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건설경제팀 선태규 기자

1.
16층 옥상에서 똑바로 내려다본 아래는 ‘아찔함’ 그 자체였다. 무언가 여기서 떨어진다면, 산산조각이 날 것임이 틀림없다. 그 처참함에 사람들의 가슴은 하염없이 꺼지고, 얼굴은 하얗게 질려 하늘을 향해 애처로운 눈빛을 보낼 수도 있다. 때늦은 후회에 가슴을 탁탁치며 어리석음을 탓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저러나 희망을 일으켜 세우기에는 너무 늦었다.

2.
고리원전 1호기 문제에 불이 붙었다.
전원상실 은폐, 책임자 보직해임, 비상디젤발전기 작동 불능, 날림 점검 의혹 등으로 그 불길이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공식처럼 퍼진 불길은 공식처럼 사라질 것이다. 그 잿더미 속에 또 다른 불씨를 남긴 채.
그러나 저러나, 썩은 사체에 개떼처럼 달려드는 하이에나는 왜 떠오르는 것일까.

3.
땅에 떨어진 현실(원전 사고)이 ‘충격’으로 와 닿는 이유는 ‘한국원전의 우수성’에 눈멀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전력 공급이 끊겨 ‘허찔린 쇼크’를 겪은 것도 전력에 대한 ‘당연함’이 한 몫을 했다.
원전사고 수습에 앞서 이 ‘무감각’이 먼저 처벌을 받아야 한다. 감각을 마비시킨 당사자들은 가중 처벌되어야 한다. 사고 수습은 그렇게 마무리되어야 한다.

4.
“원전하지 말자. 트러블 일으키면서 뭐하러 하냐. 국가와 국민을 위해 사명감 갖고 일하고 있는데, 죄인 취급 받으며 뭐하는 짓이냐 이게.”
“사고나게 내버려 두자. 뭐하러 정비하냐. 사고나면 그들이 책임지면 된다.”
“태양광, 풍력 많이 하고 화력발전소 많이 지어라. 우리도 그게 편하다.”
원전 직원들의 분노가 촉발되고 있다. 불이 붙으면, 라면이나 끓게 하는 ‘지금의 불’과는 차원이 다를 것이다. 때에 따라 ‘핵분열’을 일으킬 수 있는 ‘분노 이상의 분노’로 번질 수 있다. 원전을 직접 다루는 당사자들의 ‘눌린 기운’이 일거에 폭발하기 때문이다.

5.
원전 직원들은 사장 임기와 직결된 공기업 경영평가의 희생자였다.
평가기준은 발전정지가 없고, 이용률이 높아야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게 돼 있다.
원전직원들은 발전정지를 하면, 내부 규정상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처벌받게 돼 있다. 이용률은 100%를 유지해야 한다. 자동차라는 미물도 쉬지 않고 24시간 내내 100km로 주행하면, 반드시 탈이 나게 돼 있다. 하물며 평생 그 속도로 운행돼야 할 원전은 어떻겠는가.
그런 상황에서, 원전 운영자나 교대자도 많이 감축됐다. 정비기간도 반으로 줄었다.

고리원전 1호기의 경우 우리나라 최초의 원전으로, ‘수명’이 사실상 다 된 발전소다. 이런 발전소에서 사고나 기기부작동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 아닌가.
직원들은 ‘알면서도’ 가중된 업무에 위험까지 무릅쓰며 일했던 것이다. 이들 대부분은 원전 사고들로 징계를 받아 안팎이 온통 상처투성이다. 그 스트레스나 부담감. 그것들이 누적돼 마침내 ‘분노’로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그 불길에 지금 기름이 부어지고 있다.

극단적으로 얘기한다면, 한국원전은 16층 한국수력원자력 건물 옥상 난간 끝에 몰린 형국이다. 땅바닥에 떨어져 박살나기 직전이다. 추락하면, 때는 이미 늦었다.

6.
며칠 뒤 ‘한국원전의 우수성’이 다시 한번 강조될 ‘핵안보 정상회의’가 열리게 된다. 회의 이후에는 원전 ‘투어 일정’까지 잡혀 있다. 한국은 무엇을 보여줄 것이며, 그들은 무엇을 보고, 또 원전 직원들은 그걸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분위기에 휩쓸려 ‘탓’하지 말아야 한다. 원전의 절박한 손을 붙잡아줘야 한다.
원전 직원들이 그랬던 것처럼, 사명감을 갖고 위험을 무릅쓰며, ‘전기료 인상’ 등 근본적인 문제부터 짚어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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