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산연 심규범 연구위원, '적정 공사비 확보' 시급

다양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산재가 줄지 않고 있는 건설 현장에 대해 근로자의 특성을 반영한 근본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왔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심규범 연구위원은 9일 '건설 현장의 산업 안전 주요 현안과 대응 방안' 보고서를 통해 “특히, 재해가 집중되고 있는 소규모 건설현장의 산재 저감을 위해 개별 현장이 아닌 산업 차원에서 접근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내놨다. 

심 연구위원은 해당 보고서를 통해 사업장으로서의 건설 현장은 생산물이 완성되면 소멸되고 건설 근로자 역시 자신의 공종과 직종에 따라 계속 이동하지만, 우리의 산업안전 체계는 대개 고정된 사업장과 근속하는 근로자를 중심으로 편제돼 있다고 지적했다.

즉, 이러한 현실과 제도간의 괴리가 건설재해를 줄이지 못하는 근본 원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산업안전보건 관리 능력과 보호구나 안전교육, 건강진단 등을 공급한 능력이 부족한 소규모 현장에 대해서도 그 책임을 개별 현장에 두고 있어 실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건설 현장의 재해율은 2007년부터 제자리를 맴돌아 2010년에는 0.7%에 머물었고, 5인 미만의 소규모 현장에 종사하는 근로자의 비중은 6.9%인데 비해 재해자의 비중은 그 10배인 68.0%를 차지하고 있다.

심 연구위원은 “건설 근로자의 이동성을 감안하면서 산업안전 능력이 부족한 소규모 현장의 산재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개별 현장이 아닌 산업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이어 “며칠 만에도 이동하는 근로자에 대해 소규모 현장에서 보호구를 나눠주고 안전교육을 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상대적으로 현장별 특수성이 낮은 기초안전보건교육, 정기 건강진단, 공통적인 보호구 등에 대해 근로자의 근로일수에 따라 주기적으로 산업 차원에서 공급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에 따른 효과로는 중대 규모 현장에서는 중복 지급을 막아 고품질의 안전 요소를 공급할 수 있고, 소규모 현장에서 일하는 근로자에게도 기초안전 요소가 공급될 수 있을 것이란 분석이다.

이같은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건설근로자산업안전기금’(가칭)(산재예방기금 활용 + 산업안전보건관리비 갹출)을 마련해야 하는데 산업 차원의 건설안전기금 운영 주체는 사업주 단체인 대한건설협회 또는 건설근로자공제회를 상정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함께 심 연구위원은 건설 현장의 골칫거리인 산재에 대한 공상 처리를 줄이기 위해 경증 산재를 환산재해율 산정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산재에 대한 공상처리는 후유증이 발생한 근로자에 대한 보호 약화와 추가적인 비용 소요에 따른 부실시공의 우려 외에도 산재 보고 의무 제도를 준수한 건설업체가 이를 위반한 건설업체에 비해 이익을 받게 되는 제도적인 불합리가 존재하는 문제라는 것.

그동안 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PQ 신인도에서 재해율을 삭제하자는 주장도 있었으나 그럴 경우 사업주의 경각심이 약화된다는 우려에 막혀 받아들여지지 않은 상태다.

이에 심 연구위원은 “사업주의 경각심을 낮추지 않으면서도 공상처리 부담을 덜 수 있고 치료 기간의 조작도 어려운 ‘4~7일’ 정도의 산재를 PQ 재해율 산정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또한 직업병과 같이 잠복 기간이 긴 재해를 최종 근무 업체에 모두 귀속시킬 경우 해당 건설업체의 산업안전 성과와 책임 범위의 인과관계가 모호해져 제도에 대한 반감이 야기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심 연구위원은 이러한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 잠복 기간이 긴 직업병 재해에 대해서는 근로 기간에 따른 재해건수 경감 조치(귀속재해건수=해당 건설업체 근로기간÷해당 직업병의 잠복기간)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특히 심 연구위원이 건설현장 산업안전의 핵심인프라로 지적하고 있는 것은 정상적인 산업안전 활동을 가능케 하는 관련 '비용의 확보'라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적정 공사비의 확보. 저가 낙찰에 따른 공사비 부족은 산재 다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데 대체로 ‘공사비 부족 ⇒ 무리한 공기 단축 ⇒ 노동 강도 강화 ⇒ 산재 다발’의 과정을 거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

그는 “최저가낙찰제 하에서 낙찰률은 70% 수준으로 떨어지는데 정부의 수요 독점력과 입찰자의 제 살 깎기 경쟁에도 불구하고 적정 공사비를 확보해 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산업 안전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산업안전보건관리비를 낙찰률과 무관하게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하는데 그 예로서 국민연금 및 건강보험 보험료의 확보 및 사후 정산을 지적했다.

심 연구위원은 마지막으로 “건설 현장의 산업 안전과 관련된 다양한 당사자들의 역할이 결합되어야 산재 저감이라는 성과를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정부는 건설업이 차지하는 산재 비중에 상응하는 예산과 인력을 배정해야 하고, 발주자는 설계 단계에서부터 산업안전을 고려해야 하며, 원수급자의 산재예방 노력에 대한 직접 반영과 하수급자에 대한 재해율 관리 그리고 근로자의 경각심 제고 등을 병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밖에 건설 현장에서의 산재 예방 활동의 핵심인 산업안전관리자의 다양한 경험과 전문 지식을 체계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이들의 근속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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