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조문학신문 신인문학상 수필 부문 당선된 정인환 옹


(서울=뉴스와이어) 2011년 07월 05일 -- 창조문학신문 신인문학상 공모에서 ‘나는 기구한 술을 퍼먹었다’의 수필로 당선된 80세 정인환 옹(翁)이 있어 화제다. 정인환 옹은 지금 문학 창작에 대한 열정이 다른 어느 누구보다도 뛰어나고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귀한 가르침을 전해주고 있다고 한다.

창조문학신문사 박인과 문학평론가는 “정인환 옹(翁)은 올해 80세이다. 작품보다도 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쓰고 또 쓰는 문학에 대한 열정이 읽는 우리를 숙연케 했다. 그의 수필에는 우리의 아버지의 아버지 때의 진한 아픔의 세월이 묻어있다. 선자가 선(選)할 때 정인환 옹의 사상이, 혹은 종교적 정서가 어떠한가에 대해서는 문제 삼지 않았다. 단지 작품의 창작력과 작품에 대한 열의를 보았다. 선(選)하면서 주목했던 것은 한민족의 그 아픔과 유교적 습관이 몸에 밴 문장 속에서 휴머니즘적 인류애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었으며, 지극히 한국적인 역사의 정신도 만나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독자들은 읽는 순간부터 정인환 옹의 ‘기구한 술’에 대한 가슴 진한 감동과 사랑을 만날 수 있게 될 것이다”고 단평했다.

우재(愚宰) 정인환(鄭仁煥) 프로필
 
출생:1932년 경북 영천산
학력: 독학
중요경력 :
꼴머슴
국가공무원
정부산하단체 지자체 단위 기관장 정년퇴직
(사)임란의병 한천승첩 기념사업회 대표이사 회장
저서 :<길섶에도 들국화는 핀다>(우재 수상록) <흔적>(우재 한담만문)

작품 검색: http://cafe992.daum.net/_c21_/bbs_download?grpid=1...

‘나는 기구한 술을 퍼먹었다’

“주유강산 다호걸(酒有江山 多豪傑)이요 무전천지 소영웅(無錢天地 小英雄)”이라. 술이 있는 강산에 호걸이 많고 돈이 없는 세상에는 영웅이 적다라고 누가 말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술에는 영웅호걸과 연관도 많고 예찬론도 무진하지만 해악(害惡)론도 적지 않다. 이러한 술을 나는 철없는 5~6살 때부터 주식(主食)으로 퍼먹었으니 나는 영웅호걸인지 주정뱅이인지 모르겠다.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나른한 봄날, 보리밭 위 하늘높이 종달새 비비배배 지저귀고 장끼도 화려한 의상 자랑이라도 하듯 ‘푸드덕 꿩, 꿩,’ 노래하며 날아가는 아침에 나의 창자는 곡기가 말라가는 소리로 꼬르륵 꼬르륵 구슬피 울어댔다.

우는 창자 달래기 위해 이른 새벽의 술 거르는 시간에 맞춰 20리길 술도가에 가서 찌꺼기를 얻어오면 사카린에 버무려서 식구들이 둘러앉아 허겁지겁 퍼먹었다. 우선은 달콤한 맛에 먹었지만 일어서려고 하면 천장의 서까래가 빙빙 돌아가고 발자국은 허공을 밟는 듯 비실거렸다. 그래도 배를 채우기 위해서는 기갈(飢渴)의 술을 안 퍼먹을 수가 없었다.

어쩌다 친척집 잔칫날은 나의 잔칫날이다. 어머니의 치마꼬리 붙잡고 따라가면 음식을 차린 배반(杯盤)이 나온다. 어머니께서 드시는 척 하면서 나에게 미루고 옆 사람과 어름어름 이야기 하실 틈에 너무도 철없는 나는 주는 것은 무엇이든 술까지 다 먹어 치웠다. 내가 술맛을 알고 그 술을 마셨을까. 이렇게 해서 나의 기막힌 음주(飮酒) 문화(?) 는 싹이 텄다.

또 묘사(墓祀) 때도 산에서 마른 것 짠 것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먹고 쏘다니다 보면 목이 탄다. 산에는 물이 없으니 술 주전자 꼭지에 입을 대고 홀짝 홀짝 빨아 마신 술에 취하여 비탈 잔디밭에서 대굴대굴 구르도록 얄궂진 음복(飮福) 술도 마셨다.

내가 15~16세 때는 각종 부역(負役)이 잦았다. 부역현장에 가면 우선 자격시험으로 지게에 흙이나 돌을 일정 무게로 실어놓고 지고 일어서면 합격이고 못 지면 퇴장이었다. 일도 어른이나 소년이나 똑 같이 돈내기로 해야 한다. 일을 하다 쉬는 시간에는 참으로 의례히 술이 나온다. 술을 마시는 것도 비록 선후의 차이는 있으나 량은 한 순배 두 순배 식으로 공평하다. 그러니 어린 것이 힘에 겨워도 귀한 술 아까워서 장정과 같이 욕심(慾心)을 내어 술을 목구멍에 쏟아부었다.

