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는 국가.., 멈춰버린 국가=⑦

▲조광한 경기도 남양주시장  사진=남양주시청
▲조광한 경기도 남양주시장 사진=남양주시청

조광한입니다. 아일랜드는 약 800년에 가까운 영국의 식민지배에서 독립한 이후에도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중에 하나였습니다.

특별한 산업기반이 없는 낙후된 경제여건으로 일자리를 찾는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해외 이민이 이어져, 1950년대에 약 430만 인구 중 10%인 약 40만 명이 나라를 떠났습니다. 농업중심의 저발전성과 지속적인 인구유출로 인해 미래가 없는 국가로 낙인찍혀 있었습니다.

1970년대에도 수출의 70%가 대영국 수출일 정도로 여전히 영국에 의존하고 있었고, 경제적 자립은 불가능한 것으로 평가됐습니다.

‘영국에서 독립했지만 영국 없이는 못 사는 나라’였습니다. 1980년대 중반까지 정부 재정은 만성적인 적자였고, 국채는 GDP대비 120%, 실업률은 20%, 인플레이션은 17~18%에 달했습니다.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이런 상황을 ‘자선을 구걸하는 거지’라고 조롱하며 극도의 모욕을 주었습니다. 이처럼 처참한 경제지표와 지속적인 인구유출에서 아일랜드는 도무지 헤어날 방법이 없는 듯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1987년 이후 극적인 반전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1987년 피어너 팔(아일랜드 공화당)의’찰스 호이’가 새 총리로 취임하며 경제구조 자체를 뜯어고칠 여러 정책들을 추진하기 시작했습니다. 재정 적자와 과도한 공공 지출을 최우선적으로 손봐야 한다고 지목했는데, 이는 사회적으로 상당한 갈등을 야기할 수 있는 민감한 분야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노조, 기업, 정부가 노사정 합의를 이루고 ‘사회적파트너십’을 형성하여 갈등을 피할 수 있었고, 경제개혁이 본격적으로 추진됐습니다. 1980년대 중반까지 ‘노조공화국’으로 불릴 정도로 파업이 많았지만 그 후 파업은 거의 사라졌고 안정적인 노사관계가 확립됐습니다.

1992년 2월까지 재임한 호이 총리의 경제 정책으로 1986년에 GDP대비 10%였던 재정적자는 취임 3년만인 1990년에 2%로 크게 줄었고 정부지출은 과감한 구조개혁으로 기존의 70%로 급감했습니다. 경제가 빠르게 안정을 찾으면서 성장을 위한 탄탄한 기반을 마련하게 된 겁니다.

또, 낙후된 경제를 끌어올릴 비장의 카드를 꺼내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오늘날 아일랜드를 먹여 살리고 있는 ‘해외 자본’입니다.

당시 유럽 국가들의 법인세는 20%가 넘었는데 해외 자본 유치를 위해 법인세율을 유럽 최저 수준인 12.5%로 낮추고 외국인 투자유치와 국내 창업을 지원하는 정책을 폈으며, 고용직원에 대한 훈련보조금을 정부에서 100% 지급하는 등 기업에 대한 아낌없는 보조금 정책과 막대한 인센티브를 지급했습니다.

국제 자본거래의 자유화와 경쟁력 있는 금융, 물류, 통신의 인프라 구축 등으로 세계 e비즈니스의 중심으로 급부상하기 시작했습니다.

1989년 인텔의 유럽본사가 아일랜드에 입주한 이래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애플, HP, 델, IBM, 오라클, 아마존, 페이스북, 트위터 등 1,200개의 세계적인 다국적 기업들을 포함해, 2000년대까지 2,500여 개의 미국 기업들이 줄줄이 지사를 세웠습니다.

연간 10만 개의 일자리가 새로 생겼고, 일자리가 없어 이민을 떠나던 나라에서 구인난이 발생할 정도였습니다.

그 결과 오늘날 아일랜드 50대 기업의 절반이 미국 기업이고 특히 세계 탑 IT 기업 10곳 중 9곳이 아일랜드에 유럽본부를 두고있습니다.

또한, 2018년 기준으로 아일랜드 법인세의 80%가 외국기업으로 부터 나왔고국내 고용의 25%를 외국기업이 담당했습니다.

이러한 아일랜드의 급성장에 대해 1994년 미국의 투자은행 모건 스탠리는 당시 한국, 싱가포르, 홍콩, 대만 등 ‘아시아의 4마리 호랑이’에 빗대어 ‘켈트의 호랑이(Celtic Tiger)’라고 칭송했고, 한때 ‘거지’라고 조롱했던 이코노미스트는 ‘유럽의 빛나는 등불’이라고 찬양했습니다.

1995년부터 2천 년대 초까지 연평균 10%의 경이적인 경제성장률을 기록했고, 1980년대 말에 20%를 넘던 실업률은 2천 년대 초 완전고용이라고 할 수 있는 3%대로 하락했습니다.

국민의 생활수준을 나타내는 1인당 GDP는 1988년 1만 달러에서 14년만인 2002년 3만 달러, 다시 5년만인 2007년에 6만 달러를 돌파해 세계최고의 부국 가운데 하나로 뛰어올랐습니다. 세계 역사상 후진국에서 가장 빨리 선진국으로 진입한 것입니다.

그러나 2008년 세계 금융위기의 충격으로 아일랜드도 위기를 맞고 유럽에서 그리스와 함께 2010년 IMF 구제 금융을 신청하게 됩니다.

유럽 최고의 부국으로 올라섰지만 경제의 지나친 해외의존도와 2000년대 이후 비약적으로 성장한 부동산과 금융 버블의 붕괴 때문이었습니다.

이후 IMF의 요구를 충실히 이행하면서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한 긴축재정을 과감히 추진했습니다. 공공 근로자 약 10%감축, 공무원 임금과 연금,최저임금 또한 10% 안팎을 삭감했습니다. 이러한 재정 건전화와 구조조정으로 매우 빠른 속도로 2013년 구제 금융을 졸업했고 경제는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스나 다른 국가들과 달리 긴축재정과 임금삭감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1980년대에 노사정 합의로 이룬‘사회적 파트너십’ 덕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미 아일랜드는 파업과 실력행사등 ‘극단적 노동쟁의’가 아닌 협의와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는 문화가 정착해 있었고, 큰 마찰 없이 다시 경제적 기반을 다질 수 있었습니다.

최근의 1인당 GDP는 2019년 78,660달러, 2020년 83,849달러, 2021년 추정 94,560달러로 계속해서 세계 3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아일랜드를 지배했던 영국은 2021년 추정 46,340달러로 20위, 대한민국은 34,870달러로 26위입니다.

아일랜드는 조금 과장해서 ‘거지에서 벼락부자로’ 단시간에 드라마틱한 반전을 이루고 날아올랐습니다. 단 한 명의 탁월한 지도자가 나라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또 움직이는 국가로 만들 수 있는지 잘 보여줍니다.

다만 아일랜드 경제는 여전히 해외 의존도가 높아 대외 여건에 쉽게 흔들릴 수밖에 없는 위험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수출에 주로 의지하고 경제의 대외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책과 고민이 절실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우리도 노사정 대타협을 이루는 사회적 파트너십을 형성해 경제의 체질을 강화해야하지 않을까도 생각해봅니다.

두 번에 걸쳐 켈트의 호랑이 아일랜드를 살펴봤고, 다음에는 멈춰버린 국가의 첫 번째 사례로 포르투갈을 살펴보겠습니다.

*기고는 본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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