던 조선업과 해상운송의 혁명을 살펴보겠습니다.

*기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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