뛰놀고 배우며 자라야할 꿈 많은 나의 사춘기는 남의 집 머슴이란 멍에를 쓰고 또래들이 잠든 이른 새벽 황소를 몰고 논 갈고 밭 갈러 나갈 때 부엌문 앞에서 내미는 전배기 탁주 한 양푼을 서서 쉬지 않고 단숨에 마셔야 했다. 이 술은 몸보신하라고 주는 술이 아니었다. 환각상태에서 일을 하라는 환각(幻覺)의 술이었고 나는 마셔야 했다.

직장을 얻고 가정을 이루었을 때는 일을 해야 돈을 벌고 생계를 꾸린다. 일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야 하고 만나면 술을 마셔야 한다. 아침에 출근할 때 어린 자식들 ‘육성회비, 공책 값, 무슨 돈, 무슨 돈’ 하며 손 벌릴 때 매정하게 없다고 울려서 학교에 보내놓고 그날 저녁 나는 요릿집 안방에 앉아 젓가락장단에 맞춰 노래 부르며 술을 마시고 천금 같은 지폐(紙幣)를 접대부 저고리에 꽂아 넣어줘야 하는 가슴 따가운 술도 마셨다.

내가 공무원이 된 것도 정부 산하단체에 근무 한 것도 내가 측량사이기 때문이다 측량은 산이든 강이든 춥든 덥든 어디든지 아무리 악조건이라도 위탁자가 부르면 가야한다. 오뉴월 뙤약볕 구슬 같은 땀 흘리며 이산저산 돌아다녀도 끝없는 사막같이 인가도 없고 물 한 모금 마실 개울도 없다. 일을 끝내고 파김치같이 늘어진 몸 이끌고 내려와 주막집을 만나면 오아시스를 만난 듯 반가웠다. 우물에 담가 놓은 시원한 막걸리 한 사발은 이 세상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기막힌 맛이었다. 이보다 더 좋은 술이 어디 있겠는가. 주선(酒仙)인 이백(李白)도 두보(杜甫)도 맛보지 못한 감로주를 나는 마셨다.

나는 이렇게 술과 운명적인 만남도 조상으로부터 술의 유전자를 이어받았는지도 모른다. 나의 아버지도 술을 애주 하셨다. 내 15~6세 때 아버지가 한 여름 불같은 태양 아래 비탈 밭에서 일하시다가 피곤도 하지만 목이 말라 나무그늘에 잠시 누었는데 누가 시원한 농주 한 대접을 내미는 것을 받아드니 꿈이었단다. 허탈한 상태에서 주위를 돌아보니 빨갛게 익은 산딸기 한 송이가 보여서 그를 따 먹으니 해갈도 되고 간절하든 술 생각도 좀 자자들더라 하시는 예기를 들은 지 70년이 훨씬 지난 아직도 가슴이 저민다. 몇 년 만이라도 더 살아 계셨더라도 그 좋아하시는 술, 얼마든지 드실 수 있었을 터인데 이 어찌 풍수지탄(風樹之嘆)이 아니리요

술은 혼자서 마시기보다는 상대가 있음으로 술맛이 좋고 상대도 맛이 좋은 상대와 술맛 떨어지는 상대도 있다. 내가 꿈에라도 다시 한 번 같이 마셔보고픈 상대는 아버지다.

내가 군복무 할 때 외박이나 휴가를 나오면 아버지는 “예야 나하고 바람 쐬러 가자” 하시고는 여기저기 한참을 산책을 하시다가 마지막엔 주막집 툇마루에 걸터앉아 술 상 앞에 놓고 가정사나 깊은 옛 예기를 하시며 젓까락으로 내 술잔을 저서 주시며 “예야 너도 한잔 마셔라” 하실 때, 아버지의 태산 같고 하해 같이 높고 깊은 사랑이 술잔에 넘실대고 천현지친(天顯之親)을 뼛속으로 느끼며 고개 돌려 마신 술이 이 세상에서 가장 그립고 고귀하며 꿈에라도 다시 한 번 마셔 보고 싶은 술이다.

나는 이렇게 기구(崎嶇)하게 퍼먹은 술 실력(?)이 좋게 말해 애주가요 나쁘게 말해서 중독자인지도 모른다. 습관적으로 저녁상에서는 한두 잔의 술을 마시니 말이다. 그렇게도 귀했고 한도 많고 사연도 많은 술을 마실 때 마다 산딸기 한 송이로 갈증을 해소하신 아버님 생각과 그 죄책감으로 기일(忌日)에는 제일 맛좋은 술로 큰 잔 올리며 불효의 용서를 빌어본다.

당선작 문의:(사)녹색문단 / 한국문단 / 창조문학신문사(070-4010-2361~78)
출처: 창조문학신문사
홈페이지: http://www.ohmywel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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